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의 노예입니다
벚꽃이 지고 나무에 푸릇하게 잎이 올라오면 슬슬 더위가 찾아온다. 임신을 자각할 수 있는 증상은 그 무렵부터 찾아왔다. 종종 드라마를 보면 임신을 알리기 위해 예쁘게 손으로 입을 가리며 ‘우욱’ 하고는 화장실로 뛰쳐가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 입덧은 결코 그렇지 않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기야 하겠지만 화장실까지 참을 수 있는 수준의 그것은 아니었다. 이게 참, 기가 막히게 구토를 유발하는 포인트가 다르다. 내 경우는 화장품, 향수, 향신료 등이었다. 첫 입덧의 제물은 ‘아쿠아 디 파르마 미르토’. J가 애용하는 파란 병에 든 향수였다. 많이도 아니고 손목과 목 뒤에 가볍게 칙칙 뿌리는 J의 뒤에서 로션을 챱챱 바르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역함이 몰려왔다. 체기가 있어 넘어오는 구토는 충분히 참을 수 있는데 이건 차원이 다른 수준. 입을 꾹 닫고 참을라면 코로 뿜어져 나올 기세였다. 맥없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웩하고 뱉어내는 내 뒷모습을 보며 J는 어리둥절했다. 그 뒤로 당분간 모든 향수와 향이 강한 화장품은 금지. 가끔 샤워를 하고 머리카락에 밴, 평소라면 뽀송하게 느껴졌을 헤어에센스도 모두 금지였다. 잠결에 멀리서 스치는 헤어에센스 냄새에 옆에서 깊이 잠든 J를 이불로 꽁꽁 싸매놓기도 했다. 입덧으로 고생할라치면, 또 반대로 생전 먹지 않던 것들이 그렇게 땡겼다. 태어나서 김치 만두라는 것은 내 돈 주고 사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칼국수랑 비빔냉면, 짬뽕은 또 웬 말인지. 첫 직장에서 무조건 점심 메뉴는 직속 상사와 통일해야 하는 암묵적인 규칙이 요구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나서서 먹지 않는 음식들이 밤에 이불을 덮고 눈을 감을라치면 맛까지 상상될 정도로 먹고 싶었다. 평소 혼밥을 즐겨하는 편인데, 그건 뭔가 콕 집어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방해받지 않고 혼자 천천히 공상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무렵에는 오직 맛을 느끼기 위해서 맹렬하게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이건 내가 아니야. 콩알만 한 것이 진화 전 생존 본능부터 차곡차곡 경험치를 쌓고 나오는 건가.’ 출산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먹지 않은 그 김치만두를 쩝쩝거리며 생각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마의 16주(보통 16주 정도면 입덧이 끝난다)가 지나 이제 한숨 돌리나 싶으면 임신 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여러 문제들이 우발적으로 빵빵 터진다. 첫 번째는 호르몬.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널뛰는 호르몬은 극한의 감정 축으로 내 자유의지를 내몰았다. 코로나 끝날 무렵과 맞물려 사내 임산부만 대상으로 한 재택근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환경이 아니었다면 가족은 물론이고 같은 팀원과 협업하는 팀 여럿 피곤하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잠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졌고 별소리 아닌 사소한 말에도 맥락 구분 없이 그렇게 서운했으며 문장이 긴 메일과 메시지들은 읽고 또 읽어도 요점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곤히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결국에 날려보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해 몸을 띄운 J의 헬리콥터가 내 침대 머리맡에 꽝 박는 순간, 야수처럼 일어나 헬리콥터를 밟아 으깼던 것은 그중 귀여운 에피소드였다. 그 뒤로 J는 다시는 드론이나 헬기류의 장난감을 사지 않았다. 하나 더 살짝 귀띔해주자면 출산하고도 호르몬의 변화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두 번째 문제는 임당 검사. 단 것, 고슬고슬한 쌀밥(탄수화물), 액상과당 등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그것들을 적잖이 섭취함에도 불구하고 외탁한 탓인지 혈당은 항상 낮은 편이었다. 해서 전혀 생각지 않았던 그 혈당 수치가 현재 경계에 있으니 음식 섭취를 조심하라는 담당 의사의 피드백을 받아 들고 병원을 나서는데 괜스레 눈물이 났다. 내 건강은 이제 정상이 아니구나, 나는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못 먹는 사람이구나, 이럴 때는 보통 뱃속의 아기를 걱정하는데 나는 내 걱정이나 하고, 모성애가 없는 건가, 그런 사람이 아이를 낳아도 되나, 하는 별별 웃기는 생각들과 함께 호르몬은 여전히 기세를 잃지 않고 오르락내리락했다.
임신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몸은 더욱 불편해져만 갔다. 배는 날이 갈수록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아기 크기에 비례하여 내 다른 장기들은 꼬깃꼬깃 밀려나 구석에 콕 박혀있는 꼴이 되었다. 밤 중에 4~5번은 화장실에 들락 걸렸는데, 그 와중에 혼자서 일어날 수가 없어서 자전거를 타듯이 다리를 버둥거리면 J가 잠결에 등을 쓱 밀어줬다. 임신 8~9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아기가 평균보다 유독 작은 편이었다. 고기랑 수박을 부지런히 먹으라는 담당 교수님 지령에 따라 뭐라도 챙겨 먹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는데 작아진 위장만큼 소화기능도 현저히 떨어지며 조금만 무리하면 다 게워냈다. 한 번은 32주 차 정도에 단단히 체하는 바람에 밤새 격하게 구토를 했는데, 그 바람에 너무 이른 시기에 수축이 걸렸고 입원하여 꼼짝없이 주말 내내 누워서 수축방지제를 맞고 있어야 했다. 임신 중 다른 사람에게는 사소하지만 나에게는 작지 않은 이벤트들이 연달아 발생하다 보니 도대체 인류는 긴 시간 동안 어떻게 종족을 늘려왔던 걸까 싶기도 하고, 적지 않은 나이에 준비 없이 된 임신이라 나도 아기도 이렇게 고생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금세 울적했다. 다음 달이면 아기를 만날 텐데 나는 아직도 준비가 안된 어린 사람이었다.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은 없었다. 준비는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닥치면 닥치는 대로 지나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