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감동은 필수, 포기는 금지?
순례길을 걷기 전부터 관련 영상을 보며 준비를 하고 짐을 싸다 보니 순례길을 걷는 중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어느새 정치 현안에서 순례길로 바뀌어 있었다(나는 유럽에 가기 전, 조기 대선까지만 진행하는 단발성 시사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기에 그 이전까지 나의 알고리즘은 정치 현안에 지배당했다). 그중 많은 지분을 차지한 영상은 수년 전 tvn에서 방영한 <스페인 하숙>이다. <삼시 세 끼>의 양대 축인 차승원과 유해진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숙소인 알베르게의 호스트로서 순례자를 맞이하고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하나의 에피소드를 보면 다음번 유튜브에 접속할 때 또 다른 에피소드가 메인 화면에 뜨는 식이었다.
그 프로그램에는 여러 순례자의 말과 행동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조각조각난 영상들을 통해 봤던 순례자 중엔 한겨울 순례길을 동트기 전부터 시작해 기어이 100km를 걸어 ‘스페인 하숙’에 도착한 순례자가 있었고, 회사를 그만두고 순례길에 오르거나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기 위해 걷고 있다는 순례자가 있었다. 그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스페인 하숙에 도착해 한 끼 밥상에 행복해하는 장면, 저녁 식사를 하며 왜 순례길을 걷는지, 길 위에서 무엇을 느꼈는지를 이야기하는 장면들은 <스페인 하숙>의 감동 포인트로 작용했다.
순례자들은 자신의 인생사와 감정을 털어놓았고, 소박한 저녁 한 상과 따스한 환대에 충만한 행복을 느끼는 ‘소확행‘을 논하며 이전엔 얼마나 많은 욕심을 부리고 쉽게 만족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반성했다. 모두 좋은 말이었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옳은 쪽에 가까웠다. 우리는 너무 많이 탐욕하고 그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한다. 그러나 순례길에선 그 모든 욕심이 내가 지고 갈 무게가 되니, 어쩔 수 없이 내려놓게 된다. 나 또한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고심할 때마다 절절히 느낀 바였다.
이러한 순례자의 감상과 고백은 나도 일견 동의했고 때론 감명받기도 했다. 그러나 간혹 그렇게 인상적이라고 생각한 지 5초 만에 불편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중 한 장면은 이랬다. 한 순례자가 길을 걸으며 만났던 이들 중 인상적이었던 순례자의 이야기를 꺼냈고, 그의 얘기를 들으며 다른 순례자들도 그를 보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내를 잃고 자신도 병에 걸린 몸으로 걷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 그리고 그와 나눈 대화가 발화자에겐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 같았다. 그 이야기를 전한 순례자는 자신의 생각을 아주 감상적으로 이야기한 후 이렇게 마무리했다. “우리 모두 가슴에 새길 이야기예요.“
별 시답잖은 장면에 불편감을 느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사실 나도 순례길을 다녀오기 전에 그 장면을 봤다면, 아니 어쩌면 다녀온 지 몇 달이 지난 지금 다시 본다면 아무 동요 없이 넘어갈 장면이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창 순례길을 걷는 중에 접한 그 영상은 ‘감동 필수, 포기 금지’로 요약할 만한 여러 차례의 ‘고나리’를 들은 내겐 마치 PTSD처럼 작용했다.
스페인 대형 산불 여파로 사리아(Sarria)로 버스를 타고 넘어온 후의 일이다. 사리아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는 114km. 순례자 사무소에서 제시한 루트상으로는 5일이면 걷는 거리다. 나 역시 추천 루트에 맞춰 숙소를 예약했기에(사리아 이후의 숙소 예약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논할 예정) 닷새 후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타오를 듯 붉은 하늘 아래 잿가루가 날리는 거리를 걷다가 푸른 하늘을 보며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안전이 위협받았다는 생각에 걷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걸음을 옮기며 나는 종종 내가 마주쳤던 이들이 나처럼 점프를 해서 계속 걷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내가 연락을 주고받는 순례자는 이 길을 시작한 첫날 만난 한국인 순례자가 유일했고, 나보다 앞서 걸었던 그는 산불 여파로 순례길을 어서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같이 30km 이상을 걷는 강행군 끝에 이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즉, 그는 이제 안전지대에 있었다. 다른 이들의 안부도 문득 궁금해졌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포르토마린(Portomarin)에서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로 가던 길목에서 순례길 중반 지점에 연속적으로 만났던 순례자와 재회했다. 그는 당시 다리를 다쳐 붕대를 감은 채로 스틱을 짚고 절뚝였기에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발 상태를 묻곤 했었다. 다행히 뼈에 손상이 간 것은 아니라면서 그는 동키 서비스와 택시를 적당히 이용하며 순례를 이어갔다. 그러다 메세나 평원이 끝나기 직전 함께 식사를 하고 헤어진 이후 소식을 알 수 없었는데 길 위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그 사이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는 그는 이제 붕대를 감지 않은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먼저 보여주기도 했다.
그와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1시간가량을 함께 걸은 후, 우리는 “부엔 까미노“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그리고 2시간 후,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그때 나는 길을 걸으며 종종 마주쳤던 또 다른 순례자와도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한 테이블에 앉아있었는데, 내가 부상을 입었던 순례자와 인사를 나누는 것을 지켜본 그가 자신도 그 순례자가 절뚝이며 걷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가 순례를 포기하지 않은 데 대한 대화를 나눴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나도 저 사람 본 적 있어. 그땐 다리가 많이 부어 있었는데.”
