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9월, AB형 여아가 태어났다. 그리고 3년 후 1997년 3월, B형 남아가 태어났다. 희한하게도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쌍둥이 태몽을 꿨다고 한다. 엄마가 푸른 들판에 온 계절을 느끼며 누워 있었는데, 늑대만 한 개들이 엄마가 있는 곳으로 우르르 달려갔다고 한다. 엄마는 두려움에 벌떡 일어나서 도망을 쳤는데 개 두 마리가 엄마를 덮쳤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 개 떼를 봤을 때 느꼈던 감정과 달리 그 두 마리의 개들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고 한다. 그리고 왠지 한 마리는 암컷, 또 다른 한 마리는 수컷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쌍둥이를 임신한 걸로 생각했다. 1994년 여름은 무척 더웠는데,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엄마는 에어컨 없는 집에서 큰 대접에 얼음을 가득 담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태어난 여자 아이가 태어났고, 한 달 내내 얼음을 씹은 탓에 출산 후 치아가 깨져서 고생했다고 한다. 그 여름을 지나 태어난 아이가 나였다.
3년 뒤, 태몽 때문에 쌍둥이인 줄 알았던 남자 형제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나와 많은 것이 달랐다. 첫째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 말처럼 나는 아빠와 얼굴도 닮고 발 모양도 닮았다. 신기하게도 옷이나 가구 취향도 비슷했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진 뒤 아빠와 나, 동생이 셋이 살면서 동생을 '돌연변이'라고 부를 정도로 동생은 나와 정말 다른 아이였다. 동생은 호기심이 많고 무엇을 시작할 때 신중하고, 천천히 움직인다. 나는 좋아하는 것만 들여다보고 무엇을 시작할 때 늘 급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답답한 것을 숨이 막힐 만큼 싫어한다. 사춘기 때는 동생이 양말 신는 모습을 보고 답답하다고 화를 낼 정도였으니까.
주 6일제로 토요일까지도 일을 했던 아빠는 일요일이 되면 우리를 데리고 어디든 갔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아이들처럼 보이게 하지 않으려고 좋은 곳을 많이 데려갔던 것 같다. 설악산도 가고, 인천에서 서울까지 차를 끌고 경복궁도 산책하고, 광화문 교보문고에도 갔다. 그 당시 광화문 교보문고는 '모든 책이 다 있다'는 이미지로 홍보를 해 왔다. 책으로 가득한 그곳을 들어가면 동굴 속에 들어온 것처럼 아무 소리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책과 글자만 보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여러 책을 샀고 나는 책을 만지고 들여다보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빨간 머리 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처럼 그 당시 초등학생이라면 읽던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동생과 내가 함께 기억하고 있는 책은 <아기 참새 찌꾸>다. 첫째는 말을 더듬고, 둘째는 왼손잡이. 아빠는 말을 더듬는 습관을 가진 나를 답답해하거나 보챈 적이 없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천천히 말하라고 나를 기다려주었다. 동생이 글씨는 왼손, 가위질은 오른손으로 하는 걸 보고 아빠는 동생을 양손잡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양손잡이가 되기를 원했다. 아빠는 나와 동생에게 숙제를 주었다. 나는 소리 내어 천천히 또박또박 <아기 참새 찌꾸>를 읽는 것, 동생은 오른손으로 <아기 참새 찌꾸>를 필사하는 것. 우리는 이 책을 무척 즐겁게 읽었다. 같이 놀이터에 가는 날에 참새를 보면 그 참새에게 "찌꾸야"하고 불렀다. 그래서 그럴까. 어른이 된 지금도 참새를 보면 애틋하고 마음이 울렁이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찌꾸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 말을 조금은 더듬고, 여전히 왼손잡이다. 그리고 지금도 함께 있을 때 참새를 보면 찌꾸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찌꾸를 만난 것도 아니고 기른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책 속의 찌꾸를 만났고, 아주 많이 다르게 자랐다. 그렇지만 우리는 같은 것을 봤다. 늘 같은 걸 먹었고, 같은 학원을 다녔다. 아빠는 출근하고 할머니가 동네 뜨개방에 마실을 나가 둘만 있던 시간엔 우유 까르보나라를 만들어 먹으며 같은 만화를 봤다. 우리가 엄마의 태몽에 쌍둥이처럼 나타났던 건 우리가 쌍둥이만큼 많은 것을 함께했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아직도 너무 다르지만 키가 자라면서 생긴 살과 뼈, 근육에는 같은 이야기들이 쌓여 있을 것이다.
엄마와 헤어지던 날이 기억이 난다. 엄마는 우리 네 가족이 살고 있던 아파트에 남고, 나와 동생은 아빠 차를 타고 이사하던 겨울밤이었다. 하늘이 아주 맑고 입에서 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던 날이었다. 그때 나는 어른인 척했다.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는 것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듯 엄마와 인사를 했다. 다섯 살이었던 동생은 은연중에 엄마와의 시간이 끊어진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동생이 울기 시작했다. 콧물이 나고 토가 나올 만큼 많이 울어서 엄마가 동생을 부둥켜안았다. 한참을 울고 우리는 차에 올랐다. 그날 엄마는 오랫동안 베란다에 서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동생은 뒷좌석에서 몸을 돌려 뒤를 봤고, 나는 앞 좌석에 앉아 사이드미러를 바라봤다. 우리는 그날도 다른 방식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