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어느 날 저녁, 알베르게에 아주 지친 표정의 순례자 무리가 들어왔다. 대충 봐도 10명 가까이 되어 보이는 그들은 새벽 4시부터 50km 가까이를 걸어 그곳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1시간여 후, 알베르게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 디너 시간(순례자들이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는 일로,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메뉴를 사 먹거나 순례자들이 서로 음식을 구매 혹은 요리해서 나누어먹는다)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날 그는 새벽 4시에 출발해 저녁 7시가 다 되는 시간까지 15시간가량을 걸었다고 했다. 본래 35km~40km 정도를 걸을 생각이긴 했지만 그보다 10여 km를 더 걸었다고 해서 이유를 물으니 묵을 수 있는 숙소가 없었다고 했다. 목표했던 40km 정도를 걸었을 때부터 알베르게 상황을 확인했는데,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각자의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을 넘긴 데다 7명의 순례자를 한꺼번에 받아줄 수 있는 숙소를 찾지 못해 한 마을만 더, 한 마을만 더, 하는 마음으로 걷다 보니 여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날 내가 묵은 숙소는 규모가 큰 알베르게였고, 입실 하루 전부터 예약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또한 그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예약자들은 혼자 혹은 둘이 묵을 수 있는 2인실 사용자인 듯했다. 다행히 도미토리가 거의 비어있어 더 이상 걸어가지 않고 멈출 수 있었다며 그는 웃었다.
그룹을 나누어서 여러 곳의 숙소에 묵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그러다 보면 다음날 함께 출발하기가 어렵고, 그건 곧 같이 걸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에 함께 묵을 숙소를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그들. 사연을 좀 더 들어보니 그들은 순례길을 시작한 지 며칠 안 됐을 때 한 알베르게에서 만나게 됐고, 이후 수백km를 함께 걸어왔으며, 오며 가며 만난 이들을 재회해 함께 걷게 되는 날엔 최대 12명이 같이 걷기도 한다고 했다. 혼자 이곳에 와서 한 달 넘게 걸을 생각에 걱정이 많았는데 외롭고 심심할 틈이 없다며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시작부터 거의 모든 길을 혼자 걷고 있다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계속 혼자 걸으면 외롭지 않아?
나는 21살 이후 떠난 해외여행에서 가족 여행을 제외하면 늘 혼자 여행해 왔고 항상 그 기간은 2주 이상이었다. 가장 길었던 여행 기간은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여행한 4개월이었는데 그때도 당연히 혼자였다. 홀로 하는 여행이 외로웠다면 30개가 넘는 나라를 혼자 다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심한 적은 있었다. 지독한 내향형 인간이라 외향형 인간들 사이에 끼면 금세 넋이 나가고, 펍이나 투어에서 만난 여행객과 그날 하루 즐겁게 시간을 보낸 후 “내일 뭐해?”라는 질문을 받으면 다음날은 어김없이 귀국일이라고 답하는 나지만, 가끔은 무료할 때도, 누군가와 수다를 떨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침에 길을 나서며 라디오를 듣는 2~3시간이 너무나 만족스러웠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엔 연주시간만 60분씩 하는 교향곡 전 악장을 듣는 것도 좋았다. 클래식을 좋아한다면서도 공연장에서나, 혹은 공연을 앞두고 예습할 때를 빼곤 진득하게 교향곡 전 악장을 듣는 경우가 잘 없었기 때문이다(고요한 순례길에서 말러 2번을 듣는 게 얼마나 감동적이게요?). 그러다 이어폰 배터리가 다하면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리는 자박자박 소리,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들리는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를 귀에 담았다. 그게 다 힘들거나 재미없을 땐 또 그 상황을 받아들이며 걸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는 혼자 걷는 재미가 분명히 있을 거라면서도 본인은 절대 그렇게 못한다며 하하 웃었다.
