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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K Feb 15. 2022

우크라이나 3/4 - 소련의 붕괴와 가난의 시작

E01. 우크라이나 빵 공장, 러시아 분쟁 사태의 근원을 찾아

E02. 나라인 듯 나라 아니었던 우크라이나

E03. 가난할 수 없었는데 가난하게 된 우크라이나

E04. 2022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사태는 예견된 수순이었나






소련 붕괴 이후의 우크라이나

이를 갈고 있던 김고려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천금같은 기회가 찾아왔으니, 바로 소련의 붕괴였다. (‘김고려’와 빵 공장은 전 시리즈를 관통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 5년이 지난 1991년 12월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정세 불안을 틈타 급하게 국가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90%가 넘는 압도적은 찬성으로 독립을 결정했다.


김고려는 이제 정식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이 되고, 과거 운영했던 빵 공장도 되찾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소련에서 분리되어 독립한 나라들은 고려인들에게 즉각적으로 국적을 부여하지는 않았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했다. 


결국 김고려는 약소민족의 서러움만 가득 안은 채 21세기를 눈앞에 둔 어느 날 세상을 떠났다.


고려인과 우크라이나

김고려에게는 ‘김우크’라는 자식이 하나 있었는데, 김우크도 고려인 출신이라 여전히 무국적자 상태였다. 


다행히도 조국인 한국 정부는 2007년부터 적극적인 고려인 지원 정책을 펼쳤는데 김우크는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우크라이나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이때 한국이 고려인 지원정책을 통해 국적을 취득하게 해 준 것은 맞지만, 사실 큰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김우크가 재기했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겠다.)

 

김우크는 국적 취득 후 악바리처럼 각종 소송을 치른 끝에 김고려가 운영했던 빵 공장까지 취득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2000년도가 되기까지 상당 부분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적극적인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했는데, 김우크는 이를 틈 타 빵 공장을 되찾았던 것이다.

 

아무튼 김고려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김우크는 유지를 이어받아 고려인들과 우크라이나의 번영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기로 했다. 

 

김우크가 빵 공장을 되찾았을 무렵 다행히 체르노빌 원전 피해는 어느 정도 복구된 상태였고 빵 공장도 재건이 가능한 상태였다. 젊음을 바쳐 일한 덕에 빵 공장은 서서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위기

그런데 희한하게 빵 공장은 성황을 이루었지만 나라 경제는 나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2014년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점령한 것이었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남쪽 흑해 지역에 앙증맞게 툭 튀어나와 있는 지역이다. 크림반도는 러시아 땅과 붙어있지도 않은 우크라이나 영토였는데 뜬금없이 러시아가 자기 땅이라 하며 침공한 것이다. 


사실 침공은 아니고 그냥 러시아군이 크림반도에 주둔하기 시작한 건데 우크라이나는 감히 러시아와 맞짱 뜰 생각을 못하고 “너네 왜 그래, 얼른 나가.” 하며 발만 동동 굴렀을 뿐이었다.


여기서 잠깐 크림반도 사태를 설명하고 넘어가겠다. 크림반도 병합은 약간 애매한 게, 당시 크림반도 인구의 60% 정도는 러시아인이었고 우크라이나인은 25%정도였다고 한다. 

 

러시아인들이 많다 보니 친러 성향이 강한 지역이었다. 러시아군이 크림반도에 주둔한 것도 크림반도 주민들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2014년 크림반도 주민들이 투표를 했는데 무려 95%의 찬성으로 러시아 통합을 결정했다. (물론 크림반도에는 흑해함대나 러시아의 바다 욕심 같은 좀 더 심오한 이야기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언젠가부터 제주도에 중국 사람들이 이민을 오거나 취업비자로 거주를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뜬금없이 주민투표를 하더니 압도적인 찬성 비율로 중국 합병을 찬성한 모양새였다. 중국이 제주도 합병을 승인하고 대규모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우리 정부는 총 한 발 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형태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사태였다.


크림반도 병합은 국제사회의 힘의 문제였다. 


