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기획자가 된 생명과학도
어느 덧 공간기획자가 된 지 3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간 걸어온 길을 지인들과 얘기하다 보면, '그렇게도 공간기획자가 될 수 있군요.'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이 말은 혹은, '내가 원하는 길이 있다면 돌아갈지라도 결국에는 그 길에 놓일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직은 고군분투하는 신입 기획자지만,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가 용기로 닿길 바라며 첫 글을 써본다.
내가 아주 어릴 때, 그러니까 국민학생이던 저학년 꼬마 시절에 재잘거리던 말들이 있다. 이런 말들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앵무새처럼 말하고 다녔던 걸 생각하면 얼굴을 들기가 어려울 정도다. (설마 이 말들을 기억하는 동창들은 없길 바라본다.)
"저는 앞니가 커서 부잣집에 시집갈 거래요. 좋겠죠?"
"엄마아빠처럼 저도 전문가가 될 거예요."
어른들은 철없는 어린이가 하는 말이라며 오냐오냐 웃어주곤 했다.
도대체 뭣도 모르는 꼬마가 왜 저런 말을 했는지 생각해 보면 모두 '모방'이다. 필터링 없이 주변 어른들이 한 마디씩 하던 것들을 그대로 철없이 듣고 내뱉던 것. 그것이 내 꿈인 줄 알았던 게다.
아이 앞에서 입 조심하라는 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내가 아니었을까. 누구든 이런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집안 사람들을 둘러보면, 대개 회사보다는 대부분 실용적인 경제나 이과 연구직, 내지는 법조계 계열에 종사 중이다.
당연히 모든 집안사람들은 이러한 학과에 가야 하고, 또 그래야 성공하고, 성공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나는 자랐다. 엄마아빠는 나와 어딘가 좀 다르다는 느낌만 희미하게 가졌을 뿐.
무엇이 성공인지 생각해볼 틈도 없는 우물 속에서,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말을 좀 종알거리기 시작하는 초등학생이 되자, 부모님은 내가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때로는 나를 붙잡고 본인이 얼마나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어떤 어려움 때문에 되지 못했는지 한탄하듯이 털어놓곤 했는데, 당시 나는 아무 생각 없는 스폰지밥처럼 그것을 내 서사로 받아들였다.
‘그렇구나. 의사는 최고의 직업인가봐. 나도 되고싶다!’
그렇게 부모님의 꿈은, 곧 내 꿈이 되어갔다.
하지만 구구단부터 진절머리나던 나는, 부모님이 하던 말씀들이 머리에 맴돌 때면 수학이 가장 괴로운 나 자신에 대한 질책에 빠지곤 했다.
그러던 것이 점점 머리가 크고 사춘기가 되면서, 나는 고통스러웠지만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위대한 신념을 갖는 것도, 어려운 공부를 이어나가는 것도, 그리고 그 공부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도, 내게는 벅차다는 결론에 다다를 뿐이었다.
"의사가 되고 싶지 않고, 될 자신도 없다!"
그 생각이 확고해진 다음부터는 격정의 사춘기 시절이 시작되었다. 나의 끊임없는 갖가지 반항은 엄마의 갱년기에 불을 붙인 셈이 되어서, 집에서는 다양한 물건이 욕설과 함께 날아다니는 장관이 매일 일어나곤 했다.
덕분에 공부에 집중하기에는 더 어려운 분위기가 된 것은 덤(?).
그리고 더 어려운 진통이 진짜 고민과 함께 시작되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프랑스 철학자 라깡은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기획자로서도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 말을 이따금 곱씹는데, 라깡은 일찍이 인간의 심연을 간파했구나 싶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어릴 때에 뭘 모르던 아이들은, 나는, 부모님이 상기된 얼굴로 "우리 ㅇㅇ이, 커서 대통령이 돼야지. 미스코리아가 되겠구나. 부자가 돼야지." 하는 말들을 그저 자기가 원하는 꿈인 것처럼 쏙쏙 흡수한다. 그리고 이내 그 내용을 그걸 장래희망칸에 적곤 한다.
수많은 친구들이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나는 꿈이 없어."라고 하던 게 이해가 되는 지점이다.
나도 사춘기가 되어서야 소심한 반항으로 부모의 꿈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수학보다는 기술가정이나 음악 과목에 집중한다든지, 야자시간에 도망쳐 밴드부 연습에 몰입한다든지 하는 작은 것들이었지만.
어리숙한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점점 다가오는 수능날을, 나도 피할 순 없었다.
수능 성적표가 나온 날.
그동안 공부하지 않았던 솔직한 결과를 받아 들고, 그래도 무언가 결정을 해야만 했다. 사실 대학을 가지 않는 방법도 있고, 지금은 자신의 방식대로 나아가는 멋진 친구들이 많지만, 나는 점점 대한민국의 학구열이 더 거세지던 2000년대 중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많은 친구들이 대학에 가지 못하면 세상에 무너지는 것처럼 생각하던 때. 그런 학생 중 하나일 뿐이던 나는, 그때서야 내 손으로 내 인생의 첫 결단을 내려야 했다.
- 뭐가 됐든 숫자만 다루는 업을 삼고 싶진 않아. 잘할 자신도, 꾸준히 할 자신도 없어.
- 나는 무언가 아름답거나 실용적인 공간이 좋아. 그리고 그걸 즐기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
- 누군가와 소통하는 일들이 쉽지 않지만 재밌어.
이런 생각을 하며, <정시지원 배치표>를 펴놓고 내가 지원 가능한 곳들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한 학과가 있었다. 바로 건축과.
'그래, 이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닐까?'
'누군가의 맘을 설레게 하는 건물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거야! 그럼 내가 평생 뿌듯해하며 살아갈 수 있겠지.'
이렇게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서둘러 건축과에 지원을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