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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장 Sep 15. 2018

이거 먹어도 되나요?

체질식이 뭐길래

배우 김태희, 송혜교, 손예진, 황신혜 그리고 채소장의 공통점은 8체질 중 ‘금음 체질’이라는 거다. ‘뭐 먹고사냐’는 푸념이 가뿐한 삶으로 거듭난 40일, 섭생표대로 살아본 채소장의 난생처음 다이어트 챌린지.



나 돌아갈래!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체력과 생리주기마다 이어지는 피부 트러블은 내 삶에서 비교적 정상적인 증상이었다. 체력 회복은 여유를 가지면서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면 될 줄 알았지만…. 안 됐다. 피부 트러블은 치료하고자 하는 맘만 먹으면 식은 죽 먹기라 생각했지만…. 피부과에 다닌 지 몇 달이 지나도 도통 차도가 없었다. 사상체질(사람의 체질을 태음인과 소음인, 태양인과 소양인의 4체질로 분류한다)도 믿지 않으면서 터벅터벅 8체질 한의원을 찾은 이유다. 사람마다 타고난 인체 내 장기들의 8가지 다른 강약 배열 구조에 따라 금양, 금음, 토양, 토음, 목양, 목음, 수양, 수음 체질로 나누는 대체의학이 바로 8체질이다. 식단 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8체질은 각 체질의 생리와 병의 원인을 이해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뿐 아니라 면역기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게 만든다고 한다.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스스로 체질 검사와 식단 조절을 선택한 이유는 엉뚱한 음식들을 집어 삼키거나 혹은 방치하면서 오랫동안 몸에 빚을 지고 살았기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건강을 위한 식단 조절은 내가 시도해야 할 최선이자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새해도 다가오고 있었다. “정확한 체질은 다음 번에 알려드리겠지만 우선 고기, 밀가루, 우유, 카페인은 끊는 게 좋겠네요.” 두 번째 진단 후 내려진 가벼운(!) 금식 대상은 ‘거의 모든 음식’에 가까웠지만 고기와 밀가루를 끊는 건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카페인은 왜? “수면 관리까지 해야하는 체질인 것 같아요. 11 시에는 잠자리에 들도록 하세요.” 놀란 눈을 한 나를 향해 그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잠이 안 와도 일단 누워 있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이 시간에 자야 하는 건 놀랄 일이 아니라 기본이에요.” 내 입에서 튀어나온 건 전혀 다른 질문이었다. “그런데 왜 ‘화’ 체질은 없나요? 음과 양에 화의 기운이 나뉘어 있어서 그런 건가요?”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궁금했던 화의 행방은 바로 내 안에 있었다.



