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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주말 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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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천고래 Jul 24. 2019

오늘도 내일도 영업합니다

주말 목욕_창녕군 부곡 온천 '원탕 고운 호텔'


시간이 지나 잊힌 이름. 그런 이름은 어느 시대에나 장소에나 있다. 국내 온천에선 창녕의 부곡 온천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명실상부 국내 대표 온천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던 이곳은, 상징적인 시설 '부곡 하와이'의 폐업 소식으로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듯 보였다. 직접 발길을 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여러 번에 걸쳐 온천 지구 내의 몇몇 시설을 직접 살펴보고 몸을 담가본 바, 잊히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곡 온천장에는 아직도 제법 많은 시설과 호텔이 영업 중이다. 남은 이들은 과거의 영광을 잇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온천에 물을 채우고 손님맞이를 한다. 그들의 얼굴을 보며 어쩐지 힘을 보태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을 소개한다.


국내 최고 온도 78도, 최초 발견자 직영 온천임을 자랑하는 원탕 고운 호텔.


원탕 고운 호텔은 부곡 온천을 최초로 발견한 고 신현택 선생이 직접 운영했던 호텔이다. 온천이 터진 해에 가장 빠르게 지어진 터줏대감 격 호텔. 지금은 호텔이라 부르기엔 낡은 티가 역력하지만 물만큼은 그대로라는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이번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이 함께 목욕에 나섰다.


아주 너른 탈의실 전경. 보이지 않는 쪽 훨씬 공간이 넓다.
일일이 세어 보진 않았지만 족히 1백여 개가 넘어 보이던 로커에서, 그 옛날의 명성을 느낄 수 있었다.
뽀송하고 군내 없었던 수건. 넉넉한 수건 인심이 마음에 들었다.


수질만 좋다면야 불편은 기꺼이 감수하는 스타일이라 나야 거리낌 없었지만 어쩐지 불안한 눈길의 엄마가 신경 쓰였다. 휑한 주말 오후의 카운터라니, 나조차도 번지수를 잘못 찾았나 싶었다. 하지만 탈의실에 들어서고선 한시름 놓았다. 손을 많이 타 이런저런 보수가 필요해 보이는 집기들이 제법 있었지만, 머리카락을 찾기 힘든 바닥과 뽀송한 수건을 보니 일단 청결은 합격점이었다.


탈의실 중간에도 자랑스럽게 걸려있던 수질 분석표. 분석표는 아주 오래전에 쓰였지만, 몸을 담가보니 믿음직했다.


욕장은 들어 선 쪽을 기준으로 왼편은 씻는 좌석, 오른편은 온탕과 열탕이 나란히 줄지어 있는 모양새의 단순한 구조. 멋 부리듯 포인트를 준 유리벽돌 사이로, 절정을 찍고 하강하는 늦여름 햇살이 화사하게 탕을 비추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한산했던 카운터에서 짐작했듯, 안에도 다섯이 될까 말까 한 적은 수의 아주머니들 뿐. 엄마와 적당히 자리 잡고 샤워를 시작한 지 10초 만에, 평온하던 엄마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정아! 물이 매끈매끈하다. 진짜 온천인갑다."


보통 샤워기는 수돗물, 탕은 온천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 기대하지 않았는데 웬걸, 온천이 확실했다. 알칼리성 유황 온천이라더니, 미인 온천으로 유명하다는 일본 유명 지역의 온천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돌처럼 굳어버린 온천 결정이며, 원천 수도꼭지가 댕강 날아가 따로 보관되는 모습에서 어쩐지 벳푸 온천도 오버랩됐다.


열탕 마니아인 엄마 덕에 방금 막 온천수를 콸콸 튼 탕에서 온천을 한층 더 생생하게 느꼈다. 뜨거움을 참고 목 끝까지 몸을 담그는 일에서 극기의 즐거움을 느꼈다. 연신 팔다리를 문지르며 매끈한 온천의 기운에 집중하니, 어느새 불볕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특히 여름 목욕의 묘미를 더해준 건 냉탕이었다. 커다랗고 깊은 냉탕은 귀신같이 시원한 온도로 유지되고 있었다. 오 분이 훨씬 넘게 입욕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78도의 고온 온천을 냉각 타워에서 식혀 쓰니, 30도 초반 선의 적당한 온도가 유지되는 듯했다. 심장이 저릿해 냉온욕을 그다지 즐기지 못하는 편임에도, 수시로 열탕과 냉탕을 들락날락거리며 피서 기분을 제대로 만끽했다. 1인 5천 원에 이렇게 행복을 살 수 있다니. 엄마와의 수다 시간도 덤으로 꾹꾹 눌러 얹어 받아 더없이 기뻤다.


