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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향기 Nov 15. 2022

전원주택을 팔았다 1


집이 팔릴까? 했는데 금방 팔려 버렸다. 시골에 집을 짓고 산지 10년이 가까워진다. 처음에 집을 지을 때는 영원히 이 집에서 살리라, 생각했었다. 감자, 고구마도 심고, 그것을 이웃과 나눠먹으면서, 노닥노닥 풀과 함께 햇빛과 함께 살고 싶었다. 지나가는 구름도 내 집 안에 가져다 두고 싶었고, 아침에 들어오는 햇빛도 하루 종일 붙들고 싶었다. 돌담을 쌓고 잔디를 깔고, 풀을 뽑고 나무를 심고, 화단을 가꾸고 텃밭을 가꾸었다.  

 

 다락방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좋았고, 해거름 녘에 툇마루에 앉아 저물어가는 마당을 보는 것이 좋았다. 심심한 낮에 마당에 주저앉아 풀을 뽑다 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곤 했다. 풀을 뽑고 난 자리는 잡념이 씻겨나간 듯 시원하고 개운했다. 돌담 가장자리로 피어나는 장미꽃을 보면서는 더 촘촘히 심어서 울타리를 만들어야지, 내년에는 노란 장미도 좀 심어야지, 장미 향이 방안까지 들어오게 창 앞에도 심어야지 하면서, 장미로 에워싸진 집을 상상하곤 했다.

 

 한 겨울인데 움을 트고 나오는 수선화, 담장가로 피어나는 산수유, 개나리, 그리고 좀 지나서 피는 매화와 사과꽃. 수선화가 움트는 것을 보면서 멀리서 봄이 오고 있음을 예감했고, 산수유를 보면서는 연한 빛으로 조심스럽게 오는 봄을, 팝콘처럼 활짝활짝 열리는 개나리 꽃잎에서는 담장까지 다가와 있는 봄을 실감했다. 

 마당 한가운데 심은 매화나무 아래서 참 많은 것을 했다. 매화나무가 커질수록 그늘도 넓어져갔는데, 그 꽃그늘 아래서 풀을 뽑고 시를 썼다. 가지마다 꽃이 피고 꽃이 시들어갈 때쯤이면 콩알만 한 열매가 생겨서  익어갔다. 우리는 그걸로 매실진액을 담그고 다음 해 내내 먹을 수 있었다.  흰 사과꽃은 습자지처럼 얇은 빛이어서 코를 갖다 대면 은은한 향기가 흘러나왔고, 향기가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면 사과가 열렸는데, 거름도 약도 치지 않은 터라, 늘 볼품이 없었지만 맛은 무엇보다 새콤하고 단단했다. 

올해 유난히 많이 열렸던 사과

   뒷마당에 심어놓은 배롱나무꽃을 앞에서도 보고 싶어서 어린것을 심어놓고 죽었나, 살았나 오래 들여다보기도 했다. 마을의 후박나무가 탐스럽게 크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부러워 후박나무를 승용차에 어렵게 싣고 와서 심었고, 길가의 돈나무가 이뻐서 또 그것도 사다 심었다. 가을 초입이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은목서 향기가 좋아서 은목서 나무도 심어 놓았다. 돈나무, 은목서, 금목서, 후박나무는 좁은 화단에서 서로 엉크러 진 채 어깨를 맞대고 컸다.

  원래 집에 심어져 있던 감나무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꽃을 피우고 제법 당도가 높은 감을 선물로 내주었다. 석류나무도 우리에게는 사연이 있는 거라 작은 묘목을 사다 심었다.  나무들은 십 년이 가까워지자, 제법 우람한 몸통을 가지게 되었고, 목련은 이미 건물 높이만큼 커졌다. 


 햇빛이 쨍한 날에는 마당에 빨래를 널어놓고 말렸다. 삼겹살을 구워 먹고 부침개를 해 먹고, 고등어를 구워 먹었다. 쪼그려 앉아서 생선을 구우면서 저물어가는 마당 한켠을 지켜보았고, 고개 너머 서쪽 하늘이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냄새나는 것을 구워 먹을 때면 지나가는 이웃이 있으면 불러서 같이 먹으리라 했어도 정작 그렇게 해 본 것은 한두 번 밖에 없었다.)

