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아이돌에 푹 빠진 나는 중학생 때부터 각종 팬사인회, 음악방송, 콘서트, 축제 등을 쫓아다녔다. 비교적 인기가 덜한 아이돌 그룹을 좋아했기에 망정이지 전단지 알바까지 해가며 돈을 몽땅 투자했다. 그 결과 최애를 포함한 멤버 3명이 내 이름과 얼굴을 기억할 정도였다. 대학생 때까지도 이러한 아이돌 사랑은 쭉 이어졌지만 지금은 더 이상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기가 덜한 아이돌을 쫓아다닐 때는 팬에게 무성의한 아이돌 태도에 상처받았다. 인기가 없으니 그룹 성적은 별로였고, 잘 나가는 아이돌 그룹 팬들이 부러웠다. 결국 탈덕 후 인기가 아주 많은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게 됐다. 그런데 인기가 너무 많으니 콘서트/팬미팅 티켓팅 난이도가 극악이며 팬사인회 응모는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도 내가 쓸 수 있는 선의 돈을 써가며 덕질을 이어갔지만 끝에는 사고를 치더라. 아이돌 본인도 점점 성적 욕심을 버리는 듯하고 간절하지 않은 모습을 보니 아이돌의 손을 놓게 됐다.
아이돌을 열정적으로 좋아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두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당사자인 아이돌보다 내가 더 성적에 연연하는 편이었는데, 정상을 찍은 이 그룹이 점점 커리어 로우를 찍을 때다. 더 이상 예전의 명성은 되찾을 수 없고 화려했던 과거만 그리워하는 것이 참 씁쓸했다. 두 번째는 콘서트나 팬미팅에 정말 가고 싶은데 티켓팅에 실패하면 그 현장에 함께하지 못한다는 박탈감과 소외감이다. 티켓팅을 잘하는 편이 아닌 데다가 운도 없어서, 콘서트 공지가 뜨면 티켓팅 걱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이런 게 10년 넘게 반복되니 덕질 자체가 내가 행복해지고 힐링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받고 지치는 행위가 되고 말았다.
좋아하는 게 일이 되면 싫어진다?
아이돌뿐만 아니라 배우도 좋아하고, 워낙 연예인을 좋아하다 보니 연예계 관련 일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뭐든지 멀리서 봐야 아름다운 법. 연예인과 가까워질수록 업무 환경은 극악이고 심각한 박봉이었다. 예능 하나만 나가도 하루에 몇백만 원을 버는 연예인과의 괴리감이 있었고, 갑질 아닌 갑질을 당하니 정신이 차려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 그만큼 업무 이해도가 높고 쉽긴 했지만 점점 흥미가 없어지고 드라마, 영화, 아이돌 무대 등의 관련 취미가 싫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제 그쪽 일을 관두니 다시 드라마, 영화, 아이돌 무대를 잘 챙겨보게 된 것도 웃기다. 그럼에도 남에게 함부로 좋아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은 못 하겠다. 나도 어느 게 정답인지 모르겠다. 뭐든 직접 해봐야 아는 거라서 좋아하는 일을 해본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학생 때는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돈과 시간을 들이는 것이 아깝지 않았지만, 성인이 되어 힘들게 돈을 벌어보니 그들에게 쓰는 돈과 시간이 참 아깝다. 연예인과 팬의 관계는 팬이 아무 때나 놓기만 하면 바로 끝나는 사이어서, 자주 오던 팬이 안 보이면 궁금하고 씁쓸하다고 말하는 아이돌도 있긴 하더라. 나를 기억하던 그 아이돌도 내가 안 보일 때 씁쓸했을까? 지금은 덕질을 하면서 겪는 감정 소모도 하고 싶지 않은 지친 어른이 됐지만, 아이돌과 함께했던 과거는 나 역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다.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