골고루 먹으면 망한다

‘이 체질의 건강 제1조는 모든 육식을 끊는 것이고, 제2조는 약을 쓰지 않는 것이며, 제3조는 화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혹 근육 무력증이 생겼을 때는 더욱 주의하고 온수욕보다 냉수욕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폐가 강하고 간이 약한 체질이며 췌장이 비교적 강하고 심장이 비교적 약한 편입니다.’ 세 번의 진맥을 마치고 낙점된 ‘금음 체질’은 한마디로 ‘절밥’을 즐겨야 하는 체질이었다. 푸른잎 채소와 대부분의 바다 생선, 조개류, 쌀을 주식으로 삼아야 하고 포도와 참외, 딸기, 바나나, 파인애플, 키워, 감, 체리, 앵두, 살구는 즐겨도 된다. 간에 무리를 주는 약은 아예 멀리해야 할 대상이므로 비타민을 비롯 영양제는 물론 어머니가 보내주신 옥수수, 대추, 결명자, 우엉 등의 재료로 차를 끓여 마시는 건 안 되고 대신 모과차를 마셔야 한다. 더운물보단 찬물을 마셔야 하고 산성수가 더 잘 맞다. 마치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음식이라 생각했던 견과류와 홍삼, 사과, 배, 현미, 참기름, 들기름, 고구마, 감자는 물론 모든 뿌리 채소도 내겐 해로운 음식에 속해 있었다. 그나마 즐겨 먹던 내 절친 버섯과 이별을 고해야 할 시간, 계란 흰자는 유익하지만 노른자는 해롭고 바다 음식이라도 새우, 게 같은 갑각류와 미역, 다시마 등은 자주 먹으면 해롭다는 정보도 입수했다. 결정타는 바로 마늘 금지령인데 잠시 이민이란 단어를 떠올렸다가 이내 마늘이 필수 식재료인 건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고기, 밀가루, 우유, 카페인을 끊은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알게 된 내 체질과 섭생표는 다시 한 번 새해 벽두를 뒤흔들었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의 트레이드가 일어나야 할 앞으로의 삶이라….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진 건 며칠 전 장 봐놓은 식재료의 반 이상이 나에게 해로운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1주 차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지난 7일간의 적응 기간을 뒤로하고 냉장고에 있는 해로운 음식을 버리고 이로운 음식으로 다시 채우는 일이었다. 그 다음엔 회사 근처의 단골 음식점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와 없는 메뉴를 구분하는 것이었고, 생선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아야하는 과제도 생겼다. 다행히 혼자 가도 부담스럽지 않은 스시 레스토랑을 발견했고, 점심 메뉴가 맛난 횟집도 주변에 있었다. 단골 분식집에 가선 “햄이랑 당근, 우엉, 단무지를 뺀 샐러드 김밥 주세요”라고 했다가 너무 든 게 없어서 “단무지는 먹을게요!”라는 번복 주문도 해야 했다. 제일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였던 짬뽕밥을 맛있게 먹었다가 속이 더부룩해 고생하는 일도 생겼다. 저녁엔 지난 주부터 시도한 미니 배추나 양배추 찜을 활용한 야채보쌈 메뉴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생선에 손이 가지 않았다. 특히나 집에선 그 냄새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여하튼, 채소 위주의 식단을 하루 한 끼씩 먹었더니 장이 가벼워진 것은 분명했다. 전제적으로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도 들어서 내 몸에서 뭐가 나왔나 하고 물 내리기 전에 변기를 확인하는 습관도 생겼다. 또 다른 습관은 밥을 먹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금음 체질의 섭생표를 앵무새같이 떠든다는 건데 통제 불가능한 일이 됐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걸 어떻게 다 외워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어떤 상황을 사진 찍듯 기억할 수 있는 ‘영상 기억 능력’이 내게 있었다는 건 나조차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내 삶의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뜻이겠지. 예민한 편은 아니지만 내 몸에서도 뭔가 ‘조용한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식단의 재구성은 곧 몸의 재구성과 이어지는 일이었다.

