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마언니 Mar 15. 2020

이동 금지령이 내린 이탈리아에서 가족과 함께 있습니다

혼돈의 코로나 사태를 긍정으로 이겨낼 이탈리아

중국에서부터 코로나비루스가 시작될 때

'우리는 중국인이 아닙니다. 한국사람입니다' 딱히 누군가 뭐라고 한 건 아니지만 괜스레 함께 매도되는 것이 꽤나 싫었다. 어필할 수 있는 곳이라면 필사적으로 중국인이 아님을 어쩌면 나 스스로부터 차별 아닌 차별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특정 종교 이후 한국의 확진자 수가 급격히 증가할 땐 중국인이 아님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고,

그저 따가운 시선을 덜 받을 수 있는 방법, 외출을 삼갈 뿐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이들은 코로나비루스에 대한 경각심이 그다지 없었다.


그날 역시 결코 안전하다 말할 수는 없었지만 매일을 갱신하는 요즘에 비하면 그날은 정말 평범했던 일상이었다

로마 날씨야 대부분 좋은 편이긴 하지만, 그날의 날씨는 더없이 좋았고 마침 또 주말 아침이다.



집에 있기엔 너무 좋은 날씨라며 애먼 날씨 핑계로 외출을 한다.

평소 궁금했던 브런치 카페에 앉아 이탈리아에서 쉬이 만날 수 없던 비주얼, 맛, 양까지 삼박자 모두 갖춘 미국식의 접시를 받아 들고는 조금 더 따뜻한 진짜 봄이 오면 자주 나오자 약속했다.

이미 몇 년 전 일처럼 그런 날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이탈리아의 하루하루는 마치 전날의 기록을 무조건 갱신해야만 하는 의무를 가진 것처럼 필사적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일상의 변화는 마치 전시(戰時) 상황에 준한다.


학교와 레스토랑, 상점, 박물관과 여러 관광명소들은 한시적 문을 닫았고 항공, 열차, 그 외 교통수단 역시 멈췄다. 외출을 금하는 법령이 시행되고 통행증에 준하는 방식의 꽤 불편한 시스템 역시 도입되었다.

불안함을 느낀 사람들은 저마다 사재기하느라 마트는 텅텅 비어 가고 사람과 사람은 사회적 거리 1미터를 유지한다. 그 와중에 축구 이야기도 꼭 한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 뉴스를 틀어둔다. 당연히 '코로나비루스(Corona Virus)로 시작되고 대부분 코로나바이러스로 끝이 나긴 하지만 사이사이 축구 이야기를 꼭 하는 데 실소가 터진다. (이와 중에도 무관중으로 경기를 진행한다고 해서 기가 찼는데 현재는 모든 경기 또한 취소되었다)  


마트에서 또는 오전에만 영업하는 은행업무를 보기 위해서도 사람과의 거리 1미터는 꼭 지킨다. 1미터씩 떨어져 서 있으면서도 수다는 끊임이 없다. 외출을 금하고 대부분 집에서 지내지만 창을 열고 대화는 창과 창을 오간다. 긍정적이라 해야 할지


국가는 초강수 '이동 금지령'을 내렸고 사람들은 큰 반발 없이 생각보다 잘 지켜내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말을 잘 듣는 국민이었던가, 내 나라에서도 만일 이런 조치가 내려졌다면? 과연 비슷했을까?

여러모로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의 입국 거부 국이 늘어날 때마다 혹은 격리하는 국이 늘어날 때마다 '어쩜 이런 일이' 했건만 이탈리아에 사는 한국인 입장이 되니 이제는 완전한 고립이 되었다.

이 곳에서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아 졌건만 나간다 한 들 그 어디에서도 이탈리아 또는 대한민국에서 오는 사람을 반기지 않는다.


이탈리아와 대한민국

로마 기준으로 직항을 탄다 해도 12시간의 비행시간

아주 가깝다 할 수도 없건만 이곳에서 살아갈수록 참 많이 닮은 듯 다른 묘하게 양국이 닮았다 했거늘

어쩜 이런 이슈에 양국이 모두 세계 2위 자리를 앞다투어 차지할 일인지


사태의 심각성에 따라 진심 대문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가고 집에서만 머문 지 열 흘째다.

암묵적인 약속은 4/3일까지이니 아직 3주가량 더 남았다


배달음식도 없고 새벽 배송을 비롯한 배달문화 자체가 부족한 이 곳에서 실외에서 장시간 보관할 수 있는 식품 위주로 장을 본다. 아이들이 있기에 더더욱 여유 있게 장을 보려 하지만 냉장고는 늘 저장 한계치에 다다르고 매일 세끼의 식사와 간식까지 집에서 온 식구가 해결하다 보니 또 금새 텅 비워진다.

남은 기간 동안 자술서를 지참한 가족 대표 1인이 홀로 몇 번의 장을 더 보아야 할지 현재로선 예측도 안되지만, 가족이 다 함께 장 보던 그 시간마저도 감사했구나 깨닫는다


확진자수가 점차 감소하는 대한민국을 보고 있노라면,

수치는 기하급수적이지만 이 상황 속에서도 꽤나 긍정적인 이탈리아를 보고 있자면 이 사태의 끝은 멀지 않았을 거다.


온 식구가 집에서 함께한다.

늘 바빴던 남편과 늘 혼자 두 아이를 돌보았던 나

아빠와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아이는 아빠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매일이 즐겁고 홀로 두 아이 케어하기가 몹시도 버겁던 내게도 꽉 찬 남편의 자리는 큰 힘이며 심지어 매일 조금씩 글을 읽고 글을 쓸 짬도 생긴다. 물론 생계 걱정에 어쩔 수 없이 몸은 쉬어도 마음만큼은 쉴 수 없는 남편의 마음 또한 이해한다. (여행업이라 타격이 만만치 않다)

외출도 외식도 여행도 할 수 없지만 매일 집에서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더없이 돈독해지고 매일을 사랑하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웃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불편함을 잠시 내려두고, 두려움을 잠시 잊고 어쩌면 그동안 이방인으로써 살아내기에만 급급해 많이 놓치고 살았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 아이들과의 순간순간을 새롭게 선물 받는 건지도 모른다. 함께할 수 있는 귀한 순간들, 여전히 긍정적인 이탈리안 이들처럼 우리도 긍정적으로 잘 견뎌내 볼 참이다






 









이전 04화 검은 머리 외국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