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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K Nov 27. 2023

캐나다편(2) - 족장의 아들

또래 남자는 말을 이었다.


"짝녀의 결혼식, 캬! 생각만 해도 슬프다. 이알라를 위해서라도 이제 그만 포기해. 그래도 너는 족장님의 막내아들이잖아. 조만간 더 좋은 여자 만날 수 있을 거다."


족장집 아들? 이건 또 무슨 설정이란 말인가. 김주노는 머리를 굴렸다.


또래 남자의 말에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단 김주노는 족장집 막내아들이었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유는 ‘이아라’라는 여자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그나저나 짝사랑이라니…. 대한민국에서나 여기에서나, 김 주노는 인기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너 허리에 차고 있는 건 뭐냐? 처음 보는 건데?"


또래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주노의 허리춤을 보았다. 허리띠 같은 천 사이에 종이가 끼어 있었다. 긴박하게 상황이 돌아가다 보니 김주노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종이를 꺼내 펼쳤다. 한국어로 된 글자가 쓰여 있었다.


미션 : 위기에 빠진 아메리카 원주민을 구원하세요.


김주노는 고개를 저었다.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하늘에서 공룡이 떨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나저나 뜬금없이 원주민을 구원하라고? 지금 여기 사람들은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데?


김주노는 그동안 벌어진 일들을 곰곰이 생각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려면 어쩐지 종이에 적힌 미션을 수행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구원하란 말인가? 난감했다. 한숨이 더욱 깊어졌다. 김주노 또래의 남자는 옆에서 계속 오! 오! 하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뭐가 그렇게 신기해? 이거? 종이 처음 봐?"


또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김주노가 쥐고 있는 종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김주노는 또 다른 단서를 얻었다. 종이의 존재를 모르는 걸 보아 여기 사람들은 아직 유럽인들을 만나기 전인가 보구나. 도대체 지금이 몇 세기인 걸까?


김주노는 높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로쿼이 연맹에 으스스한 날씨. 분명 이곳은 대항해 시대 이전의 캐나다 지역이었다.





김주노는 자기가 떨어진 곳에 캐나다라는 것을 알아냈다. 사실 우리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제목에 '캐나다'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으니 당연히 김주노가 활동할 무대도 캐나다일 것이다.


이쯤에서 캐나다가 어떤 나라인지 살펴보고 스토리를 이어가자.



캐나다,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 위에 있는 추운 나라다. 수도는 오타와. 최대 도시는 토론토다.


잘 사는 나라다. 세계 GDP 순위가 9위고, 1인당 GDP로 해도 세계 18위다. 여러 리서치 기관에서 세상에서 살기 좋은 나라를 평가할 때 늘 순위권이 드는 나라이기도 하다.


땅덩이는 넓은데, 인구밀도는 굉장히 낮다. 3천8백만 명 정도 살고 있다. 백인이 69% 정도다. 흑인은 5%가 안 된다. 오히려 아시아계가 16%로 상당히 많다. 원주민도 미국은 1%가 안 되는데 캐나다는 5%나 된다.


캐나다는 문화적으로 특이한 나라다.


어떤 점이 특이한가?


일단 캐나다는 다민족 국가다. 다른 다민족 국가는 다양한 민족을 하나로 모이게 하는 특유의 문화가 존재한다. 구심점이 될만한 문화나 사상이 없으면 여러 민족이 하나로 뭉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만 해도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지만, 그들을 하나로 묶는 '미국식 문화'라는 게 존재한다.


캐나다가 특이한 점은 여타 다민족 국가와 달리 여러 민족의 주체성과 다양성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프랑스인이 모여 사는 동네는 프랑스처럼 살게 하고, 중국인이 모여 사는 동네는 중국처럼 살게 한다. 여기에 딱 맞는 표현이 있다. 같은 다민족 국가지만, 미국은 '인종의 용광로'라는 표현을 쓰고, 캐나다는 '인종의 모자이크' 또는 '문화 모자이크'라는 표현을 쓴다.


캐나다가 모자이크 문화를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캐나다는 다른 나라와 달리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지 않으면 인구밀도가 극심하게 낮아진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난민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을 받아야 하는데, 캐나다는 그들을 유혹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와서 살아. 문화 이질성? 그런 것 없어. 그냥 너희 민족이 모여 사는 곳에서 살면 돼. 그냥 땅만 바뀔 뿐이야. 우리나라 자유가 꿀처럼 흐르는 나라고, 또 복지 좋은 거 알지? 어때? 와서 살고 싶지 않아?"


이렇게 손짓하는 것이다.




다시 스토리로 돌아와서,


김주노는 일단 무리와 어울려 지내기로 했다. 망망대해를 건너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돌아간다 한들 지금은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일 것이다. 김주노가 살아갈 환경은 아니었다.


