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사는 집 07> 지루해 보였던 한 남자의 삶을 보고야 말았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아빠의 직업은 좀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는 아빠의 삶은 너무 규칙적이다 못해 생동감이 없어 보였다. 감색 양복에 검은 구두는 깔끔한 공무원의 정석이었지만, 그조차 "와" 하는 동경이 일지 않았다. 아마도 그 냄새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 하루 종일 딱딱한 사무실에 짱 박혔을 것 같은 냄새. 엄청난 변화의 기운이 없는 지루한 냄새. 그래서 어쩐지 그 직업만은 갖고 싶지 않은 일종의 거부감의 냄새 말이다.
결국 나는 공무원이 되라는 부모님의 권유를 뒤로 하고, 다른 길을 갔다. 요즘처럼 공무원이 되기 어려운 시대에 정말 무지하고 오만방자한 행동이었지만, 그럼으로써 나는 뭔가 돈을 즐겁게 벌 수 있을 것 같은 나만의 착각이 있었다. 물론 직장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나는 광고회사 두 번의 이직과 또 한 번의 사기업 이직을 통해 내 이론이 완전히 틀렸음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 깨달음을 얻기까지도 오랜 세월이 걸렸다.
/
한마디로 직장생활은 그냥 노동이었다. 뭐가 더 즐겁고 즐겁지 않은가의 감정을 섞기 전에 한 곳에 매어 있어야 하는 장기적인 정착. 나는 세 번의 이직을 통해 우리 아빠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노동 자체도 힘든데, 한 직장에서만 몇십 년을 버티는 내공이라니. 만약 내가 운 좋게 공무원이 되었더라도 아마 몇 년을 버티지 못했을 거다. 연금생활자? 모르는 이들은 쉽게 말하지만 그 연금을 받기 위한 누군가의 세월은 결코 만만치 않은 거다.
아빠는 평범해 보였지만, 사실 대단한 사람이었다. 끈기도 있었지만 공무원 생활을 하며 새로운 정책 제안도 많이 했고, 상도 참 여러 번 받았다. 언젠가 행정고시 출신들까지 함께 본 연수평가에서 아빠가 두 번이나 1등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잠깐 아빠를 놀란 눈으로 쳐다본 적이 있다. "뭐야 아빠, 초등학교 성적표 보니 미양가 밖에 없던데? 근데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아빠는 내 머리를 콩 쥐어박으며 웃었다.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1등 했지. 근데 갑자기 그때 성적표 얘기는 왜 꺼내냐?"
/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했지만 아빠에게도 꿈이 있었다. 은퇴를 하면 고향 단양에 돌아가서 군수를 해 보겠다는 꿈. 한마디로 금의환향을 하겠다는 꿈.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정치를 한다는 건 단지 선한 생각이라든지 광장한 실무능력과는 관계가 없는 거다. 정치란 것은 방금 내뱉은 말도 바꿀 수 있는 '약삭빠른 혀'와 누군가의 마음도 금전으로 살 수 있는 '부'의 조합이니까.
하지만 이 '약은 혀'도 '굉장한 부'도 없었던 아빠는 선거 초입부터 단양에 있는 친척에게 눈먼 돈을 뺏겼고, 어렵게 비주류 정당에 소속되어 명함을 돌리고 다닐 때에도 동네 할머니들로부터 애먼 욕을 먹었다.
"우린 기호 1번 아니면 절대로 안 찍어!" (단양은 보수 지지 노인층이 거의 80%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논두렁에 찢어져 흩어지는 아빠의 명함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적이지만 술수를 모르는 삶이란, 이 정치판이란 곳에서 정말 살아남기 힘든 거라고. 아니, 그것이 비단 정치판만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
아빠는 결국 후보를 사퇴했고 우리 집엔 여러 변화가 일어났다. 가뜩이나 많지 않은 재산은 더 줄었고, 아빠는 급격히 말수가 줄었다. 실패를 했다는 자존심의 상처도 있었겠지만, 선거 과정에서 받은 크고 작은 상처 때문이었을 것이니라.
한동안 집에만 있던 아빠를 불러 내 나는 순대국밥을 먹으러 갔다. 그리고 평소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아빠처럼 안정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이 하필 왜 선거를 하겠다고 했어? 실패할 줄... 전혀 몰랐어?" 아빠는 한참을 생각하다 조용히 답했다. "그건 꿈 때문이었지. 안될 확률을 어느 정도 알면서 도전해보는. 그리고..., 사실은 내가 안정적인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
/
장례를 마치고 고향 청주 집에 내려갔을 때, 난 2층 다락방에서 아빠의 젊은 시절 사진첩을 발견했다. 그곳엔 감색 정장 차림의 지루한 아빠가 아닌, 멋진 청바지와 바바리를 빼 입은 잘생긴 청년이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청년의 삶이 나와 다르지 않았음에 놀라고 있었다. 친구들과 수영장에 놀러 가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고, 가슴 떨리는 연애를 하고, 때론 괴상한 포즈로 청춘을 발산하고. 나는 나도 몰랐던 아빠의 젊은 시절에 푹 빠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첩의 끝에서 난 하나의 종이를 발견했다. 요즘 보기도 드문 낡은 타공 종이에 타자로 글씨가 쓰여 있었다. "월급명세서, 이명우, XXXX원..." 그리고 그 옆에는 반듯하게 2:8 머리를 한 아빠의 공무원 증명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의 모습. 다소 긴장한 듯한 일자 입술의 비쩍 마른 청년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난 한동안 그 다락방을 뜨지 못했다. 조르르 눈물이 흐르다가 어느 순간 범벅이 되었다. 한 사람의 40년간의 노동, 그 엄청난 세월을 압축해 놓은 듯한 이 명세서에 나는 뭔가 굉장한 죄스러움이 느껴졌다. 자신의 꿈조차 미루고 쌓아 올린 어떤 인내, 하지만 자식에게도 온전히 위로받거나 이해받지 못한 그 사연 많은 이야기를 이제야 조금 들여다본 것 같아 너무 가엾고 미안했다.
무엇보다 이 야멸친 숫자 앞에 둘째 딸은 운다. 누군가의 열정과 방황과 깊은 생각까지 냉정한 몇 개의 숫자로 표시한 이 사회의 이해 못 할 비정함에 운다. 인간의 노동은 이렇게 짠하고, 또 짠한 것이었다. 특히 참을성이 많고, 헌신적이고, 인간적이기까지 한 어떤 사람에겐...더더욱 짠한 것일 수밖에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