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cegraphy Mar 11. 2022

'How are you?' 여행의 시작

발리 YTT(6)

한국인에 비해 서양인들이 더 친화적(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How are you?'라는 말 덕분인 것 같다.

"How are you". 가장 기본적인 안부인사로 요즘에는 유치원에 가기도 전에 배우는 말이다. 한국말로 직역하면 "너 어때?", "잘지내?" 정도로 할 수 있다. 한국에선 이말들이 좀 어색하다. 'How are you'만큼 많이 쓰이지 않는다. 토종 한국인인 내게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말이다.

발리 요가스쿨은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 3월 수강생 16명 중 인도네시아인은 2명 뿐, 영국에서 온 학생이 4명으로 가장 많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미국, 이집트, 싱가포르, 스페인, 한국에서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한곳에 모였다. 나빼고 다들 영어를 잘한다.

국적이 다 다른만큼 거의 모든 대화를 영어로 한다. 'How are you'는 대화의 시작이다. 사람들을 쉽게 친해지게 하는 마법의 문장이다. 눈만 마주치면 'How are you'가 나온다. 한국 사람들처럼 눈치를 보며 눈을 피하지 않아도 된다.

코스가 시작된지 3일 뒤에  합류한 나는 다들 친해보여서 적응이 힘들줄 알았다. 하지만 다들 'How are you, Kim'이라며 웃는 얼굴로 내게 말을 걸어줬다. 하루에도 몇번씩 마주칠때마다 'How are you?'가 나온다. 이후에는 요가수업이 어땠는지, 잠은 잘잤는지, 밥은 맛있게 먹었는지 시시콜콜한 얘기를 이어나가게 된다.

영어 울렁증.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다보니 또 울렁증이 올라왔다. 인도네시아 사람들과는 거침없이 쓰던 영어가 요가원 첫날 만난 영국식 억양을 가진 친구 앞에선 어버버...쉬운 단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자신감이 없어서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영어를 못하는건 말이 안된다. 초등학교때 재능영어를 배웠고, 중고등학교 6년을 배웠고, 수능에서도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따냈고, 대학교에서도 영어회화/작문 원어민 수업을 들었다. 심지어 카투사에서 미군들과 2년을 보냈다. 해외여행으로 17개 나라를 방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자신감이 없는건 영어 울렁증 때문이다. 아무래도 한국말에 'How are you?'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MBTI 테스트를 하면 ENFP가 나온다. ENFP의 특징 중 마이너한 두가지가 이곳에서 발현되고 있다. '아싸(아웃사이더) 중의 인싸(인사이더), 인싸 중에 아싸', '남들은 다 사교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본인은 내성적이라고 생각함'.

요가원 생활 8일차, 이제는 먼저 'How are you?'라는 말을 건넨다. 그러면서 친구들을 알아간다. 여행의 묘미는 '사람'이다. 사람을 알기 위해선 대화가 필수다.

요가스쿨 수강생 특성상 자유로운 영혼들이 많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니키와 타마라는 health management가 전공인데, 발리 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진행중이다. 논문주제를 세계의 요가문화로 정했는데 멕시코에도 요가가 있다며 10월엔 그곳으로 간다고 한다. 자유로운 영혼, 부러운 삶이다. 여행과 하이킹, 자전거타기를 즐기는 활동적인 친구들이다. 요가실력도 이미 강사 수준이다.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니콜과 여행얘기를 하다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묻기에 네팔의 기억을 떠올렸다. 네팔 아이들과 바람빠진 공으로 함께 축구하며 좋아하고, 집에 초대받아 대접받은 이야기를 전했다. 아, 그때도 역시 여행에서 남은 기억은 사람이었다.

퍼스널트레이너이자 테라피스트인 영국에서 온 제이드는 우붓 관광지에서 갇혀있는 루왁(너구리같은 동물)을 보고 크게 화를 냈다. 이렇게 좁은 케이지에 동물을 가둬두면 어떻게 하냐며 직원을 다그쳤다. 동물 애호가다.

이집트에서 온 사라는 이 코스를 한참 전부터 준비했다고 한다. 이 코스만을 위해 이집트에서 2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며 왔다. 스페인에서 온 크리스티앙은 철학 선생님이다. 그 역시 이 코스만을 위해 발리에 왔다. 사진찍는것과 여행, 요가를 즐긴다.

형같은데 3살 어린 톰. 영국에서 온 서핑을 좋아하고 요가를 즐기는 자유로운 영혼. 뉴질랜드에서 5년동안 서핑강사를 했다고 한다. 싱가폴-프랑스 혼혈인 션은 포르투갈 웰니스호텔에서 일하다 코로나 때문에 싱가폴 부모님 댁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대학교는 대만에서 나왔다고, 그의 무대는 세계다.

나만큼 충동적으로 이곳에 온 사람이 없다. 다들 철학을 갖고 열심히 살면서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는 친구들이다. 삶을 가치와 철학, 실행으로 가득 채우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이다. 이들이 고민끝에 긴시간을 투자하기로 한 선택을 나는 운좋게도 함께 누리고 있다.

채식주의자, 동물애호가가 대부분이다. 채식도 길들여지니까 맛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활방식을 일부는 따라할 수 있을 것 같다.

'How are you?'는 남에 대한 관심이다. '리스너(청자)'를 기꺼이 자처하는 질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How are you'는 당신의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양보이자 관용이다. 대화의 문을 여는, 새로운 멋진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여행의 시작이다.

이전 18화 '잘먹고 잘자는법' 가르치는 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