나도 다른 사람과 함께 걸은 적이 있었다. 보르다(Borda)에서 만난 한국인 순례자와는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로 향하는 길의 절반 정도를 함께 걸었고, 늘 같은 숙소에서 만나곤 했던 필리피노 순례자와 며칠 만에 재회한 날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부상을 입은 그의 속도에 맞추어 걷기도 했다. 그 외에도 길을 걸으며 서로의 이름을 묻고 응원을 해주며 짧게는 5분, 길게는 30분가량을 함께한 수많은 순례자가 있었다. 그래서 홀로 여행을 하던 때와는 달리 순례길에선 상대적으로 ‘혼자’라고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날은 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사람과 함께했다. 부르고스(Burgos)에서 만난 내 또래의 스페인 순례자들이었는데, 매년 조금씩 순례길을 걷는다던 그들은 k-pop을 좋아하거나 한국 여행이 즐거웠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내게 거침없이 다가왔었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도 “안녕하세요! Korean?” 이라고 크게 말하며 다가왔던, 내가 그렇다고 하자 나를 와락 껴안았던 워낙 외향적인 성격 덕인지 길 위에서 종종 마주칠 때마다 그들 곁엔 또 다른 스페인 순례자들이 함께였다. 그런데 길 위에서만 만나는 게 아니라 알베르게에서도 재차 만났다. 호르니요스 델 까미노(Hornillos del Camino)와 까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on de los Condes)의 알베르게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Mansilla de las Mulas)에서 네 번째로 같은 숙소에 묵은 것이다.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에서 레온(Leon)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다시 만난 날, 그들이 내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러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걷는데 그들이 말했다.
2km만 더 걸으면 카페가 있대. 거기에서 친구들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
나도 어차피 다음 마을에서 아침을 먹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러마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들이 얘기한 ‘친구들’의 수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모두 스페니쉬였다. 그것도 영어가 서투른… 그들은 모두 대체로 외향적이었고, 스페인어를 못하는 나를 배려해 그중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 몇이 돌아가며 나와 얘기를 나눠주었다. 때로는 번역기를 사용하며 왜 순례길을 걷는지, 이후에 여행을 할 계획인지부터 무슨 일을 하는지, 뭘 좋아하는지와 같은 개인사에 대한 얘기도 주고받았다. 그날은 평소보다 더 자주 카페에 들러 쉬곤 했는데, 그때마다 가장 어른인 순례자가 모두의 빵과 커피를 쏘거나, 10여분 앞서간 이들이 먼저 우리의 음료를 주문해 놓아서 나는 한 푼도 돈을 쓰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 쉬던 중에 먼저 일어섰던 그들이 그래도 같이 걷는 게 덜 힘들지 않겠냐며 가던 길을 돌아와 함께해 준 일까지, 그들이 베푼 배려와 환대는 정말 너무나 고맙고 따뜻했다.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다시 혼자 걷는 쪽을 택했다. 무리 지어 걷는 것도 내 예상보다 즐거운 일이었지만, 연이어하기에는 조금 버거웠다. 주로 혼자 걷다가 가끔 기회가 생길 때 짧은 대화를 나누는 정도가 내겐 가장 잘 맞는 방식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또 다른 알베르게에서 그 순례자 무리를 다시 만났다. 샤워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알베르게에서 운영하는 식당엘 갔는데 이미 식사를 마친 그들이 남은 음료와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전 마을에서 이미 25km를 걸어와 체력이 고갈되기 시작한 데다 오면서 술을 여러 잔 마셔서 취기가 올랐다는 그에게 이곳에 짐을 푸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는 이미 알베르게 호스트에게 물어봤지만 7명의 순례자를 수용할 충분한 침대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내가 묵는 여성 도미토리엔 침대가 넉넉했지만 남성 순례자들이 묵을 수 있는 혼성 도미토리는 이미 꽉 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음 마을을 향해 걸어야 한다며 배낭을 챙기기 시작하던 그때, 한 순례자가 자신은 혼자 시간을 좀 더 보내고 가겠다고 했다. 휘둥그레한 표정을 짓는 다른 순례자에게 그는 말했다.
너희 먼저 가. 나는 천천히 뒤따라 갈게.
내가 점심을 주문하고 식사를 하는 동안 그는 옆 테이블에 30분가량 앉아 있었다. 맥주를 한 잔 더 주문해 천천히 홀짝이며 휴대폰을 보기도, 무엇을 적기도 했다가 이내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한동안 그렇게 앉아있었다. 그러곤 다시 길을 떠나기 전 나를 향해 “Bon appetit, Buen Camino”라는 말을 건네는 그에게 피곤해 보이는데 더 걸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그는 단지 잠깐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고, 체력은 아직 남아있다고 말하며 씩 웃었다.
이후에도 나는 그들 무리를 종종 길 위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늘 왁자지껄했고 즐거워 보였다. 혼자 걷지 않아 외로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심심할 일은 없어 보였다. 그들에겐 그것이 알맞은 방식의 순례였던 거다.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음악가 브람스의 평생 모토였다는 이 말을 나는 늘 흠모해 왔다. 그리고 나의 순례는 언제나의 여행처럼 조금은 고독하지만 외롭지는 않은, 그래서 보다 자유로운 그런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