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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Jun 15. 2023

"우울해서 당신이 얻은 게 뭔가요?"



"우울해서 당신이 얻은 게 뭔가요?"


7년 전 우울로 첫 상담을 받았을 때 상담자의 뜬금없었던 질문. 한참 우울의 터널에 있어 괴로움을 호소할 때였는데 우울해서 당신이 얻은 게 뭐냐니. 그 질문을 받고 난 당황스러웠고 불쾌했다. 그래도 화가 나지 않은 척, 담담히 대답했다. "우울하니까 아무래도 제가 덜 움직이게 되니, 남편이 더 움직이게 되는 거 같아요. 그전에는 제가 잔소리를 해야 마지못해 했던 것들도 알아서 도와주고요...". 대답을 하면서 알았다. 내가 우울해서 얻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걸. 우울이 주는 혜택은 꽤 괜찮았다.



로리 고틀립 <마음을 치료하는 법>에는 만성화된 우울증에 시달리는, 가족들과 오랫동안 단절하며 지내온 70대 여성 리타가 내담자로 등장한다. 로리는 인생의 모든 좋은 것들과 이별을 고하며 살고 있는 리타에게 말했다. 인생의 좋은 것들을 누리지 못해 득을 보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고. 리타는 그때의 나처럼 당황했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마음에 담아온 자신의 고통을 새롭게 생각하는 조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울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는 처벌과 같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는 고통의 회피이기도 하다. 우울하면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세상 밖에서 경험해야 할 책임, 갈등, 스트레스를 우울하다는 이유로 합법적인(?) 회피가 가능하다. 외부에서 오는 비난을 맞닥 드리지 않고 오로지 내부의 자기 비난을 견디면 된다(물론 그 내부의 자기 비난이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거센 경우도 있지만...).



꾀병으로 얻는 2차적 이득은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울로 얻는 혜택에 대해선 생각하기가 어렵다. 내가 경험하는 주관적 고통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족 체계 안에서 내가 우울하기 때문에 얻는 유익은 분명히 있다. 잔소리가 심했던 내가 우울할 땐 잔소리하지 않아도 가족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고, 우울한 자녀는 바쁜 부모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으며, 우울한 부모는 자녀에게 민감하게 반응해 주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따뜻하고 편안한 공감만 경험하게 되는 심리상담은 좋은 상담이 아니다. 때로는 따갑고 불편한 직면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데 더 효과적인 약이다. 내가 상담자들로부터 받았던 따가운 공감, 그리고 내가 내담자들에게 건넸던 따가운 공감들이 떠오른다. 독이 아닌, 약으로 받아들여졌길.


@inside.talk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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