1989년 10월 5일 자 세계일보 특집 기사, '외진 들녘이 환락(歡樂)의 온천 관광지로'가 곱게 스크랩되어 탈의실에 걸려있다.
비교적 최근 기사. 2014년 8월 28일 자 우포 신문 기사.


목욕 후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탈의실을 자세히 둘러보니 여기저기 신문 기사가 스크랩되어있었다. 부곡 온천 최초 발견자이자 원탕 고운 호텔의 경영자였던 신현택 선생이 실린 기사들이었는데, 읽어보니 인상적인 몇 가지가 있었다.


첫째,  한국인이 처음으로 발견한 온천지라는 것. 일제시대에 개발된 대부분의 국내 온천장들과는 달리, 신현택 선생이 8년 동안 전국을 답사한 끝에 발견한 곳이라고 한다. 온도계와 낡은 굴착기를 가지고 개인이 발견한 온천이라니,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운 얘기다.

둘째, 부곡에 온천이 솟는다는 소문 때문에 땅값이 무려 천 배가 뛰었다는 것. 아이러니한 점은, 모두 투기에 혈안이 되어있어 70년대 말까지도 실제로 운영되던 온천 시설이라곤 달랑 여섯 개가 다였다고 한다.

셋째, 이미 80년대 후반부터 단체 관광 트렌드가 저물기 시작해 경기 부침을 겪었다는 거였다. 비교적 짧은 역사를 지녔지만 그 사이에 흥망성쇠를 모두 겪어낸 듯해, 한편으로는 더욱 마음이 안타까웠다.


친절하게, 적극적으로 온천의 이모저모를 알려주신 카운터의 직원분.
카운터 앞에 전시되어 있는 온천 개발 당시의 사진. 정면에서 약간 우측에 정면을 보고 있는 남자가 고 신현택 선생이다.
73년도에 지어졌던 원탕의 전경. 주변이 허허벌판이라 낯설어 보인다.


부모님과 함께 왔지만 빼먹을 수 없는 카운터 질문 시간. 프로페셔널함이 느껴지는 환한 미소와 힘찬 톤이 인상적인 중년의 신사분이 카운터를 지키고 계셨다. 어쩐지 나보다 더 궁금해하는 엄마 아빠와 함께 흥미로운 얘기를 청해 들을 수 있었다.


"1대 사장님은 돌아가셨지요. 지금은 1대 사장님 아드님이 운영하고 있고요. 저는 여기 직원이에요. 일한 지요? 30년 좀 넘었나요. 제가 여기 오기 전까지는 온천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는데, 매일 온천하니까 피부 좀 보세요. 진짜 좋지요? 여기는 73년도에 문 열어서 영업하다 97년도에 공사해서 다시 문 열어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고요. 근데, 물이 그대로긴 한데 바뀌는 게 있어요. 뭐냐면 온천 뽑아내는 위치. 점점 밑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어요. 물을 자꾸 쓰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어요. 그래야 비슷한 물이 나오거든. 깊이에 따라 온도가 조금씩 다른 거 말고는 거의 똑같아요. 물이라면 언제든지 자신 있으니까 자주 찾아주세요. 오늘도 내일도 영업합니다."


호텔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던 중, 공터에서 부곡 하와이를 마주쳤다. 이곳도 언젠가는 정상화가 되기를 바라며.


돌아가는 길, 운전을 하다 말고 공터에 차를 세웠다. 부곡 하와이의 빛바랜 글씨가 마음에 남아서 사진으로 남겼다. 어린 시절의 반짝이는 추억만큼이나, 오늘의 이 쓸쓸한 풍경도 꽤 멋지게 남으리란 확신이 들었으니까.


"아이고, 좋다. 처음에는 만사가 귀찮아서 싫드만 오기를 잘했대. 우리는 얘기한다꼬 시간이 두 시간이나 간 줄 몰랐다. 많이 기다렸드나?"

"남탕에는 등밀이 기계 없던데, 여탕엔 있더나? 아 거기도 없더나. 근데 너거는 서로 등 밀어주면 되는데 나는 어째야 하나 싶었거던. 근데 웬 할아버지가 와서 등을 밀어주대. 진짜 고맙더라. 천사 아이가? 싶었다니까. 아무튼 덕분에 깨운하네."


온천이 솟아나고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는 온천에 갈 테고 추억은 또 겹겹이 쌓이겠지. 그러니 부디 많이 찾아주시기를. 오늘의 온천은 오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니.



온천 정보


원탕 고운 호텔 ㅣ 경남 창녕군 부곡면 온천2길 36

5:00~20:00 ㅣ 대인 5,000원, 소인(7세 미만) 3,000원, 가족탕 20,000원(3시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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