2주 차 “그러면 참치 캔이라도 드세요. 단백질이 너무 부족한 것 같은데요.”“발레리나 강수진 선생님도 즐겨 먹는다는 고추참치도 되나요?” 일주일에 한두 번 체질 침을 맞기 위해 들르는 한의원에서는 ‘먹어도 되냐?’는 질문을 열 번 이상씩은 하게 된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의 70%가 “조금? 자주 먹으면 안 돼요.” 하지만 선생님은 ‘나이롱 환자’일 줄 알았던 내가 섭생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제법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생선 식단에 익숙해지지 않아서인지 현기증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 예전 룸메이트가 채식을 시작할 때의 증상과 비슷한 것 같아 철분과 비타민 D를 구입하려는 찰나, 약을 쓰지 말라는 건강 제2조가 떠올랐다. “아뇨, 안 먹는 게 좋아요.” 재차 확인해도 대답은 같았다. 그러고 보니 참치캔 세트는 천연 영양제보다 무려 8배나 저렴했다. ‘돈 굳었다’고 생각하는 게 나았다. 이제 슬슬 포기하는 데 익숙해졌다. 대신 식탐이 늘었지만. 아침, 점심, 저녁을 규칙적으로 먹다 보니 끼니 때마다 위장이 요동쳤고 못 먹는 음식이 많은 데 대한 보상을 양으로 받으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밥 때도 아닌데 자꾸 먹을 게 생각나는 건 신진대사가 높아졌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가을부터 시작한 필라테스는 1주일에 2회씩 빠짐없이 하고 있고 운동 후엔 되도록 안 먹는 게 좋다거나 말거나 늦은 저녁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인풋과 아웃풋의 밸런스가 맞아가는 시점. 참, 탄수화물의 양이 늘고 야채의 양이 줄어들면서부터 변비가 있는 날도 있어서 기억을 더듬어 1/1일부터 지금까지의 식단을 죄다 메모해 버렸다. 하루 일과의 마무리를 하루 동안 먹은 메뉴와 마신 물의 양, 배변 유무와 시점을 적는 것으로 끝내는 날들이 계속됐다. ‘메밀피로 만든 야채만두를 찾아볼 것’. 가끔은 먹고 싶은 메뉴도 적는다. 그리고 내 생활 패턴에서는 영양의 균형을 하루가 아닌 2일을 기준으로 맞춰가는 게 유리할 것 같다는 나름의 결론도 냈다.

3주 차 오전 내내 공복에 커피 한 잔으로 났던 아침 시간이 바뀐 건 2주 전. 출근하자마자 배달된 양배추케일즙 120ml를 마시고 집에서 챙겨 나온 바나나 1~2개와 감말랭이 조금 그리고 페리에 330ml 한 병을 즐기면서 먹는다. 청포도와 감, 키위 등 과일을 먹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는데 좋은 현상인 것 같으면서도 <가디언>지에서 본 과당을 포함한 설탕의 유해성에 대한 기사 내용이 떠오르기도 해서 약간은 찝찝했다. 조사에 따르면 콜라 한 캔당 9개 티스푼 분량의 당(설탕 35g)이 포함돼 있다는데 바나나에는 7 티스푼, 포도에 1.5 티스푼, 그리고 멜론에는 12 티스푼이 함유돼 있다고 하니 요모조모 따져서 먹어야 할 리스트가 점점 늘어난다. 덕분에 어떤 물건을 사든 뒷면을 돌려 원재료와 영양성분표를 반드시 확인한다.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다 보니 먹거리에 대한 시야가 조금이나마 확대된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바나나를 주문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과당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열심인 건 생선과 야채를 구워먹을 오븐을 찾는 일이었다. 아직도 결정하지 못해 생선은 언제나 밖에서 먹고 있다. 또 다른 변화는 마트의 신선 식품 코너에서만 장을 보게 됐다는 거다. “이 체질은 하나만 계속 먹으면 안 좋아요. 생선 종류도 다양하게 드세요. 저 같은 경우는 삼치, 빙어, 이면수를 돌아가면서 먹고 있어요.” 선생님의 말대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 시식도 즐기고 주꾸미나 해조류를 구입하기도 한다. 참, 얼마 전 나에게 ‘이성당의 쌀빵’을 소개해 준 선생님도 알고 보니 금음 체질이었다.

