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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보다 과정을 즐긴다

-어제 몰랐던 걸 알아가는 재미-

by 집공부

“엄마! 오늘 시험 봤어. 58점.”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학교 행사 덕에 일찍 퇴근한 엄마를 보고 기분이 더 좋아서인지 온 동네가 떠나가라 엄마를 부르며 내뱉은 말이다. 평소에 “시험은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제 몰랐던 걸 알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성적이 생각보다 안 좋으니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수고했어. 우리 아들! 너의 최선을 다한 거야?”라고 물었다.

“응. 나 놀다 들어갈게.”

내가 더 말할 틈도 없이 아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공을 들고 나가버렸다. 실컷 놀고 들어와 기분이 더욱 좋아진 아이에게 한마디 건넸다.

“공부는 어제 몰랐던 걸 알아가는 거니까, 앞으로 공부를 더 열심히 하면 점점 모르는 게 줄어들 거잖아. 그러면 시험성적은 더 좋아지겠지?”

“당연하지.”

“그런데 최선이라는 건 네가 할 수 있는 한 아주 열심히 한다는 걸 말하는 건데, 앞으로 시험을 본다면 넌 어떻게 열심히 할 거야?”

“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시험 볼 때 문제를 아주 잘 읽어보고 답을 쓸 거야.”

아들은 자신 있게 큰소리를 쳤다. 아들의 시험점수는 다행히도 조금씩 올라갔다. 5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78점을 맞았을 때 남편은 환하게 웃으며 아들을 격려했다.

“장하다. 우리 아들! 아빠는 너만 할 때 네 점수 반도 못 맞았어. 넌 아빠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될 거야.”

아빠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 환하게 웃는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지난번보다 성적이 오른 비법이 뭐야?”

“솔직히 말해서 내가 전에는 수업시간에 다른 생각을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선생님 말씀을 더 잘 듣고 있어.”

“그렇구나. 그럼 집에 와서 선생님께 들은 내용을 한 번 더 공부해보면 엄청나게 성적이 오르겠는걸? 학교에서 배운 걸 집에 돌아와서 선생님이 하시는 것처럼 우리에게 이야기해줄래?”

“알겠어.”

아이들은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사실 잘 모른다. 그래서 차근차근 공부해가는 과정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아이는 점점 수업 집중도가 좋아져서 6학년이 되면서는 처음으로 90점 넘는 점수를 받았고, 그 경험 덕분에 자신은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번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긴 다음부터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고, 노력한 만큼 성적이 좋아질 수 있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성적이 오른 비결이 단지 결과를 중요시하지 않고, 공부하는 과정을 중요시했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 자체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게 하면 아이들은 부담 없이 배움에 몰입할 수 있다.


결과에 집착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나는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보았다. 부모가 아이의 시험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대놓고 커닝을 하거나 또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중간고사 마지막 날, 종례하러 교실에 들어갔다.

“나 망했어. 집에 가서 뭐라고 말하지?”

“성적표도 나오기 전에 망했다고 말할 필요는 없지. 그냥 시험 잘 봤다고 해.”

“그러다 성적표 나와서 거짓말이 탄로 나면 어떻게 해?”

“실수로 깜박 잊고 주관식 안 썼다고 하면 돼. 난 시험 잘 봤다고 거짓말해서, 오늘 아빠가 외식시켜준대.”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성적을 올리기 위해 애쓰기보다 다른 방법으로 결과를 바꾸려고 한다. 소위 잔머리를 쓰는 것이다.

“배우지도 않은 게 나왔다.” “선생님이 감독하면서 왔다 갔다 해서 시험에 집중을 못했다.” “감독 선생님이 계속 한자리에 서 있어서 부담스러워 시험을 못 봤다.”며 자기가 못 본 시험의 책임을 교사에게 돌리려고 한다. 핑계를 대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이런 학생 때문에 부모가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여 여러 번 감사를 받는 해프닝도 있었다.


“선생님, 저 공부 못하는 반에 넣어주시면 안 돼요?”

2월 반 편성을 앞두고 졸졸 쫓아오며 어떤 학생이 했던 말이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서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물었더니 아빠가 반 석차가 떨어지면 자기를 때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공부 못하는 아이들만 모아서 반을 하나 만들고 자기를 거기 넣어달라는 말이었다.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님께 매를 맞는다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 아이들의 목적은 안타깝게도 안 맞고 싶다는 데 목표를 둔다. 부모는 때려서라도 공부를 시켜보고 싶은 마음에서 그럴지 모르겠지만 두말할 것 없이 매우 잘못된 방법일 뿐 아니라, 아이의 공부 목적을 흐려놓는다는 점에서도 매우 좋지 않다. 아이가 자기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게 아니라 부모에게 맞기 싫은 절박한 마음으로 공부한다는 게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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