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오래된 주택은 아빠가 스무살 때쯤 지어진 집이라고 했다. 대충 1988년쯤이었을 것이다. 오래된 주택을 생각하면 마당이 넓고, 하나의 온전한 집을 떠올릴테지만 그런 집은 아니었다. 마당은 한 사람이 줄넘기를 하면 꽉 차는 크기였으며, 담이 낮고 집이 높아서 창문을 열어두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집 거실을 볼 수 있었다. 새로 산 운동화를 빨아서 마당에 널어두면 때때로 학생들이 몰래 담을 넘어 들어와 내 운동화를 훔쳐가기도 했다. 거실의 바닥과 벽은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바닥은 나무라 보일러가 돌지 않고 방만 보일러가 돌아서 겨울에는 거실에 가스를 켜놓고 살아야 했다. 교실에서 쓰던 가스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여덟 살의 끝자락, 할머니 댁으로 이사한 날이었다. 나는 겨자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할머니의 집으로 이사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어른들이 이야기할 때 옆에 앉아 듣기를 좋아했던 나는, 이모할머니들이 나이 들어서 손주들을 어떻게 보냐며 힘들어서 안 될 거라고 이야기했던 걸 기억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할머니는 드라마나 예능에서 그려지는 그런 할머니도 아니었다. 우리 할머니는 말이 없고, 잘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살면서 할머니가 우는 모습을 본 건 단 한 번뿐이었다. 충청도 시골집에서 첫째로 태어난 할머니는 늘 묵묵하게 시키는 일을 하고 동생들을 보살필 뿐이었다. 그렇게 나와 동생은 그 집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되었다.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할머니와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흔한 옛날 어른처럼 딸보다는 아들, 손녀보다는 손주를 예뻐하는 덕에 동생이 있으면 집안에 부드러운 공기가 돌았다. 얼굴도 꽤 귀엽게 생겼던 동생을 할머니가 무척 예뻐했고 늘 맛있는 밥을 차려 주었다. 어린 나이에도 알 수 있었다. 동생은 손주라서 더 사랑 받는다는 것을. 그래도 그냥 모른 척 해야했다. 그래야 내가 이 집에서 지내기가 편하니까. 때때로 아빠는 나를 더 사랑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다.
새 학교에 적응이 되었을 때쯤 주말에 아빠가 할머니와 영화를 한 편 보고 오라고 했다. 영화관이 익숙치 않은 할머니와 영화관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턱 막혀 왔다. 인천에는 애관극장이라는 오래된 극장이 있는데, 극장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야 했다.
꽤 따뜻해진 봄이었다. 할머니와 버스 정류장에서 초록색 버스를 기다렸다. 키가 큰 나무들이 파랗게 물이 들 때였다. 우리가 탔던 초록색 버스는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지하철역에 도착하는 버스였기 때문이다. 어린 나와 할머니가 버스를 타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나는 창가에, 할머니는 복도쪽에 나란히 앉았다. 버스가 우회전하고, 흔들릴 때마다 나는 몰래 의자를 꽉 잡았다. 할머니와 어깨가 닿지 않도록 몸에 힘을 주었다.
아빠가 예매해 둔 영화는 <집으로>였다. 영화는 이런 내용이었다. 도시에 사는 손주가 시골에 사는 할머니댁에 머물게 되면서, 시골 생활과 할머니의 사랑을 알아가는 이야기. 손주의 이름은 상우였다. 상우는 나와 달리 싫은 걸 거침없이 표현했다. 또 영화에 나오는 할머니는 내가 느끼는 우리 할머니와 달리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었던 것 같다. 아빠는 내가 할머니를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영화를 예매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할머니를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그리고 할머니는 나를 사랑할까? 왠지 영화 속 이야기는 나와는 멀다고 느껴져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던 아빠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와서도 나는 할머니를 사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 나에게 할머니는, 나보다 동생을 더 사랑하는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할머니를 다시 만난다면 물어보고 싶다. 할머니는 그 영화를 어떻게 보았느냐고. 아마 영화 줄거리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실 것이다. 어쩌면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오고갔던 시간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사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뭐라도 괜찮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우리는 함께였기 때문이다. 그날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편안하게 앉아있었다. 버스가 흔들려 할머니와 어깨가 닿아도 괜찮았다. 그냥 그렇게 나란히 앉아있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