4주 차 “사람에 따라 완치 확률은 다르지만 피부 트러블도 체질 침으로 잡을 수 있으니까 체질 검사와 더불어 치료를 해 보시죠.” 고백하자면 체질식을 다짐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건 한의사의 이 한 마디 때문이었다. ‘침으로 피부를 치료할 수 있다고?’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하자 절대 끊지 못할 것 같았던 음식들이 관심의 대상에서 사라졌다. 누굴 좋아해서 끙끙 앓다가도 불현듯 마음을 접으면 거들떠보지도않던 지난 연애의 단상과 꼭 같은 패턴으로 나의 페이보릿 메뉴들은 관심에서 멀어져 갔고, 침 치료가 더해진 덕분인지 먹구름 같았던 피부색도 점점 물러서기 시작해 톤이 제법 맑아졌다. “원래 금음 체질이 한 번 맘먹으면 제대로 하죠.” 사상체질과 마찬가지로 8체질 역시 체질별 성향이 뚜렷한 것 같다. 되도록 일주일에 두 번씩 침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데 치료를 받았을 때와 받지 않은 시기를 비교해 보면 약간이라도 피부 반응이 다른 걸 느낄 수 있었다. “중독될지도 몰라요. 이 침 맞으려고 몇 년째 오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침을 맞으면서 온간 인상을 다 찌푸리는 내게 건넨 이 한 마디가 사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문경에서 이곳 한의원으로 원정 오시는 당뇨 어벤저스 어르신들 때문이었다. 체질식은 이제 거의 자리 잡혔다. 샤워 온도도 제법 많이 낮췄다. 김밥에 들어가는 약간의 근채류와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마늘 양념 등 합의할 수밖에 없는 재료들도 있고 떡볶이에 든 어묵처럼 못 먹는 메뉴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주위를 살펴보니 의외로 ‘금음 체질’이 많았는데 그들을 만나 음식과 식습관에 대해, 내 몸을 이해하는 것과 달라진 사회생활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이제 나는 메모를 넘어 식단 다이어리도 쓴다. 언젠가 내가 내 몸을 사랑하기 시작한 때를 기억하고 싶어서 그림도 그리고 코멘트도 붙인다. 그 속에서 내게 유익한 음식을 점점 좋아하게 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체질식이나 해 볼까

음식은 약인 동시에 독이 되기로 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체질에 맞는 음식이 약이고 맞지 않는 음식이 독이라는 사실도 제법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체질별로 반드시 필요한 음식으로 시작해 유익한 음식, 자주 먹으면 해로운 음식, 해로운 음식, 절대 금해야 할 음식을 분류해 놓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2015년까지의 나에게도 적용되는 얘기였다. 8체질은 ‘골고루 먹는 시대’를 지양한다. 넘쳐나는 식도락의 시대를 관조하면서 나에게 맞고, 필요한 것만 골라 먹으라고 말한다. 자신의 타고난 불균형의 체질을 균형 있게 해 줄 수 있는 체질식이 바로 기본적 건강법이라면서. “선생님, 체질식은 누가 하는 게 좋은가요?” “아픈 사람이요.” “당뇨병 같이?” “그렇죠. 오히려 당뇨는 치료하기 쉬워요.”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 체질식은 선택인가요?” “그렇죠.” “그럼 전 아픈 사람인가요?” “그렇죠. 피부 트러블이 고착화돼 가는 단계잖아요. 보통 어떤 증상이 붉어졌고 그게 고착화되려는 상황에서 체질 검사를 하러 많이 오세요. 채소장 님은 호르몬 분비에 따른 트러블 증상을 넘어 고착화되는 단계인 거죠.” 아마 이 대화가 체질식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의 잣대가 돼줄지도 모르겠다. 의존증까진 아니지만 나는 요새 몸에 대한 궁금증의 50%는 한의원에서 해결한다. “선생님, 저 마라톤 해도 돼요?” “완전 좋죠! 대신 땀을 많이 흘리면 안 좋은 체질이니까 땀이 나면 빨리 차가운 물로 샤워하시는 게 좋아요.” 오랫동안 고민했던 하프마라톤 출전 유무도 바로 한의원에서 해결했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정크푸드 마니아나 ‘고기파’가 만연한 현실에서 밥 먹는 시간이 고독해진다는 건 금음 체질의 특성만큼이나 수렴해야 할 삶이라는 것. 조용하게, 음식에 집중하면서, 꼭꼭 씹어 먹을 수 있어 좋다고 하면 애처로우려나.






*<ELLE Korea> 2016.02에 게재된 아카이브의 편집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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