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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Sep 28. 2022

흔들리는 곳에 돌멩이 하나 받치기

힌남노, 무이파, 난마돌... 올 가을에 우리나라를 지나간 태풍들이다. 내가 사는 곳은 서해안 섬 지역. 다행히 태풍이 덜 할퀴고 지나갔다. 그래도 태풍이 스쳐간 자리는 위험했다. 주차장 간판이 떨어져 나가고, 난데없이 천장에서 물이 새고, 환풍기가 들썩거려 잠을 못 자는 일이 발생했다. 사방에 찢어진 나뭇잎이 바닥에 붙어있었고, 현관 유리문 안에까지 나뭇잎이 들어와 있었다. 어떤 나무는 휘어져 있었고 어떤 나무는 부러져서 땅바닥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걱정했다. 아이들 숫자만큼 시를 써서 세워놓았던 것이 뽑혀나갔을까 봐. 작년 태풍에도 무사했으니, 이번에도 괜찮을 거라 믿어보고 싶었지만, 그것이 뽑혀서 유리창이라도 때렸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원래 그것을 박을 때 행정실 직원은 허술하다고 불평을 늘어놓았었다. 밑에 받침돌이 있어야 하는데 나뭇가지 하나 쑥 박아놓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제작된 것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냥 박아달라고 했다. 그렇게 우기고 한 일이라 바람이 좀 세게 분다는 날이면 걱정이 앞서곤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것은 태풍을 견뎌내고 잘 버티고 있었다. 물론 스무 개중 대여섯 개는 거의 넘어질 듯이 바위 위쪽으로 기대어져 있고, 또 어떤 것은 고개가 획 돌아가버린 채 비스듬히 서 있는 것도 있었지만, 뽑혀 나와서 길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것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무사히 버텨 준 것이 고마웠다. 동물도 아니고 식물도 아닌 무생물에게 버텨 주었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늘 들여다보고, 잘 있나 살펴보니 마치 생물처럼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흔들린다
                                     함민복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 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2013, 창비>

 그 나무 판도 그랬다. 흔들흔들거렸지만 뽑혀 나가지는 않았던 것이다. 막대 밑자리를 보니 틈이 많이 생겨나 있었다. 허약한 기둥은 흔들거리면서 흙을 조금씩 밀쳐내고 있었던 것이다. 쏠리는 대로 흙을 밀쳐내면서 제 몸을 기울여 가면서 중심을 잡았을 것이다.  어떤 것은 오른쪽에 틈이 더 많았고, 어떤 것은 왼쪽에 더 많았다. 오른쪽에 틈이 많았던 것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왼쪽에 틈이 많았던 것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나는 그 틈에 작은 돌을 끼워 놓아주었다. 화단 흙에 박혀 있는 작은 돌을 몇 개 찾아 괴어 주니 기둥이 반듯해졌다. 보기에 안심이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늘 흔들리면서 살아가지만, 흔들릴 때마다 가끔 이렇게 작은 돌 하나 받쳐 놓는 일이 살아가는 것 아니겠나..., 하는 생각. 그러면 또 한동안은 흔들림을 견딜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 

 

우리는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고, 집을 옮기고, 그러면서 좀 더 안정적이기를, 좀 더 편안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면 내쉬는 숨도 더 편안해질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결혼하고, 자식 낳고, 이사하고, 직장을 얻고 하는 일이 그대로 흔들림이었다는 걸 알아차리면,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지 않을 거 같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하는 일이 흔들리는 일이었음을 안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는 것일 게다. 흔들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사는 일일지 모른다.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장애인안내 표지판은 태풍 때문에 뽑혀나갔다. 그것은 시멘트 바닥에 단단히 나사로 박혀 있던 것이다. 어떤 무엇을 고정시키거나, 어떤 생각을 꽉 움켜쥐고 있거나, 그것을 신념처럼 붙박고 있으면 저렇게 송두리채 뽑혀나갈 수 있음을 생각한다. 가을 속에서 코스모스처럼 흔들거리면서 살아보자. 쉽게 꺾이지 않는 풀꽃처럼 살아보자. 


중심을 잡기 힘들때는,흔들리는 구석 한 곳에 굴러다니는 작은 생각 하나 받쳐 놓고,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 하나 받쳐 놓고, 턱을 괴듯, 오늘 하루를  잘 살아보는 것도 살아가는 일이리라. 흔들리는 것이 삶의 중심이라지만, 넘어지지 않기 위해 , 뿌리채 뽑혀나가지 않기 위해서 작은 도움을 스스로에게 주는 일 말이다. 

 오늘 내가 받쳐놓는  돌멩이 하나는 너무 맑은 가을 하늘 한 폭이다. 

<9.27일 오후의 하늘>

이걸로 오늘 하루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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