 한 뼘 밖에 안 되는 화단에는 작은 꽃들을 심었다. 봄이면 화원에 가서 다년생 꽃들을 심었고 그 꽃들을 거실에서 내다보면서 봄 한 철을 보냈다. 그러나 한 해동안 꽃을 피웠던 것은 다음 해에 다시 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목련나무의 그늘이 너무 깊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해마다 꽃을 사다 심는 일이 심드렁해지자, 뿌리식물을 궁리하다가 백합과 작약을 많이 심어보았다. 백합은 내가 생각하던 토종이 아니어서 얼굴만 큰 사람처럼 멋이 없었고, 작약 뿌리는 두더지가 다 갉아먹었는지 두어 개밖에 남지 않았다.

 꽃밭은 점점 텃밭으로 변해갔다. 꽃밭이었던 둘레로 마른 대나무를 깎아서 경계를 만들고 상추와 오이와 가지를 심기 시작했다. 상추와 가지는 여름 한철의 식량이 되어주었다. 상추는 장마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사그라질 듯이 녹아버렸고, 상추가 주저앉은 자리로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무성하게 자란 풀을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풀은 저희들끼리 무성해지다가 가을이 되면 시들시들 기세가 꺾였다. 그제서야 조금 숨을 돌리고 그 자리에 배추를 심어볼까 무를 심어볼까 하다가 그냥 버려두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왜? 고작 꽃밭이 텃밭으로 변하고 고작 풀들이 무성할 뿐이었는데, 왜 집을 팔려고 했지? 문제의 시작은 뭐였지? 막상 팔리고 나니 이렇게 마음이 허전하고 아까운데... 팔고자 했던 그 마음의 시작을 한참 더듬었다. 그 마음의 시작이 한순간의 동요가 아니었음은 분명한데,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좋았던 것이 새록새록 새로워지는 것은 간사한 사람 마음 탓인가? 

 시작은 그거였다. 왼쪽 집과 오른쪽 집 사이에서의 거북하고 불편한 느낌. 그 느낌을 가지고 살 수는 없다 싶었다. 왼쪽 집과 오른쪽 집 사이에 끼여서 왕따 당하는 느낌과 오른쪽 집을 늘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불편함... 어느 날 집 앞을 서성이며 이 동네를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번 어그러진 이웃과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개똥과 닭 울음 때문에 빚어졌던 이웃과의 불화는 인간관계의 불화로 이어졌고 쿨하게 그것을 해소하지 못한 채 한두 해 쌓여갔다. 여름만 되면 또 우리는 새벽부터 울어대는 닭소리 때문에 불면의 시간을 원망해야 했다. 때마침, 나의 풀 뽑기는 팔꿈치 염증 때문에 더 이상 계속될 수 없었고, 점점 약해져 가는 무릎관절은 구부려 일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남편에게만 하라고 할 수는 없고, 남편 또한 그렇게 바지런한 사람이 아니어서, 우리 잔디밭과 텃밭과 둘레는 가꾸지 않은 집의 게으름이 갈수록 덕지덕지 묻어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 뜨자! 이 마을에서 계속 살 수는 없겠구나... 

 

 풀과 구름과 별과 환한 햇빛을 포기했다. 정돈된 풀이 주는 평안함과, 구름과 바람이 섞여서 만들어내는 이동의 휘황찬란함과, 쏟아질듯한 밤하늘의 별과 그 별빛이 내리기까지의 고즈넉한 시간과,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와 온갖 습기를 말려주던 햇빛을 포기했다. 햇빛과 구름과 순한 풀들은 어디에나 있을 터. 이 시골에만 있는 것이 아닐 터.  


 영원히 살려고 했던 마음을 포기하니, 어디서나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도시를 선택했다. 도시의 불빛이 나의 우울을 치료해줄 거 같았다. 별빛과 햇빛 대신에 불빛이 나의 오래된 침잠을 잊게 해 줄 거 같았다. 도시의 번잡스러움이 가라앉아 들어가는 마음을 들떠 일으켜 세워줄 거 같았다. 영원히 살려고 했던 시골의 기대가 사라지고, 대신 도시의 정착이 꿈틀대고 있다. 도시에 가면 이게 좋을 거야..., 저게 좋을 거야... 벌레도 없고 습기도 없을 거야, 이웃을 신경 쓸 필요도 없을 거야... 그러나 기대는 항상 배반을 품고 있다. 도시가 또 나를 배반할지 모른다.  뭐가 좋을지 모른다. 항상 좋은 것을 탐하며 기웃거렸다. 탐하지 않으리라. 지나친 기대도 하지 않으리라. 집이 팔렸으니 떠나는 거다. 뭔가가 많이 아쉽고 그립고 보고 싶고 또다시 느껴보고 싶고 그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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