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에 온 것을 환영해
2022년 12월 6일 새벽 4시에 브라질과 축구 경기가 열렸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이다. 전혀 예상치 않게 조별리그를 통과하여 브라질과 16강 전을 앞두고 J와 나는 새벽 4시에 그 경기를 실시간으로 시청하기 위해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잔뜩 사놨다. 초저녁 잠이 많은 J는 오후 9시 즈음해서 경기 전에 깨워달라는 말을 하고는 먼저 잠들었고, 나는 아기의 발길질로 올록볼록 거리는 배를 쓰다듬으며 의미 없이 틀어 둔 여행 예능을 보고 있었다. 최근 며칠간 알싸한 통증이 비규칙적으로 있었는데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규칙적으로 허리를 쪼이는 느낌을 동반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출산 예정일이 아직 일주일 이상 남았던 시점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찝찝한 느낌에 화장실을 갔더니 약간의 채도 높은 하혈이 보였다. 그 간 유튜브로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있어 ‘아, 이게 이슬이군!’ 하고 병원 분만과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입원 준비해서 병원으로 바로 오세요, 애기엄마!” 보통 병원에서 듣는 호칭으로는 이름 아니면 환자분이었는데, 애기엄마라는 호칭이 휴대폰 밖으로 흘러나오니 그때부터 진짜구나 싶어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깊이 잠들어있던 J를 흔들어 깨워 진작에 싸놓은 출산가방을 차에 싣고 허겁지겁 병원으로 향했다. 바로 전날까지 출근을 했으니 이제 남은 이주 동안은 마지막 자유 시간을 제대로 즐기려 했는데! 횡단보도에 걸친 신호등의 빨간 불이 침침한 눈을 통해 포실하게 번져 보였는데 그게 마치 꼭 오늘 하루가 결코 순탄치 않을 거라는 경고등과도 같았다.
동네 산부인과 전문 병원은 가족분만실이 따로 있다. 밝은 주황빛 조명이 전체적으로 감도는 아늑한 분위기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곳에서 아기를 낳으라고?’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우선 가족분만실로 입성하는 과정부터가 순탄치 않다. 자궁문이 최소 3cm 이상 열려야지만 그 자격을 얻는데, 그전까지는 양호실 간이침대 같은 곳에 누워 진통과 불안함을 견디며 기다려야 한다. 5~60대 지긋한 나이의 분만사들이 계속 내진을 통해 상태를 체크하는데 통증과 수치심이 동반되니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애기엄마, 양수 터졌어요. 촉진제 놓을게요. 오늘 오후 전에 무조건 힘내서 낳읍시다.’ 하고 찡긋 웃는 분만사의 멘트가 어찌나 공포스럽던지.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켜놓은 브라질과의 축구 경기에서는 이미 우리나라가 4골을 허용한 상태였다. 덕분에 두려움은 전혀 떨쳐지지 않았고 더 보고 싶은 의욕이 사라져 침대 옆에 휴대폰을 툭 던져버렸다. 촉진제를 맞고 나니 그때부터 정확히 규칙적으로 통증이 시작되었다. 그와 함께 내가 자연분만을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무통주사 역시 자궁문이 3cm 이상 열려야지만 허용된다. 간신히 그 자격이 주어져 무통주사 처방과 함께 가족분만실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등허리 어딘가에 꽂힌 주삿바늘을 통해 무통주사를 맞게 되면 기가 막히게 통증이 가라앉는데, 아랫배에 은근한 수축이 느껴지긴 하지만 통증이라고 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어서 이때부터 다시 평화를 찾는다. 널찍한 가족분만실 한쪽에 놓인 짐볼 위에 앉아 통통거리며 초콜릿우유를 마시니 ‘별거 아닌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 밖에는 올해의 첫눈이 펑펑 오고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J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데 다시 배가 사르르 아프기 시작했다. J가 통증 때문에 안색이 변하는 내 얼굴을 보고 무통주사를 요청했는데, 웬걸. 분만사가 빠르게 쫓아와서 내진하더니 ‘어머, 애기엄마! 자궁 하나도 안 열렸어요! 빨리 복도랑 계단 걷고 와요. 한 시간 후에 놔줄게요!’ 하더란다. 