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암이 겨드랑이 임파선에 미세하게 전이가 된 거 같다고 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유방만 신경 쓰면, 거기에 있는 암만 없애면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유방암 환자들 중 임파선 전이는 흔하다고는 하나 나는 아닐 줄 알았다. 보통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나는 아니겠지. 나는 아닐걸?
하지만 이 공식은 보란 듯이 깨졌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세침 조직검사를 했다. 조직검사에 들어가기 전 시술 동의서에 싸인을 하던 처참한 심정이란.
간호사분이 크기가 작고 흔한 현상이라고 말해 줘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일단 암이 더 있다는 거잖아요.
그때의 내 얼굴을 보진 않았지만 아마 굉장한 흙 빛이었을 거다.
검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밀려오는 현타를 이기지 못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대체 뭘 하는 건가, 싶고. 겨드랑이에 왜 또 주삿바늘을 넣어야 되는 건가 싶고. 불 꺼진 캄캄한 초음파실에서 잔뜩 긴장해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조직검사를 하고 초음파실을 나오니 그제야 인적 사항이 적인 바코드 스티커를 손등에 붙인 내가 물건 같다고 느껴졌다.
검사 전에 바코드를 삑- 하고 찍고 검사받고, 다시 다음 검사를 받으러 정해진 코스대로 딱딱 맞춰 이동해야 되는.
참고로 손등에 붙인 인적 사항이라곤 이름, 병원 나이, 혈액형, 담당 교수님 이름이 다였다. 앞으로 이곳에선 이게 제일 중요한 정보구나 싶었다.
내가 어디 학교를 나와 어떤 직장을 다녔는지 따윈 필요 없는. 그동안 내가 쓰던 이력서의 정보와는 확연히 다른.
갑작스레 자괴감이 몰려온 나는 암병원 2층 원무과 앞에서 엄마한테 여행을 가자고 했다. 그렇게 며칠 뒤 나는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과 세상 축 처진 가족여행을 떠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