“맞아. 무릎 위까지 붕대를 감고 있었어. 지금은 붕대를 다 풀었더라고. 결국 산티아고까지 걸어간다니 정말 대단해. 내가 저렇게 다쳤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텐데.“
”뭐?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지.“
”다리를 다쳐서 걷기가 힘든 상황인데도?“
“그렇다고 한 달 동안 걸은 순례길을 그만둔다고?“
내가 벙찐 채로 그를 쳐다보자 그는 ‘고작 그런 이유’로는 순례를 멈출 수 없다며, 순례길을 위해 이미 한 달이나 시간을 소요했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거라는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아마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내가 부상자였던 순례자와 저녁을 먹으며 들었던 이야기가 그랬으니까. 그는 오랫동안 순례길을 버킷리스트로 마음에 담았고, 마침 장기근속으로 긴 휴가를 얻어 떠나올 수 있었으며, 종교적 이유까지 더해 꼭 완주를 하고 싶다고 했었다. 내게 ‘고작 그런 이유’로 순례길을 중단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 그가 이런 사연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그의 주장을 들으며 (오버 좀 보태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순례길 멈추면… 감옥이라도 가는 건가?
산불로 점프하기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날은 라바날 델 까미노(Rabanal del Camino)에서 몰리나세카(Molinaseca)로 향하는 날이었다. 이 구간 중 마지막 10여 km는 내리막이 계속되는 구간이었다. 그것도 산길 중 뾰족한 돌이 깔린 형태로 말이다. 보통 마지막 10km은 차라리 숙소에 도착해 빨리 씻고 쉬자는 마음에 내리 걷기 마련인데, 그날은 두 번이나 끊어 갔으니 말 다했지. 그리고 그때마다 택시를 불러 이동하는 순례자를 보기도 했고. 그만큼 연속되는 내리막에 풍경을 보긴커녕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발밑만 주시하며 걷느라 몸은 잔뜩 긴장했고, 그러다 보니 어서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하고픈 생각뿐이었다.
목적지까지 5km쯤 남았을까. 카페에 앉아 액상과당을 연료처럼 콸콸 들이붓고 있는데, 전날 묵은 알베르게에서 만난 순례자와 재회했다. 나에겐 이모뻘쯤 되려나 싶었던 중년의 한국인 여성 순례자였는데, 나이가 나이인 만큼 무릎에 무리가 가서 이층침대를 사용하기가 어렵다며 전 일정 개인실을 쓴다는 이야기를 했던 분이었다. 그 이야기를 하며 그는 하면 안 되는 일이라도 하는 듯 부끄러워했는데, 나는 기침으로 고생할 때 계속 개인실을 썼던 이야기를 하며 기침이 나은 후에도 주 1~2회는 컨디션 조절을 위해 개인실을 미리 예약한다고 그를 두둔했었다. 사실 순례길이 ‘사서 고생하며 무언가를 얻어간다‘는 생각으로 오는 곳이다 보니 동키나 택시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호텔 혹은 개인실 숙박을 하는 순례자를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나도 이 브런치북의 3번째 에피소드로 동키 서비스에 대해 부정적인 순례자와의 에피소드를 적은 적 있다.) 내가 적극적으로 편을 들어주어서였는지 그는 내게 고맙다고까지 말했더랬다. 일부 순례자의 그런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해서였을까. 나는 내 맞은편에 앉은 그에게 조금 투정을 부렸다.
“오늘 정말 역대급인 것 같아요. 내리막길 계속 오느라 하도 긴장해서 다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아, 진짜 빨리 도착해서 씻고 눕고 싶어요.”
“그런데 탕국 씨, 생각해 보면 너무 좋지 않아요?”
“네? 오늘은 너무 힘든데요…“
”나는 그냥 다 감사해요. 이 길을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도 나는 다 좋았어요. 너무 힘들다 생각했었던 날도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감동적이기도 하고. 우리가 언제 또 여길 다시 와보겠어요. 안 그래요?“
아… 저도 순례길 전체가 힘들고 지겹기만 하다는 뜻은 아니었는데요… 하지만 인자하게 웃으며 그렇지 않으냐고 동의를 구하는 그에게 아니라고 답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내겐 예정된 ‘갑분싸‘를 헤쳐나갈 체력이 없었다.
사실 돌이켜 보면 이런 말들이 버거웠던 건 체력 고갈의 문제 때문이기도 했던 것 같다. 몸이 힘든데 들리는 말까지 힘들었던 것이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결국 나는 산티아고가 가까워질수록 다른 순례자들과 되도록 순례의 감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침으로 각종 감기약 컬렉터가 되고, 결국 병원에 가서야 며칠 간의 요양을 종료하고, 지루한 대평원을 지나 오니 산불이 나서 예정에도 없던 대피를 하고, 그래서 당장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그럼에도 남은 힘을 쥐어 짜내어 완주를 한 소감을 나는 순례 이후 어떻게 기억하는가?
아마 누군가 묻는다면 나 또한 많은 순례자가 그렇듯 나의 순례길이 참 다이내믹했다고, 그래서 돌이켜 보면 힘든 만큼 재미있기도 했다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내가 순례길을 걷는 한 달 여 동안 인스타그램에 매일 같이 스토리를 올린 탓에 순례길에 관심을 갖게 된 친구들도 생겼고, ‘얼마나 좋았느냐’고 묻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답한다. 3대 600 치는 체력이 아니고서야 개 힘들 거라고. 걷다 보면 정말 지긋지긋해지는 날도 올 거라고. 그렇지만 내가 생각할 때 이 길이 필요할 거라고 보이는 유형에 대해서도 덧붙인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결정은 당신의 몫이다. 그리고… 감동도 당신의 몫이다. (누군가와 나누면 배가 될 수 있지만, 강요는 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