통증이 3분 간격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와 비례한 속도로 지옥행 급행열차에 올라탄 나는 한가하게 짐볼이나 타던 과거의 나를 욕하며 빠르게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오로지 무통주사를 맞으려는 일념 하나로. 3분을 걷고 복도에 쓰러져 1분 펑펑 울다가 다시 일어나 3분을 걷는 사이클의 무한 지옥. 3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기껏 30분을 가리키는 분침이 그리 야속할 수가 없었다. 점점 지날수록 주기는 더욱 짧아졌다. 통증을 못 이기고 복도에 그대로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니 주변 산모들이 모두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자 J와 2~3명의 분만사들이 나를 번쩍 들어 다시 분만실로 들어갔고, 본 게임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고정된 자세로는 힘을 못쓰고 비명만 지르자 분만사 대여섯 명이 몰려들어 마치 콩가루 위에 인절미처럼 나를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J가 ‘호흡법 기억하지! 우리 연습했잖아!’라고 조잘거리는데 그게 어찌나 화가 나던지. 입에 써진 산소마스크만 아니면 욕을 한 바가지 들이붓고 싶었다. 분만사가 윗배를 밀어내며 누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자 ‘선생님 호출해요!’ 하는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자궁 입구 쪽으로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의사의 신호와 함께 힘을 주고 빼고를 몇 번 반복하니 어느 순간 몸 안에 수박처럼 꽉 막혀 있던 느낌이 통증과 함께 해소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몰아치는 정적. 울음소리가 바로 들려야 할 것 같은데 내 생각처럼 빠르게 들리지 않자 안 그래도 힘을 줘서 얼굴까지 뜨겁게 느껴지던 심장 고동이 머리를 뚫고 폭발할 것 같았다. 그리고 시작된 힘찬 아기 울음소리. 의사의 입장과 함께 쫓겨났던 J가 간호사에 이끌려 다시 분만실로 들어왔다. 의사가 J에게 탯줄을 끊으라고 하자 약간의 물기 어린 목소리로 ‘저 이런 건 좀 무서운데요…’라고 대답했다. 나와 J는 나이차가 제법 나서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J에게 반정도 존대를 섞어서 이야기했었는데, J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못 참고 남은 힘을 단전부터 끌어모아 힘차게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말고 그냥 빨리 잘라!’
아기와의 첫 만남은 뭐랄까. 상상했던 것처럼 뭉클하고 사랑스럽고 신비롭지는 않았다. 대충 닦아 아직도 태지가 여기저기 묻어있고 양수에 퉁퉁 불은 아기를 분만사가 ‘공주님이에요! 너무 예쁘죠?’ 하는 통상적인 말과 함께 보여주는데 나는 그저 손가락 발가락 다섯 개가 모두 건재한지, 다른 곳 이상한 부분은 없는지 살피기 바빴다. 일반적으로 그때 분만사가 가족사진도 기념으로 찍어주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저 아기에게 이상이 없는지만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딱히 문제 될만한 부분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아기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낯설다. 예쁜가? 잘 모르겠다. 잔뜩 불어서 빨갛고 못생겼다. J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나에게 고생했다고 말했다. J의 눈물이 이상했다. 나에게 모성애가 없는 건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출산 후 후처리를 마치고 입원실로 올라가니 벌써 오후 2시경. 밤을 꼴딱 새우며 통증과 씨름한 터라 입원실 침대에 몸을 눕히자마자 잠이 들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어느새 아기와의 첫 면회 시간이 다되어 J가 어렵사리 나를 깨웠다. 힘겹게 걸어서 신생아 면회실로 내려가 아기를 호출했다. 바로 만지거나 할 수는 없고 커튼이 단단히 쳐진 유리창 한쪽으로 아기가 누워있는 침대가 빼꼼히 나타난다. ‘OOO 아기’라고 써진 작디작은 침대 위에 세상 이렇게나 약할 수가 있나 싶은 생명체가 누워있다. 아직도 촉촉하게 젖은 머리에, 꾹 감은 두 눈, 오밀조밀한 코와 빨간 입가. 사진을 찍을 필요도 없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른다. 첫눈과 함께 세상에 온 내 아기. 내 우주. 안녕 나의 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