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나 축사는 운영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유발될 수 있고, 오염물질 배출로 인근 주민들에게 악영향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게 예상됩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당연하게도 공장 등 환경에 영향을 미칠 만한 시설이 인근에 들어서는 것을 좋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공장 등을 통해 처리하는 업무가 사회적으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면 어딘가에서는 그 공장이 돌아가야 하므로 주민들의 반대가 있다 하더라도 인허가의 주무 부처(통상 지방자치댄체의 장입니다)는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조율해서 협의가 이루어질 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이러한 책무를 다하지 않고 '주민들의 민원이 들어왔으니 이미 내준 수익적 처분을 취소하겠다'라는 입장을 취하면 어떻게 될까요? 사업주를 대리하여 약 4년간의 법정 다툼을 진행한 끝에 1,2,3심 모두 승소한 사건이 있어 간략하게 소개드려 봅니다.
[폐기물관리업 허가 절차 개관]
소각장, 유기성오니 처리업 등 폐기물처리업은 "폐기물관리법"이라는 법률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폐기물관리법에는 폐기물의 수집 및 운반, 재활용 또는 처분을 업(이하 "폐기물처리업")으로 하기 위한 상세 사항들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폐기물처리업은 환경부(지정폐기물 처리) 또는 관할 지방자치단체(그 외 폐기물 처리)가 허가해야 업무를 할 수 있는데, 절차 진행의 효율을 위해 허가 이전에 사업계획서를 기반으로 그 사업이 적정한지 여부를 먼저 심사하게 됩니다.
만약 허가권자가 사업계획서가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면 허가 이전에 적정통보(적합 통보)를 하게 되고, 이후 2년(수집 및 운반업은 6개월, 소각 또는 매립시설은 3년)이내에 기준에 맞는 시설, 장비, 기술능력을 갖추어서 허가권자에게 허가를 신청하면 됩니다. 사업자가 적정통보(적합 통보)를 받았다면 이후 요건을 갖추어서 허가를 신청하면 되고, 이때 허가권자는 지체 없이 허가를 해야 합니다(폐기물관리법 제 25조 제3항).
[사건의 사실관계]
폐기물처리업에서는 법령에 따른 규제 외에도 현실적인 제한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앞서 말씀드렸던 지역 주민들의 민원인데, 폐기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폐기물처리시설에서 오염물질이 배출되지 않을 수는 없는지라 시설 부근에 거주하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폐기물처리시설이 인근에 들어오는 것이 반가울 리 없음은 당연합니다.
제가 수행했던 사건은 폐기물처리업 중 종합재활용업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의뢰인은 관할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폐기물처리업 허가를 위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여 "적정통보"를 이미 받은 상황이었으나, 지자체에서 다른 사정 변경이 전혀 없음에도 민원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적정통보 자체를 취소해 버렸습니다.
[1심 대응 및 결과]
1심에서는 아래 사항을 주요 근거로 대응하였습니다.
1. 처분사유가 없다.
가. 오염물질 배출이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1) 오염물질 및 악취 배출 예상량이 상대방이 주장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
(2) 오염물질 및 악취는 방지시설 및 운영방식에 따라 현저히 줄일 수 있다.
(3) 이러한 사정은 이미 적정통보(적합 통보) 당시에 존재하던 것이다.
나. 적정통보(적합 통보)에 '민원 해결'을 부관으로 붙인 것이 위법하다.
(1) '민원 해결'의 의미가 불분명하다.
(2) 민원이 요지가 오로지 '공사 중지'에 국한되어서 사업 중단 외에 대안이 없다.
(3) 민원 해결을 위해 부지 이전 검토 등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2. 신뢰보호의 원칙에 위반하였다.(적정통보를 이미 한 상황이지 않으냐.)
3. 비례의 원칙에 위반하였다.(사업자가 감수해야 할 손해가 지나치게 크다.)
4. 수익적 행정행위 철회는 예외적인 상황에만 가능한데 이 건은 다른 사정이 없다.
