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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박 Oct 13. 2024

머릿니

할머니 댁에서 일 년 정도 세 가족, 8명이 함께 살았다. 가장 큰 방은 할머니 방이었고, 작은 방은 고모네 가족과 우리 가족이 나누어 썼다. 한 방에 4명, 3명이 살았던 셈이다. 고모네 가족이 입주할 아파트가 완공될 때까지 그렇게 함께 살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그게 무척이나 싫었던 생각이 난다. 동생을 챙기는 것도 싫은데 친척 동생이 두 명 더 있다니! 거기에 혼자 조용히 보내고 싶던 시간에 두 명만 소리를 내도 고요한 시간이 금방 깨졌다. 그래도 조금 좋았던 것은 엄마의 자리를 대신할 고모가 있었다는 것이다. 고모는 매일 출근을 했지만 조금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당신의 두 아이만 케어하기에도 바빴지만, 아빠가 늦게 들어올 때면 우리를 아낌없이 살펴 주었다. 물론 아주 가끔은, 고모네 가족이 방에서 다른 간식을 먹을 때 나도 모르게 질투가 나기도 하긴 했지만.


그래서 나에게 '고모'는 '이모'만큼이나 친숙한 단어다. 종종 친구들에게 고모네 놀러 간다고 얘기하면 고모네는 왜 가냐고 묻곤 했는데, 이유는 없었다. 그냥 놀러 가는 거였다. 그리고 때때로 고모는 어려운 존재 아니냐고 묻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고모의 얼굴을 가만히 떠올리면, 나에게 고모는 그저 고마운 사람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에 들어갈 때 키우기 쉬운(죽는다고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식물을 보내주었을 때나, 새 김치통을 사서 김장 김치를 가지런히 담아 내 시부모님 댁에 보내줄 때조차도. 고모는 사랑을 말하진 않지만 고모가 잘하는 것들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날씨가 꽤 더운 토요일이었다. 학교는 12시쯤 마쳤고, 집으로 돌아가니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유치원생 동생들이 있었다. 할머니가 차려 준 점심을 먹고 동생들과 땀 흘리며 놀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머리가 가려웠다. 생각해 보니 그전부터 머리가 가려웠던 것 같다. 레고로 집을 만들고 동생과 서로 지금까지 모은 스티커 자랑을 하면서도 중간중간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는 시원한 나무 장판에서 우리는 낮잠을 잤다.


고모가 돌아와 땀에 젖어있는 우리를 보고 한 명씩 씻으라고 했다. 동생들이 씻는 걸 기다리며 나는 머리를 긁었다. 고모가 머리가 가렵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했다. 고모는 내 머리카락 속을 살피더니 이가 생긴 것 같다며 고모부에게 전화했다. 들어올 때 머릿니 약을 사 오라고. 머릿니가 무엇인지도 몰랐으니 처음에는 창피한 줄도 몰랐다. 그냥 머리에 벌레가 좀 있는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고모부가 약국에서 머릿니 약을 사서 집으로 왔다. 나는 고모 앞에 앉았다. 고모는 실빗을 가지고 약을 내 머리 구석구석 바르기 시작했다. 머리숱이 많아서인지, 머릿니가 많아서인지 약 한 통을 꼬박 다 썼다. 약이 머리 사이사이로 스미는 동안 고모는 다른 동생들 머리카락 속을 살폈다. 그리곤 다른 약통을 꺼내 동생들의 머리에도 약을 조금씩 발랐다. 그때 알았다. 머릿니는 옮는다는 걸.


창피함이 몰려왔다. 누군가에게 전염된다는 건 좋지 않다는 걸 어린 나이에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때 나는 스스로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고 싶었다. 고모가 내 머리카락 구석구석 숨어있는 벌레들을 잡았다는 것도, 내가 가지고 있는 벌레들을 동생들한테 옮겼다는 것도 모두 부끄러웠다. 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와 고모와 머릿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는 그날 밤, 나에게 머리 감는 법을 다시 알려주었다. 속상한 마음에 짜증도 조금 냈던 것 같다. 머리카락에 물을 충분히 적시고 샴푸를 적당히 짜내어 거품을 충분히 낸다. 그리고 머리카락에만 묻히는 것이 아니라 두피 구석구석에 거품이 닿게 한다. 그리고 헹굴 때는 시간을 들여 충분히 헹군다. 바가지에 대고 물을 머리카락에 뿌리는데, 바구니에 거품이 남지 않을 때까지 오랜 시간 헹구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아빠는 내 머리카락을 여러 번 헹구고, 두피까지 축축하지 않게 오랜 시간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 주었다.


대학교를 다닐 때, 하루는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봄이었을까, 가을이었을까?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바람이 꽤나 차서 발가락이 차가워지던 때였다. 나는 얇은 이불을 온몸에 푹 덮고 창문을 열어놓고 햇볕을 만끽하고 있었다. 인천에서 일을 하던 고모는 일이 끝나고 떡볶이와 튀김을 사서 우리 집으로 왔다. 집에는 나와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와 나, 그리고 고모는 둥그렇게 앉아 떡볶이를 나누어 먹었다. 고모는 20년 가까이 방사선사로 일했기 때문에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러니 어깨가 성할 리가 없었다. 고모는 떡볶이를 먹으며 어깨 통증으로 고생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도 집안일도 많고 일도 바쁘다고. 할머니는 밤에 태어난 개띠라서 그렇다고 했다. 옛날 시골집을 생각하면, 개들은 밤새 집을 지키느라 바쁘다고. 작은 소리에도 깨어나서 집과 주인을 지키려 바삐 보내는 시간이라고 했다.


- 나는요? 나도 개띠인데. 그런데 나는 아침에 태어났어요. 6시쯤.

- 아침에 태어난 개띠는 상팔자지. 6시면 시골에서 아침밥 먹을 시간이잖아. 사람들 먹던 거 배불리 먹고 쉴 때지.


밤에 태어난 개띠와 아침에 태어난 개띠가 고모와 조카 사이로 만났다. 아침에 태어난 개띠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밤에 태어난 개띠의 보살핌을 받았다. 밤에 태어난 개띠는 용감하다. 어느 시간에도 아이들을 보살피고 본인의 일을 묵묵히 해 냈기 때문에. 언젠가 밤에 태어난 개띠가 귀가 어두워져 새벽 내 집을 지키지 못할 때, 아침에 태어난 개띠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밤에 태어난 개띠를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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