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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셩혜 May 11. 2019

성형외과를 좀 다녀왔습니다

얼마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형외과를 찾았다. 빌딩 숲 사이에서 너무나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간판이고 신사역만 가도 수두룩 빽빽한 성형외과이지만, 내 나이 마흔이 가깝도록 한 번도 발을 들여놓은 적 없다. 미모가 뛰어나서라기보다 큰 관심이 없을 뿐이다. 성형외과는 잘 알아보고 가야 한다는 지인들 이야기가 있지만, 다행히 내겐 성형외과에서 오랫동안 일한 동생 지혜가 있다. 그녀의 찬스를 써서 병원 추천을 받고, 상담 예약 후 방문했다.

대기하면서 진료실 문 앞에 적힌 글씨를 보게 되었는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진료실’이라는 한국어 표현 외에도 영어, 중국어, 일본어는 기본! 여기에 러시아어도 있고 심지어는 내가 모르는 언어도 2개가 더 쓰였다. 즉 7개의 나라의 언어로 적힌 셈. 이 말은 곧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많은 나라 사람들이 성형을 위해 한국을 찾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신사역 · 압구정역 앞에 가면 얼굴에 붕대를 감고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낀 중국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중국뿐만이 아니라 국적도 다행해졌나 보다.   


내원한 몇몇 사람들은 곧 수술을 앞두고 있는지 얼굴 여기저기에 검은 펜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힐끔힐끔 곁눈질해보니 곧 변신할 자신의 모습에 기대 차 있는 듯 보인다. 대기실의 대형 모니터 속에는 이 병원에서 수술을 한 사람들의 비포 앤 애프터(before & After) 사진과 인터뷰 영상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코, 지방 흡입, 가슴 성형 등 여러 수술을 통해 하나 같이 자신감을 가졌다고 밝히는 그들은 마치 대기 중인 사람을 향해 ‘너도 해봐!’, ‘이렇게 하면 예뻐질 거야!’, ‘자신감이 생길 거야!’하고 유혹하는 것 같다.

아빠를 심하게 많이 닮은 나는 너구리처럼 눈이 처졌다. 특히 오른쪽 눈이 심한 편이다. 몇 해 전 오른쪽 눈 윗부분에 조직 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눈 위로 며칠 붕대를 붙인 후 심해진 기분이다. 어렸을 땐 몰랐던 불편함이 한 살 한 살 인생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더 가깝게 느껴졌다. 눈꺼풀이 눈을 덮어 불편했다던 아빠도 돌아가시기 몇 해 전 눈썹 거상술을 했다. 대부분 나이가 들면 많이 한다는 이 수술. 어차피 나이 들어서 해야 할 수술이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는 것이 나을 거라는 판단이 섰지만, 내 나이도 뭐 그리 젊은 건 아니고 내 눈은 나이보다 더 많이 처져있던 터라 지금도 빠르지 않다고 의사가 말했다.


결국 나는 수술할 날을 예약하고, 성형외과 수술실 침대 위에 누워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마쳐 가는지 혹은 마취에서 깨어난 건지  의사의 손이 실로 매듭을 짓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의사와 간호사가 대화를 나누며 실밥을 꿰매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얼굴 혹은 신체의 여러 부위를 성형수술하는 사람들은 성형외과 의사에게 ‘선생님’이 아닌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겠구나 하고. 우스갯소리겠지만 실제로 성형수술 한 사람들이 병원 선생님에게 ‘새로 태어나게 해 줘 고맙다’라며 ‘아버지’라고 부른다던데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공자의 가르침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는 성형수술에 대해 좋은 시선을 갖고 있지 않다.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콤플렉스 때문에 혹은 재활 등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성형을 결정하는 것이고, 거기에 감 놔라 배 놔라 훈수 둘 자격은 없지만, 부모가 준 몸에 굳이 칼을 대어 살을 도려내고 보형물을 넣는다는 것이 좋게만 여겨지지 않는다. 고리타분하다면 그럴 수 있지만, 내 생각은 그랬다. 부모가 준 몸이지만, 불편함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이 수술도 사실은 2년이나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다. 실밥을 풀고 집으로 돌아와 화장대에 놓인 아빠 증명사진을 봤다. 사진 속에는 청년이던 아빠가 있다. 수술하고 나니 사진 속 아빠와 더 닮은 거 같다. 상안검 수술을 해서 처진 눈이 올라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덜 쳐진 것 같다. 사진 속 젊은 시절 아빠의 눈처럼 말이다. 

병원 다녀온 이야기를 글쓰기 모임에서 풀었다. “모니터 속 그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냐?”라는 민해의 질문에 “전혀!”라고 답했다. 전혀, 단 일도 흔들리지 않았다. 눈에 쌍꺼풀이 없으면, 콧대가 좀 낮으면, 가슴이 좀 작으면, 어딘가 살이 좀 많으면 어떤가! 내가 연예인을 할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냥 지금 이대로의 내가, 아빠를 닮은 내가,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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