영토와 관련된 문제는 주민투표가 아니라 당연히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 만약 주민투표로만 영토를 떼어낼 수 있다면 서울 종로구에도 나라가 하나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크림반도는 국민투표가 아닌 주민투표만으로 러시아에 복속되었고 우크라이나는 힘이 없으니 싸우지도 못했던 것이다.


크림반도 사태를 지켜보며 고려인의 후손이자 우크라이나 국민인 김우크는 일종의 학습된 무기력을 느꼈다. 


아무리 열심히 독립하고 자주적으로 살려 해도 조국이 힘이 없다 보니 자기 부모가 멀리 연해주에서 우크라이나까지 이동하게 됐고, 기껏 옮긴 우크라이나에서 아무리 열심히 빵 공장을 운영해도 경제 성장이 더디다 보니 점점 다 같이 가난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의 이유

사실 소련 붕괴 이후 독립한 나라 중 가장 잘 살 것으로 예측되었던 나라는 우크라이나였다. 


땅 자체가 축복받은 비옥한 땅이고 소련 시절의 최첨단 공업시설이 우크라이나에 다수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련이 붕괴하고 우크라이나는 어쩌다 보니 세계 3위 핵보유국이 되었다. 러시아, 미국 다음으로 핵 강국이었던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대박 국가의 탄생이 예견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최빈국 중 하나로 전락했다. 


왜일까?

 

일단 정치 불안이다. 우크라이나 정치는 친유럽 세력과 친러 세력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증오가 그리 큰데 친러 세력이 있다는 게 의문일 수 있지만, 아무리 미워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최대 교역국이다. 눈치를 안 볼 수 없었다. 이렇게 친러와 친유럽 줄 타기를 하며 확실한 정책을 펼치지 못했다.

 

유럽과 러시아는 세계적으로 강한 세력이고, 서로 상극이다. 이 틈에 낀 나라가 있다면 스스로 강해지던지 줄 타기를 잘 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줄 타기에 약했던 모양이다.


둘째로 정책 실패다. 우선 독립 후 가장 중요한 초반에 사회주의 체제를 버리지 못하고 2000년이 다다를 무렵에야 전면적인 시장경제를 채택했다. 


우크라이나는 가진 게 너무 많은 나라였다. 높은 인적자원을 가졌고, 어마어마하게 비옥한 땅에 광물도 굉장히 풍부했다. 소련 시절 사용했던 각종 첨단 무기도 중요한 자산이었다.


신생 독립국가 입장에서 이렇게 가진 게 많은데, 무엇이 즉각적인 캐시 카우가 될 수 있었을까. 바로 군수 물품이었다. 우크라이나도 독립을 하면서 과거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방위 산업으로 재미 좀 보려고 했는데 당시 소련의 주요 고객이었던 이란 이라크가 딱 전쟁을 멈췄고, 세계적으로 국축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각종 방위시설은 세금만 깎아 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다른 소련 독립국가들은 가진 게 많지 않아 급격하게 자본주의 체제로 돌리고 체질 개선을 했다. 


우크라이나는 가진 게 많아서인지 오랜 기간 사회주의를 유지했다. 그래도 뭐라도 되겠지 하고 이것저것 시도하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2000년이 되어서야 경제개혁을 했다.



다시 뛰려고 했으나, 2022년 또 다른 위기가 오다.


그래도 우크라이나가 잠재력의 나라인 점은 분명하다. 실제로 김고려가 빵 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2000년 초반부터 서서히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유럽의 최빈국이라는 오명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김우크는 학습된 무기력을 타파하고 다시 희망을 가졌다. 


“그래, 우리는 대단한 나라야. 다시 힘을 내보자.”


김우크는 열심히 빵공장을 돌린다.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하고 연일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뉴스가 들린다. 


김우크는 생각한다. 우크라이나의 잠재력이라면 언젠가 조국 대한민국처럼 강대국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강대국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나라, 우크라이나가 항상 약하기를 바라는 나라가 있었다. 바로 우크라이나를 손아래로 보는 러시아였다. 


2021년, 바로 작년 11월 김우크는 또다시 학습된 무기력을 경험한다. 빵 공장 근처 국경지대에 러시아군 10만명이 몰려오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마지막 편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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