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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작 Nov 21. 2023

e01 캐나다편 (1) - 게임의 시작

이렇게 시작할 줄은 몰랐다. 김주노의 이야기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김주노.


별다른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았고 집에서 보내주는 용돈으로 근근이 생활했다. 좁은 고시원에서 시험 준비를 한지 5년이 넘었지만 합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험 기간이 길어지면서 듬성듬성 아는 건 많았다. 책을 펼치면 어쩐지 다 아는 내용인 것 같았다. 착각이었지만 공부 의욕을 꺾기에는 충분했다.


언젠가부터 김주노의 일과는 고시방 구석, 컴퓨터 앞에서 시작됐다. PC게임을 하는 시간이었다.


30분만 해야지, 종일 공부에 시달릴 뇌에 미리 선물을 주자, 처음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다. 공부에 도움 되는 논리는 아니었다. 30분의 시간이 12시간으로 변하기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다. 유튜브를 시작한 것이다. 용돈이라도 벌 생각에 게임 스트리밍 영상을 업로드했다. 1년 동안 거르는 날 없이 게임을 올렸는데, 구독자는 100명뿐이었다. 아웃풋이 형편없었다.


게임 실력은 좋았다. 특히 머리 쓰는 게임에 능했다. 어떤 게임은 전 세계 탑 랭킹을 찍기도 했다. 문명이나 유로파 같은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보였다.


문제는 피지컬이었다. 게임 보는 눈은 탁월했지만, 손이 느렸다. 배그나 롤같이 피지컬이 필요한 게임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김주노는 비주류 게임에서만 유능했던 것이다. 구독자를 모으기에 불리했다.


김주노는 어느덧 역사 게임의 고인물이 되었다. 변태스러운 플레이를 즐겼다. 인지도가 없는 약한 민족을 선택해 세계를 정복하는 컨셉질을 많이 했다.


김주노의 최애 민족은 이로쿼이였다. 북아메리카 지역의 원주민 부족이다. 이로쿼이 민족으로 영국과 프랑스 같은 강대국을 멸망시키며 카타르시스가 느끼곤 했다.


오늘도 김주노는 평소처럼 실시간 스트리밍을 켜고 게임을 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겼다. 채팅창에 알람이 떴다.


'너와 나'님이 10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김주노는 놀랐다. 게임을 하면서 이렇게 큰 후원금을 받은 적은 없었다. 채팅창에는 '너와 나'라는 사람 1명만 있었다. '너와 나'는 김주노의 게임을 시청하며 줄기차게 글을 올렸다.


'좀 하는데?'

'천재인가? 이런 수를 쓰네?!'

'와, 이로쿼이로 이렇게 잘하는 사람 처음 봄'


칭찬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김주노는 3시간 만에 게임 한판을 마치고 채팅창을 유심히 살폈다. '너와 나'는 아직 남아 있었다.


채팅창 마지막 줄에 '혹시 이로쿼이로 최고 난이도 가능?'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김주노는 마이크를 잡고 피식 웃었다.


"이로쿼이 최고 난이도? 눈 감고도 합니다. 컨셉질도 가능하고요. 원하는 거 있으세요?"


채팅창이 바빠졌다. '너와 나'는 기다렸다는 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원 없는 북아메리카 혹한 지역에서 가능? 이런 스타팅으로 세계 정복에 성공하면 100만 원 쏨'


김주노는 눈이 번쩍 뜨였다. 100만 원? 허겁지겁 "콜!"을 외쳤다.


'너와 나'는 채팅창에 "ㅋㅋㅋㅋ"를 수십 개 쳐댔다.


김주노는 언제 시작하냐고 물었디. '너와 나'는 의외의 답을 했다.


'100만 원보다 더 큰 걸 줄 수도 있지! 이번 기회에 인생 역전 가즈아!'


김주노는 의아했다. '너와 나'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뭐라 답할지 궁리하는 사이 메시지가 올라왔다.


'너와 나님이 채팅방을 나갔습니다.''


김주노는 예상했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낚인 건가? 그래, 내 주제에 무슨 100만 원이야. 그래도 10만 원은 벌었네? 이것만 해도 개이득!'


기분이 좋았다. 환전 버튼을 찾아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이, 퍽! 전등 깨지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


뭐지?


불안한 마음에 창문을 열었다. 도시 전체가 정전이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정체 모를 확성기에서 기계음으로 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제 상황입니다. 시민 여러분은 어서 대피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모두 대피 …"


안내 멘트가 끝나기도 전이었다. 눈 부신 빛이 고시원을 향해 날아왔다. 폭탄인가? 나 죽는 건가?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스르륵 잠이 들듯, 김주노는 빛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머리가 아팠다.


