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가 건강검진을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가슴에 무엇인가 보인다며, 조직검사까지 했단다. 아프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이제 어디가 하나씩 고장이 날 수 있는 나이다. 조직검사까지 마친 친구는 결과가 나오기 전인데도 손이 떨린다고 했다. 별일 없을 거라고 했지만, 별일 있으면 어쩌지…
이미 십 년 전, 그러니깐 내 주변 사람들이 30대 초가 되었을 때 주변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사람, 진단 후 절제술에 성형수술까지 한 지인들이 몇 명 있었다. 모두 힘든 시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건강히 잘 지낸다. 의학 기술과 치료법이 발전하니 (암의 종류마다 다르지만) 초기 발견하는 경우 관리만 잘해도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막상 닥치면 이런 소리는 못 하겠지만 말이다.
올해부터 약 한 알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2년 전부터 권유를 받았지만, 평생 먹을 약 하나를 달기 시작한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벌써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보조제나 음식으로 병행해 보겠다고 욕심을 부렸다. 올해 초 병원에서 검사하고, 결과를 보면서 의사가 대뜸 ‘죽고 싶어요?’라고 물었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렇지 않다고 했더니 그럼 이제 약을 먹자고 한다.
대학병원 소견서를 들고 집 앞 병원에 갔다. 의사는 약 설명 하며 “이 약이 수명을 늘려주는 약이에요.”라고 했다. 인간의 수명을 다른 것도 아닌 ‘약’에 의존해야 한다니. 실제 연구 결과가 그렇다고 하니 할 말은 없다.
약 효과가 있는 건 분명했다. 종종 나타나는 증상이 사라졌다. 효과는 검사에서도 나타났다. 복용 6개월 만에 다시 피검사를 했다. 결과는 아주 좋았다. 약 복용에 따른 부작용도 없었다. 의사는 마치 자신 일처럼 즐거워했다. 그렇다고 약을 끊을 수는 없다. 의사 말에 따르면 약을 끊으면 곧 다시 수치가 오른다고 했다. 이미 복용을 시작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하는 약이라고 인식해서 그런지 약 복용을 멈춰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대신, 추가로 약 하나를 더 먹게 되었다. 좋았다가 또 아련하다. 한숨 한 번 더 쉰다. 먹어야 한다는 데 뭐 별 수 있나, 몸 생각해서 먹어야지.
밤 10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전화할 리가 없는데. 벨소리가 불안하다. 암. 어이쿠.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는다. 내 친구에게 암이라니. 순간 눈이 찔끔 감긴다. 뭐라고 해야 하지? 마음이 급해진다. 눈을 감고 의자에 걸터앉아 유방암은 대부분 다 고친다더라. 걱정하지 말고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다시 해보자고 허공에 쏘아 올리며 차분한 척했다. 수술이든 항암이든 어떤 치료가 이어지겠지만, 그래, 이만하길 다행이다. 이렇게 초기에 알아서 감사하다고 주절주절하다 통화를 마쳤다.
친구와 전화를 끊고 나니, 문득 이 친구와 나눴던 그동안의 시간이 파도가 밀려오는 듯 마음에 쓰-윽하고 요동친다. 여름의 햇살처럼 반짝였던 우리의 시간이 더 귀하게 다가온다.
친구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소처럼 하면 될까…? 생각에 젖었다.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온다. 가을 대지가 품어내는 색처럼 더 깊고 묵직한 모습으로 친구가 언제든 찾을 수 있게 그 자리에 잘 있어야지(그나저나... 결과 나오기 전부터 손이 떨린다고 했는데, 내 친구 손은 괜찮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