사실관계 중 '예상되는 오염의 정도' 및 '오염을 줄일 가능성'이 결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에, (1)사업계획서에 따를 때 정말로 환경오염이 심각하게 예상되는지, (2)오염이 예상된다면 보완할 수 있는지 여부를 제3자인 감정인의 의견을 통해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형사사건을 제외한 소송에서 변호사는 당사자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만큼 변호사가 사안을 이해하지 못하면 재판부에 문제 상황을 정확히 전달할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사업주와 긴밀히 소통하며 사업계획의 주된 내용을 면밀히 이해하는 한편 전문가와 협업하여 해당 산업 분야의 기술 요체와 주요 화학식을 재판부에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간략하게 정리해 두었습니다. 처음 이해할 때 시간이 꽤 걸렸으나, 이렇게 감정 절차를 위해 미리 공부해 둔 덕에 이후 해당 쟁점이 부각될 때마다 적시에 필요한 주장을 하는데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감정인의 의견은 '(1)환경오염이 예상된다, (2)다만 사업계획서에 따르더라도 대부분 예장이 된다, (3) 일부 미비한 부분이 있으나 보완하면 될 문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위 의견을 뒤집을 만한 다른 결정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1심 재판부는 의뢰인의 주장을 100% 받아들여 전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심지어 처분 사유가 없고 신뢰보호원칙에 위반했다고 보아 그 자체로 위법하다고 판단한 나머지 다른 사유(비례의 원칙 위한, 수익적 행정행위 철회의 위법성)는 더 살펴보지도 않았지요.
[2심 대응 및 결과]
지자체에서 항소하여 2심이 진행되었습니다.
2심에서 지자체는 감정서를 반박하면서 감정인에게 추가로 의견 조회를 하였고, "예상되는 오염물질 배출이 심각하다"라는 1심과 유사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저는 상대방이 주장한 내용 중 기술적인 허점과 산식의 오류 등을 지적하며 감정인에게 우리 입장을 강화할 수 있는 의견을 조회하는 한편, 재판부가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지자체 주장의 근거가 객관적인 사실에 반한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하였습니다.
1심에서 감정 절차가 진행된 경우 항소심에서 추가 판단이 필요한 부분만 쟁점으로 다루는 경우도 많은데, 이 사건은 항소심에서 감정서의 결론 대한 쌍방의 논쟁이 이루어질 정도로 치열하게 서면 공방이 오갔습니다. 재판부 역시 여러 차례 변론기일을 지정하여 쌍방 주장을 명확히 정리하셨고요. 처음에는 쉽게 종결될 것을 기대하다가 예상외로 재판부에서 꼼꼼하게 접근하시는 바람에 진행하는 내내 '혹시나 1심 판결이 뒤집히지 않을까?' 염려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2심 역시 1심을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오히려 1심의 판단을 강화하는 논거들을 많은 부분 추가해 주셔서 우리의 논거에 확실하게 쐐기를 박을 수 있었지요.
[3심 대응 및 결과]
지자체에서 상고하여 3심이 진행되었으나 오래지 않아 항소심의 결론을 그대로 인용하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4년 가까이 진행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소송이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에필로그]
사업주 입장에서는 '원래부터 진행하는 데 문제가 없었던' 절차를 많은 비용을 들여 4년 가까이 지나서야 겨우 재개하게 된느 상황이 무척 억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국가를 상대로 처분의 취소를 다투는 행정소송의 본질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억울한 사정이 있다면 행정소송 승소 후 손해배상의 문제로 접근해야겠지요.
참고로 손해배상 소송 역시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고 바로 승소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복잡하고 어려운 소송을 또 해야 합니다. 게다가 행정소송의 승소 가능성이 애초에 낮은 편이기 때문에 선뜻 소 제기를 하기도 망설여지는 측면이 있지요. (국가를 상대로 싸운다는 건 이렇게나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행정소송은 각 산업 분야를 규율하는 특별법의 논리를 꼼꼼히 따져보고 진행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변수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내공이 요구됩니다. 모든 소송이 예상대로 흘러가면 좋겠지만 현실에서 사건 진행이 낙관적이기만 한 경우는 거의 없을 테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첫 소장부터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한땀 한땀 정성들여 진행한 사건이라 재판부에서 우리 의견을 100% 받아들여 주었다는 데 큰 보람을 느꼈던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