배 위에 동물 가죽 같은 게 덮여 있었다. 몸을 일으켜 바닥을 살폈다. 딱딱한 통나무들이 엮여 있었다. 흡사 뗏목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통나무집?


눈을 들어 구석구석 살폈다. 거대한 집이었다. 농촌의 비닐하우스보다 길었고, 군데군데 출입문이 여러 개 보였다. 끝에서 끝까지, 못해도 50미터는 될 것 같았다.


집 밖에서 경쾌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수십 명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한국어가 아니었다. 처음 듣는 언어였다. 영어나 독일어 느낌도 아니었다.


모르는 언어였지만, 머릿속으로 내용이 이해됐다. 누군가 동시통역을 해주는 것처럼 그대로 이해됐다. 신기한 일이었다. 노래 가사는 대충 결혼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다. 파티가 열리는 듯했다.


"와! 이거 뭐지? 처음 듣는 말이 이해되네? 여기가 사후세계인가?"


김주노는 자기가 내뱉은 말에 흠칫 놀랐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걸 중얼거렸을 뿐인데,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한국어가 아니었다.


한국어로 생각한 게 정체불명의 언어로 바뀐 것이다. 억양이나 발음이 밖에서 들리는 노랫소리와 동일했다.


놀라운 일이 계속됐다. 김주노는 손발을 바라보고 얼굴을 매만졌다. 피부가 탱탱했다. 10대 후반이나 많아야 20대 초반의 탄력이었다. 30대 백수 남자의 모습은 없었다.


회춘인가? 김주노는 어려진 나이에 잠깐 기뻐했으나 곧 현자 타임을 맞았다.


'생김새가 바뀌었고,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 시대도 바뀐 것 같다. 설마 선사 시대는 아니겠지?'


가슴을 졸이며 김주노는 집 밖으로 나갔다.


많은 사람이 형형색색 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 무리 가운데 젊은 커플이 수줍게 미소 짓고 있었다. 하나같이 까만 눈동자에 까만 머리카락이었다. 동양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광대뼈와 턱선이 동양인과 달랐다.


김주노는 추리를 시작했다.


역사 게임의 고인물이었다. 역사나 문화에 관련된 것이라면 주워들은 지식이 많았다.


동양인과 비슷한 외모. 길쭉하고 거대한 주거지.


게임에서 보았던 모습이었다. 이로쿼이 원주민과 그들의 주거지인 롱하우스였다.


김주노는 깨달았다. 이곳은 근대 이전의 북아메리카 대륙이었다.




스토리는 잠깐 뒤로 하고 롱하우스와 이로쿼이에 대해 알아보자.


캐나다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이로쿼이란?



이로쿼이는 하나의 부족을 뜻하는 명칭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로쿼이족이 아니라 이로쿼이 연맹이라고 해야 한다. 오대호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아메리카 원주민 연맹이다.


오대호라고? 다섯 개의 큰 호수,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이 접한 북아메리카 동북부 지역이다.



다음으로 롱하우스란?


이로쿼이의 공동주택이다. 수십 미터 길이의 거대한 주택이다. 넓은 집안에 여러 가구가 같이 살았다.


북유럽의 바이킹도 이로쿼이처럼 롱하우스 형태의 주거를 가졌다. 바이킹은 대항해시대 이전에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개인적은 추측지지만, 어쩌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것은 아닐까?


이로쿼이 부족은 자신을 '하우데노사이니'라고 불렀는데, 번역하면 '롱하우스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롱하우스는 이로쿼이에게 큰 의미가 있다.





다시 스토리로 돌아와서,


김주노는 현재 위치를 파악했다. 이제는 어느 시대인지를 알아내야 했다.


건축물만 보아서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데, 모두 미친 듯 춤을 추고 있었다.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김주노를 힐끗 쳐다보는 사람이 몇 있었지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김주노는 우물쭈물 무리 주변을 서성였다.


시간이 흘렀다. 멀리서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큰 걸음으로 다가왔다. 김주노 앞에 선 남자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야, 인마!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 너 하나 때문에 파티 분위기 이상해지잖아! 짝사랑했던 여자라서 그런 거야? 그래도 결혼식은 축하해 줘야지!"


이건 또 무슨 말이람? 김주노는 눈을 껌벅였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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