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정이 많습니다. 조금만 가까워지면 금방 마음을 열고 정을 줍니다. '이 사람은 내 사람이야.'라는 바운더리에 쉽게 넣어주곤 합니다(물론 내보내는 것도 쉬워요.).
하지만 제가 마음을 주는 만큼 돌려받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특히 회사 일을 하며 마주치는 사람들로부터 돌아오는 마음의 크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회사 안에서.
신입시절, 제가 겪은 인간관계라고는 가족, 친구, 남자 친구가 전부였습니다. 회사에 입사해서도 제가 아는 관계의 방식으로 회사 사람들을 대했죠. 금방 친해지고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개인적인 감정까지 오픈하며 관계를 맺었습니다.
제가 정말 존경하던 팀장님이 있었어요. 저에게 업무도 가르쳐주실뿐더러 사회초년생의 사적인 고민까지도 모두 케어해주시던 분이었습니다. 이분은 너무도 쉽게 저의 바운더리에 들어오셨습니다.
당시 이 팀은 주말근무가 잦아 다른 날 대신 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제가 팀을 옮기게 되고 그 팀으로 새로운 신입사원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팀과 팀장님을 떠나는 것이 너무 아쉬워 팀 카톡방도 쉬이 나가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OO(저) 연차 그냥 XX(신입)이가 쉬면 안 되나?ㅋㅋ"
메신저 방에 제가 아직 있는지 모르셨나 봐요.
그때 알았습니다. 팀장님은 당신의 팀원을 케어하는 역할이 주어진 직원이고, 저는 케어를 받으며 회사에 기여하는 역할의 직원일 뿐이라는 것을요.
물론 농담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때의 저는 정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모든 회사 사람들이 내가 마음 주는 것만큼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작지만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알아요. 정말 작고 사소한 별 거 아닌 일이었다는 걸!). 결국 모두가 비즈니스 관계니까요.
물론 지금은 비즈니스 관계의 온도와 선을 이해하고, 팀장님을 존경하는 마음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역량이 부족하여 자괴감이 들 땐 팀장님을 그리워하고, 종종 안부를 물으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와 비슷한 몇가지 사소한 계기로 이제는 회사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나의 모든 것을 내비치는 것은 지양합니다. 나의 마음의 크기만큼 상대의 마음이 크지 못할 때, 받을 상처가 두렵거든요.
회사 밖에서.
인하우스 마케팅팀의 특성상 많은 파트너사와 일을 하게 됩니다. 어떤 업체는 몇 번 만의 만남으로 소울메이트가 되어 친구처럼 일을 진행하게 되고, 어떤 업체는 선을 지키며 업무만 효율적으로 하는 100% 비즈니스 관계가 됩니다.
어느 성격의 파트너사와 협업하는 것을 선호하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선자라고 답하겠습니다. 저는 태생이 사람을 좋아하는 종자니까요.
정말 마음이 잘 맞는 파트너사 담당자와 일을 진행하면 결과물도 훌륭할뿐더러 만들어 가는 과정 내내 즐겁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개인적으로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그런 분들은 업무역량뿐만 아니라 자신의 색깔이 뚜렷하고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이 정말 매력적이거든요.
하지만 먼저 개인적인 만남을 제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결국에 저는 클라이언트이고 상대는 에이전시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워하실 것 같아서요. 좋다고 해도
그게 정말 좋은 건지, 의무감 때문인지 구분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우리는 비즈니스 관계니까요. 적절한 친밀함과 적절한 선을 유지하면 더욱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음을 압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합을 맞춰왔거나, 업종을 옮겨가며 더 이상 클라이언트-에이전시의 관계가 아니게 되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짐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마케팅을 하며 맺는 수많은 인간관계의 애매모호한 온도와 선을 이제는 잘 압니다. 그래도 늘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의 크기는 여전합니다.
에픽하이의 올해 신규 앨범에 수록된 '비가 온대 내일도'라는 곡의 가사를 많이 되새기는 요즘입니다.
사람 살아가면서 느낀
은하수만 했던 감정들을 건네고
별 몇 개를 얻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