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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주 Nov 16. 2019

부처님에게 기댈까, 하느님에게 기댈까

<아빠가 사는 집 06> 아직 현실세계에 남아 있는 어떤 인간의 고민


                                                             <만화 '세인트 영맨' 중> 



아빠가 돌아가신 후 언니와 내가 집착한 건 사후세계였다. 원래 우리 집은 불교였는데  사실 난 나이롱 신자였고, 때문에 평소 부처님을 향해 기도하는 습관도 없었다. 가끔 가족끼리 절에 갈 때 대웅전에 앉아 "부모님 다 건강하시고, 나도 잘 되고, 돈도 좀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라는 소원을 주절주절 말했는데 사실 엄청 간절하진 않았던 것 같다. 진짜 내가 믿는 건 '나신교(나를 믿는 종교)'라며 좀 오만하기도 했는데, 너무 큰 일을 당한 후엔 오히려 종교가 간절해졌다. 특히 사후세계에 대한 집착은 상상 이상이었다. 영상을 찾아보고, 논문이나 책을 뒤적이는 등. 이유는 아빠가 그곳에 계신다는 믿음을 꼭 얻고 싶어서였다. 

이 세계가 끝이라고 믿는 순간 '아빠의 죽음'은 너무 허무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언니와 나는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독일 의사의 논문을 읽으며 (사후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의 인터뷰 및 취재), 고인의 영혼을 극락에 데려다준다는 불교의 나무광명진언을 하루에도 몇십 번씩 외우며 저 너머의 세계에서 아빠가 평안하시길 간절히 빌었다. 너무 힘든 날에는 49재를 치러주신 절의 스님께 전화를 걸어, 영혼이 진짜 존재하냐 물은 적도 있는데, 스님은 그런 내게 그런 믿음도 없이 어떻게 기도를 하겠냐고 걱정하지 말라 위로를 했다. 그 밖의 다소 복잡한 이야기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태어나기 전의 세상과 죽음 이후가 진짜라는 이야기 등)  어쨌든 나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

웃긴 건, 사후세계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니 그게 불교의 극락이어야 하는지 교회의 천국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갈등이 시작되었다는 거다. 특히 "하느님을 믿어야 천국에 간다"는 교회의 유일신 사상은 나를 더 갈등으로 몰아넣었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한 한 달 후였나? 조금 정신이 드니 내게 전도를 하려는 지인들도 꽤 많았고 (교회에 다니는 지인들), 그때마다 그분들의 말에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울 아빠 인품상 극락은 프리패스라 생각했는데, 혹시 불교신자라 천국에 못 가면 어쩌지?"의 살짝 이상한 생각이 마음을 흔들었다. 조금 바보 같이 보이겠지만, 그 순간의 나는 엄청나게 진지했다. 어떤 방법에 의해서든, 아빠가 더 좋은 곳에 가길 원해서였다. 

결국 나는 내가 다니던 피부과 원장 선생님의 방에서 교회 신자로의 전도를 받았다. 피부가 뒤집혀서 어쩔 수 없이 방문을 했다가 사연을 알게 된 원장 선생님이 먼저 기도를 하자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나의 사연에 진심으로 위로를 주는 그분이 고마웠고, 특히 바쁜 시간에 기도까지 해 준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가볍게 기도를 함께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두 손 모아 기도문을 따라 해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상황이 살짝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빠를 위해 부처님도 믿고 하느님도 믿자. 원래 종교는 통하는 거잖아. 양쪽에 다 가입을 해두면 어느 분이 되시든 우리 아빠를 살뜰히 챙겨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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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부처님과 하느님이 나를 야매 고객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요즘 아침엔 나무아미타불을 외치고 저녁에는 하나님 아버지를 부른다. 이게 뭔 웃기지도 않은 행동이냐 하겠지만, 솔직히 나는 아주 진지하다. 부처님과 하느님에게 나는 공평히 마음을 드리고 있고, 그 마음의 목적은 하나뿐이다. "우리 아빠를 잘 부탁드립니다. 극락이든 천국이든 아빠가 가셔서 평안하실 수 있는 곳으로 꼭 잘 모셔주세요". 


그 와중에, 혹시 이것이 두 종교의 성인께 실례가 되지 않을까 싶어 어느 날은 혼자 자료를 찾아본 적도 있다. "부처님과 하느님을 동시에 믿는 것은 과연 괜찮을까?"라는 물음을 해결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다 이 만화를 발견했다. <세인트 영맨>이란 만화인데 부처와 예수가 현실세계로 내려와 같이 합숙생활을 하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내용은 일단 차치하고 일단 우리의 상식으로 근엄하게 분리되어야 할 두 종교 지도자를 한 공간에 모셨다는 생각이 너무 자유롭고 신선했다. 비록 어느 만화가가 그린 창작의 이야기일 뿐이었지만, 이 책을 보고 어떤 안도가 들었다. 찝찝함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종교는 역시 통하는 거야. 영화 <어벤저스>처럼 인간의 고민도 여러 신들이 나누어 들어주고 있는 거 아닐까? 그분들이 얼마나 성인인데 말이야. 쓸데없이 이 종교, 저 종교를 나누며 싸우고 있겠어?"


                                                   /


오랜 종교전쟁이 과거 유럽을 휩쓸었고, 아직도 이슬람 국가 등에선 많은 생명이 스러지는 종교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나는 사후세계에서만은 이러한 갈등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골당에 모셔진 불교, 교회, 혹은 기타 종교의 표시들을 보면서 가뜩이나 죽음도 억울한데 이 종교, 내 종교 따지며 더 이상의 분란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신문 기사에서 발견한 5개 종교단체 관계자들의 화합 모임은 내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천주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등의 종단 대표들이 모여 종교인의 자세에 대해 토의한 이 모임은 종교의 '다름'보다 종교인의 '기본자세'에 대해 잘 알려주고 있었다. "종교는 험한 세상에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며 종교 간의 평화에 대해 일종의 경종과 메시지를 울렸기 때문이다. 


                                              /


나는 여전히 두 종교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평범할 때는 결코 찾지 않던 종교에서, 이제는 제발 내게 평범한 삶을 달라 외치고 있으니 이 역시도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아무튼 나는 내가 어떻게 보여도 상관없다. 제발 고민 좀 작작 말하라며 부처님, 예수님이 날 귀찮아해도 괜찮으니, 부처님은 부처님대로 하느님은 하느님대로 울 아빠에게 서로 잘해주겠다고 사랑을 많이 베풀어주셨으면 좋겠다. 부처님 오신 날엔 절로, 크리스마스엔 교회로 가는 박쥐 같은 인생일지라도 그것이 아직 이 갈등 많은 세계에 살고 있는 어리석은 자의 최선이라 변명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양과 서양의 종교관을 왔다 갔다 하는 이 분주함 속에, 저 사후세계에 계신 아빠도 우리와 헤어진 슬픔을 잊어갔으면 좋겠다. 가끔은 부처님을 만나 차 한잔 하고, 또 가끔은 하느님을 만나 화려한 서양식 파티를 즐기면서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에 선입견 없이 푹 빠지셨으면 좋겠다. 


세계일주도 시켜주지 못한 불효녀의 아쉬움은, 

이렇듯 작은 것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탄생시키고 있다. 


바보 같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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