소심한 성격을 버리고 김주노는 몸을 움직였다. 결혼식 무리에 끼어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짝사랑했다는 여자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기도 했다. 예뻤다.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동양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쌍꺼풀 없는 눈에 갸름한 턱선. 지금 시대 기준으로는 미인이 아닐 수 있지만, 21세기 기준으로는 확실히 미인상에 가까웠다.


또래 친구는 김주노의 옆구리를 툭툭 치면서 짝사랑 여성을 그만 쳐다보라고 눈치를 주었다. 김주노는 쓴웃음을 지으며 엉성하게 춤을 계속 추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졌다. 날이 어두워졌고, 김주노는 잠에서 깨었던 롱하우스로 돌아갔다. 딱딱한 바닥에 몸을 눕히고 높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족장집 막내아들이라….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을 구원하라고? 내가 이로쿼이 연맹의 영웅이라도 될 운명인가?


눈을 껌벅이며 무얼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집 밖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외부인이다! 모두 경계 태세!"


파수꾼의 목소리였다. 롱하우스에 있던 수십 명의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젊은 남자들은 활과 창을 들었고, 여자들은 아이와 노인들을 데리고 마을 뒤쪽으로 이동했다.


김주노도 눈치껏 젊은 남자들을 따라 무기를 챙기고 마을 광장으로 뛰어갔다. 오 분도 안 되는 사이 수백 명의 남자들이 칼각을 맞춰 늘어섰다. 금세 전투 준비가 끝났다.


김주노의 아빠이자 족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무리 앞에 서서 외부인들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댓 명의 남자가 마을 출입문에 다다랐다. 외부인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맨 앞으로 나와 손짓, 발짓을 했다.


"봉쥬르? 줴 마펠 자끄 카르띠엘."


봉쥬르는 프랑스 인사 아닌가? 김주노는 프랑스어를 알지 못했지만, 남자가 자기 이름을 말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가만, 이름이 자끄 카르띠엘?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었다.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어떤 게임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항해시대와 관련된 인물이었다. 김주노는 이제야 자기가 속한 시대를 알 수 있었다.




자크 카르티에는 누구인가?


프랑스의 탐험가다. 1534년 캐나다 지역을 탐험했다. 프랑스 탐험대 중에서는 최초였다. 1차 탐험에서 퀘벡 지역에 도착해 그곳에 살고 있던 이로쿼이 인디언들과 친분을 쌓았다. 고국으로 돌아와 왕에게 과장된 보고를 했다.



"폐하! 새로운 땅을 찾았습니다! 여기는 그물만 던지면 고기가 엄청나게 잡히는 곳입니다! 게다가 어쩐지 금과 은도 가득할 것 같습니다! 제가 다시 가볼까요? 그러려면 돈 좀…."


이런 뉘앙스였을 것이다. 뻥이 먹혔는지, 자크 카르티에는 그 후로도 두 번 더 탐험을 떠났다. 자크 카르티에는 미국 오대호 위쪽에 정착촌을 만들고, 그곳의 이름을 퀘벡이라고 명명했다. 이게 지금 퀘벡의 유래다. 이때부터 퀘벡 지역은 프랑스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 되었다.





다시 스토리로 돌아와서,


얼굴이 하얗고 금발을 한 낯선 무리를 세워 놓고 족장은 고민했다. 이들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자크 카르티에는 함께 온 병사들과 함께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김주노의 또래 친구가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정신 차리세요! 이 사람들을 받아들일 생각은 아니죠? 얼굴색도 이상하고, 적군인 게 틀림없어요! 재앙이라고요! 뒤에 후발대가 있을지 모르니까 당장 잡아서 고문하죠!"


당돌한 외침에 군중은 동요했다. 포박하고 가두어 놓자는 의견과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그만! 결정을 내리겠다!"


장고 끝에 족장이 소리쳤다.


"이들은 창과 칼을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있다. 외부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우리의 오래된 전통이다. 자크 카르티에여, 무엇을 원하는가?"


우물쭈물하던 자크 카르티에가 미소 지었다.


"놈? 놈? 놈?"


자크 카르티에는 검지로 땅바닥과 마을을 번갈아 가며 가리키며 물었다. 김주노는 프랑스어를 알지 못했으나 자크 카르티에가 무얼 알고 싶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가리키면서 묻는 걸 보니 이곳의 명칭을 알고 싶은 모양인데?"


김주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김주노의 혼잣말을 훔쳐 들은 친구가 껄껄대며 소리쳤다.


"여기가 어딘지 궁금하다고? 어디긴 어디야, 우리가 사는 마을이지, 마을!"


김주노의 친구가 "마을!"이라고 외쳤다. 이로쿼이 언어로는 "카나타!"였다. 자크 카르티에가 처음으로 들었던 지명, 카나타. '마을'이라는 뜻의 이로쿼이 언어가 캐나다 국명의 기원이 되었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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