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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니 Apr 08. 2024

나는 과거에 드라큘라였다

고통에 강해질 수 있는 치아교정

학창 시절 나는 꽤 많은 별명을 보유한 사람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드라큘라'였다.

우리 집안 내력 중 하나는 작은 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 덕에 치아의 배열이 가지런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나의 치아 상태가 가장 심각한 편이었는데, 급한 성격 탓에 치아를 뽑아버려야 하는 시기가 오기도 전에 스스로 냅다 뽑아버린 탓에 드라큘라처럼 양쪽 나란히 송곳니를 가지게 되었다. 덧니로 인해 송곳니는 아래 치아와 잘 맞물리지 않았고 결국 드라큘라 이빨의 완성인 뽀족한 모습까지 완벽하게 갖추게 되었다.




드라큘라 치아의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웃음을 완전히 가려 버렸다는 것이었다. 치아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을 때면 어김없이 나의 덧니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고, 어느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입을 가리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물론 몇몇의 사람들은 이런 나의 모습에 조신하고 여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오해를 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거리가 참 멀다. 나는 내 치아의 상태가 너무 부끄러웠고, 이것을 가리고 웃는 것이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서 꼭 언젠가는 치아교정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나는 결국 20대 후반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치아 교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이가 조금 있는 상태로 시작하는 치아교정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아니, 사실 치아교정 자체가 나이를 불문하고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내가 치아교정 상담을 처음 가서 느낀 사실은 나의 경우는 교정이 쉬운 케이스에 속했으며, 치아교정을 하기 전 나의 치아 상태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충치 치료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치과는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공간이었다. 사실 고통의 정도로만 따져본다면 치과에서의 고통은 악 아파!라는 느낌보다는 은근히 아파...라는 느낌에 가까운 것 같은데 이상하게 가장 두려운 병원이 치과인 것 같다.




우리가 치과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치과에서 들리는 익숙한 듯 낯선 위이잉 하는 기계음 소리는 쉴 새 없이 귓가를 울리고

장시간 입을 벌리고 누워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침을 애써 삼켜내야 하고

치료의 두려움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손도 꽉 잡아야 하니까 말이다




한 달의 기간 동안 고통 속에서 충치 치료를 끝낸 다음 본격적인 치아교정에 들어갔다. 우선 치아를 가지런하게 배열하기 위해서 4개의 치아를 발치했는데, 생각보다 발치는 충치 치료보다 더 아프지 않았다. 워낙 순식간에 발치가 이루어지고 마취의 힘 덕분인지 정말 금방 괜찮아졌었다. 발치 이후에는 기본 교정 장치인 브라켓을 부착한 다음 철사를 이용해서 치아를 배열하는 작업을 거친다. 그리고 스크루라는 나사를 잇몸사이에 박아 고무줄로 치아를 당기는 작업을 했으며, 기본적인 배열이 끝나게 되면  파워체인으로 세부적인 치아의 틈이나 배열을 조정하는 작업이 꽤 길게 이루어진다.




내가 이렇게 모든 치아교정의 과정을 상세하게 나열한 이유가 있다. 대략 2-3년이라는 시간 동안 위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한 가지 강점이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고통에 강해진다는 것이다. 입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교정 과정들은 매번 신선하고 새로운 고통을 나에게 안겨 주었다. 어떨 때는 욱신한 듯 우리한 고통... 사투리인 건 알지만 우리 함을 대체할 단어를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어떨 때는 잇몸이 떨어져 나갈 듯한 고통, 어느 날은 입 근육이 찌릿한 느낌을 받는 고통까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고통들을 섭렵하다 보니 고통에 굉장히 강해진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교정인들은 아마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고통에 강하다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꽤나 괜찮은 장점이 된다.

칼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여도 덤덤할 수 있고,

문에 발가락을 찍혀도 작게 소리를 지를 수 있으며,

무거운 물건을 옮기다가 무릎을 찍혀도 금세 털고 일어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살면서 고통스러운 순간을 만나게 되더라도 나는 조금 더 많은 종류의 고통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새로운 고통도 수용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치아교정을 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가지런한 치아를 가지지 못한 것에 하늘을 원망한 적이 있었다. 치아교정을 하면서도 왜 나는 이런 고통의 겪어야 하는지 예쁜 치아를 물려주지 않은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치아교정이 끝난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정말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닌 고통의 순간들이었다.




고통은 순간이라는 단어와 함께 온다. 인생을 살면서 아무리 아픈 타격을 받더라도 그 고통은 순간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냥 그 순간을 견뎌내기만 하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그 순간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기만 하면 된다. 그럼 시간과 함께 고통도 지나가고 다시금 일상이 찾아오니까 말이다. 치아교정을 끝낸 날, 매끈해진 치아를 보며 처음으로 입을 가리지 않고 밝게 미소를 지어보았다. 어릴 때부터 그토록 바랬던 나의 모습이었다. 만약 치아교정의 과정이 힘들고 아프다고 포기해 버렸다면 인생을 끝나는 순간까지 결코 보지 못했을 나의 미소였는지도 모른다.




드라큘라가 가리고 있었던 미소를 찾만들어 준 것은

고통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낸 바로 나의 묵묵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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