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호박 Dec 27. 2021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어린이의 편지

내가 1학년까지 다니던 초등학교 이름은 ‘ㄴ현초등학교’였고, 1학년을 마칠 때쯤 전학을 간 학교는 ‘ㅇ현초등학교’다. 딱 두 학기만 다니던 학교여서 그런지 ㄴ현초등학교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 정확하게 기억나는 사건들을 나열해보자면 학교 뒷산에 접근 금지 테이프가 붙었을 때 새벽에 그곳에서 귀신이 나타나 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 학교에 마치면 소원이라는 친구의 엄마가 운영하는 피아노 학원에 갔던 것, <예쁜 아기곰>이라는 노래를 배웠던 것, 비 오는 날에는 아파트에서 학교에 가는 봉고차를 기다리며 달팽이를 플라스틱 컵에 넣어 한참을 길렀던 것. 그리고 볼거리에 걸려 교실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데, 나에게 ‘전염병 걸린 애’라고 손가락질하며 책상을 띄우던 남자 사람 짝꿍. 나는 그때 당당하지 못했고 또래에 비해 말이 더디어 말수도 적었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교실 앞문으로 도착한 엄마를 보자마자 달려 가 엉엉 울었다.


그렇게 ㄴ현초등학교를 떠나고 ㅇ현초등학교에 전학을 와서 또래 아이들처럼 말하고 한층 밝아졌을 때쯤 싸이월드 전성기가 찾아왔다. 아빠에게 선물 받은 문화상품권으로 도토리를 충전하고 매일매일 bgm을 바꿨다. 그러다 문득 ㄴ현초등학교에 다녔던 친구들이 궁금해졌다. 또렷하게 기억나는 이름은 소원이와 영식이뿐이었다. 사실 두 학기를 다니면서도 말수가 적었기 때문에 친구가 많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피아노 학원 원장님의 딸이었던 소원이는 밝고 똑 부러지는 아이였다.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이 끝나고 혼자 문 앞에 쭈뼛쭈뼛 서서 친구들이 놀고 있는 것을 멀리서 보고 있으면, 소원이는 언제든 나를 불러 함께 땅따먹기를 하며 놀았다. 영식이는 옆 아파트에 살았던 친구였다. 세일러문을 (이성으로) 좋아한다고 했고 영식이 엄마와 우리 엄마가 가깝게 지내서 여행도 함께 다녔다.


그 두 친구를 찾기 위해 나의 파도타기 여행은 시작됐다. 출신 학교를 검색해 보고 이름도 검색해 보았다. 사실 더욱 가까이 살았던 영식이가 더 보고 싶었지만 결국 싸이월드를 통해 내가 만나게 된 건 소원이었다. 소원이는 내 미니홈피 사진첩에 등록되어 있는 내 얼굴을 보고 나를 바로 알아보았다. 소원이는 여전히 그 동네에 살고 ㄴ현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ㄴ현중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라고 했다. 텍스트로 만난 것뿐이지만 소원이의 텍스트에는 밝은 목소리와 기운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나는 이사를 와서 적응을 잘했고, 여전히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소원이는 언젠가 우리가 함께 놀았던 동네에 놀러 오면 꼭 만나자고 말하며 “너는 여전히 편지를 쓰니?”라고 물었다.


어떤 편지를 말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1학년 때의 기억은 앞서 나열한 사건들 빼고는 대부분 잊혔기 때문이었다. 그 편지가 어떤 편지냐고 물었고, 소원이는 내가 말수가 적은 대신 늘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써서 건네주었다고 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들이 내 편지를 받았다고. 의아했다. 신기하게도 몸으로 함께했던 것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손으로 편지를 쓴 일은 기억나지 않았다. 학교와 학원에 갔다가 돌아오면 유리가 올려져 있는 책상 앞에 앉아 그 당시 유행했던 god 공책에 일기를 썼던 기억뿐이었다.


아니, 난 요즘 편지를 쓰진 않아.”라고 대답하니 소원이는 “아직도 네가 써 준 편지가 집에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어떤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지만 왠지 말 못 하고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더 이상 그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잘 지내라고, 다음에 그 동네에 꼭 놀러 가겠다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때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한 번도 그 동네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이제 나는 편지를 쓰기보다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남자 친구가 특별한 날마다 선물을 건네줄 때, 선물보다 먼저 편지를 열어보는 일이 좋다. 친구의 손길과 마음이 담긴 카드를 읽을 때는 종종 울기도 한다. 아주 많이 기뻐서. 이제는 편지 대신, 집에 남은 와인을 한 잔 꼴 딱 꼴 딱 넘기며 옛날 일들을 글로 쓰는 일이 더 즐겁다. 언젠가 박준 시인의 산문집을 읽다가 마음에 담아 두고 싶어 저장해 둔 글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늦은 답서를 할 것이다. 우리의 편지가 길게 이어질 것이다.”

_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편지를 먼저 건네지 못하더라도 받은 마음에 못지않은 답이 담긴 답서를 쓰고 싶다. 한 해 동안 나를 많이 웃게 해 준 사람들의 위로가 담긴 글이 하나씩 떠오른다. 빠르게 답서하겠다고 약속하지는 못하겠지만 천천히, 아주 길게 편지를 주고받고 싶다. 지금 문득 생각이 나는 그 사람들과 오래 사랑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란색 주스를 마시는 섬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