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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마언니 Sep 01. 2020

라떼는말이야~ 당신은 스페인 계단에 앉아보았는가?


휴대폰 저장공간이 부족하다는 알림이 연일이다.

제일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건 늘 사진첩이니 자연스레 사진첩을 들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진들을 삭제한다.


이땐 이랬지, 저때 참 좋았는데

저장공간 확보는 어느덧 뒷전이고 추억에 빠져 홀로 피식피식거렸다.


로마 살이 어느덧 11년 차

사진첩 온통 로마가 가득하다.






사진 한 장에 멈춘 시선이 좀처럼 옮겨지질 않았다


2012년 9월, 로마 스페인계단



로마 시내를 활보하다가 다리가 아프면 스페인 계단에 앉아 쉬었다.

대부분 약속 장소도 이 곳이었고 도착하면 자연스레 계단에 앉았다

인근 파스타 가게, 티라미수 가게에서 포장해 계단에 앉아 수다와 함께 먹기도 했고

가끔은 그저 멍하게 앉아 오고 가는 사람 구경에도 이만한 곳이 없었다.

여행객, 현지인 할 것 없이 스페인 계단은 로마의 유명 명소이자 우리 모두의 쉼터였다.


가끔 너무 틈 없이 빽빽이 앉은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가야 할 땐’ 왜 다들 계단에 앉고 이래!’ 다소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이 것이 이렇게 추억이 될 줄이야






로마 스페인 계단은 꽤 오랜 시간 청소를 겸한 복원작업을 진행했고 2016년 9월 경 재오픈했다.

너무나 새하얗게 변해버린 스페인 계단이 한동안 참 많이 낯설었는데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로마의 휴일 오드리햅번을 그리며 이 곳에서 젤라또를 비롯 취식을 해서인지 재오픈하고 얼마지 않아 음식 섭취가 불가능해졌다. (물조차 마시지 못하게 했다)


그러다 2019년 스페인 계단에 앉는 것조차 전면금지되고 말았다


2020년 8월, 현재 스페인 계단은 완벽한 통행의 수단으로만 가능, 음식물이라든지 계단에 앉는 행위 모두 금지되어있다.


상황이 이러니 2017년 로마에서 태어난 아이는 스페인 계단을 처음 마주했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계단에 단 한 번도 앉아본 적이 없는 거다

애초부터 앉아본 적 없기에 딱히 앉으려 하지도 않지만 늘 아이가 마주한 풍경은 간혹 계단에 앉은 사람들을 내쫓는(?) 경찰이었다.


훗날,

엄마는 스페인 계단에 앉아봤다고,

계단에 앉아 파스타도 먹고 젤라또도 먹었었다고 하면 아이는 어떤 반응을 할까?



2020년 5월, 로마 스페인계단


때아닌 역병으로 전 세계의 혼란이 여전한 2020년

아이는 만 3세가 되었고,

어쩌면 지금부터의 기억은 아이 평생의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올해 3월부터 우린 역병으로 인해 학교를 중간에 그만둬야 했고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봉쇄도 경험했다.

관광객이 모두 떠나버린 외로운 로마를 마주하기도 했다. (물론 투어가이드인 아버지는 일자리를 잃었다)

텅 비어버린 로마는 엄마인 내게도 처음이었고 이제야 조금씩 찾아드는 걸음이 그저 반가운데 눈치도 없이 이탈리아의 확진자는 또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외출 시엔 무조건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는 적정거리를 유지하려 하고 잦은 손 세척과 손세정제는 필수품이 되었다.


생이 그리 길지 않은 아이가 현재 기억하는 세상은 아마도 마스크가 필수인 세상일 텐데 앞으로 아이의 기억 속에 더는 마스크가 없었으면 좋겠다.


엄마! 이 것 좀 보세요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거리두기도 없이 앉았어요!

하고 놀라는 일 따위는 제발 없었으면...



2020년 8월, 로마 스페인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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