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칸의 콩실 엄마
“이곳은 바깥세상과 질서가 정말 달라요. 엄마의 나이, 경력, 학벌 여기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여기선 다른 조건과 규칙이 존재해요. 그 규칙으로 1등 칸 엄마와 꼬리 칸 엄마를 나누죠.” 산후조리원 자체가 제목인 드라마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1등 칸, 꼬리칸이요?” 주인공이 물었다. “1등 칸에 탄 엄마들은 모성이 입증된 엄마들이에요.” 현실에서도 딱히 1등 칸을 타본 적은 없지만 어디서든 2,3등 칸 정도는 타고 있다 생각했는데. 산후조리원 열차에서는 꼼짝없이 꼬리칸 신세라는 것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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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에서 8시까지 두 시간 정도 신생아실 청소와 정비를 위해 엄마들이 각자의 방에서 자신의 아기를 돌보는 시간이 있다. 이른바 ‘모자동실’. 금남의 구역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아빠의 방문도 허용된다. 조리원에 입소한 당일은 J가 집에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위해 이래저래 바빠 호기롭게 나 혼자 모자동실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어차피 해줄 것은 분유 먹이기와 기저귀 갈아주기, 자는 것 지켜보기 정도가 아니던가. 어려울 것 하나 없지. 자신만만하게 아기를 방으로 안고 와 아기침대에 살포시 눕힌 후 내가 만들어낸 작품(뽀샤시한 잠든 아기 얼굴)을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며 뒹굴거렸다. 잘 자던 아기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분유를 먹이기 전에 먼저 기저귀를 살펴보라 했었지. 아기와 함께 챙겨 온 분유병과 기저귀를 침대 옆 간이 테이블에 세팅하고 하얀 속싸개를 훌훌 풀어헤쳤다. 기저귀에 파란 줄이 가있는 것을 보니 그 사이 소변을 본 모양이다. 유튜브에서 몇 번씩 돌려봤던 기저귀 가는 법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새 기저귀를 아기 엉덩이 밑에 깔고 헌 기저귀를 빼낸 순간 ‘조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뜨듯한 감촉이 손을 적셨다. 받아온 기저귀는 달랑 한 벌이라 어쩔 수 없이 다시 채우려고 하는 찰나 아기의 우렁찬 생리현상은 다시 시작되었다. 노오란 황금빛 그것은 다시 기저귀를 쌀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었고 이미 기저귀 밖으로 새어 침대 언저리도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아기를 가볍게 들어 씻길 수 있는 고난도의 스킬은 아직 익히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다 아기 엉덩이를 냅다 틀어막고 신생아실로 뛰어갔다. 이제 막 청소를 끝내고 믹스커피를 한잔 훌훌 타 입가에 가져가고 있던 신생아실 간호사는 놀라서 커피잔을 내려놓고 얼른 아기를 받아 노랗게 범벅이 된 엉덩이를 말끔히 씻겨주었다. 전문가의 손길로 새 속싸개를 척척 입혀주는 모습에 안도의 숨이 길게 새어 나왔다. 입을 헤 벌린 채 바보 같은 표정으로 구경하는 나를 곁눈으로 흘깃 보더니 어화둥둥 아기를 얼르며 그 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원래 엄마도 처음부터 완벽하지는 않아.’
산후조리원의 첫날은 이래저래 몸과 마음이 고되었다. ‘금빛 기저귀’ 사건을 뒤로하고 또 늦은 시간까지 훌찌럭 거리며 잠이 들었다 보니 오전 10시가 다돼서야 호출 소리를 듣고 간신히 일어날 수 있었다. 산모들의 천국이라던 산후조리원은 아침부터 내 의사를 일절 고려치 않은 스케줄이 빡빡히 짜여 있었는데, 바로 다음날 오전부터 원장이 진행하는 모유 수유 수업을 들어야 했다. 원장의 도움을 받아 자세를 이리저리 다시 잡아봤지만 여전히 모유는 나오지 않았고 아기는 몇 번 입에 물다 힘이 들었는지 빼액하고 울며 고개를 훽 돌려버렸다. 아기의 얼굴 각도와 내 자세를 봐주던 원장이 이제부터 슬슬 젖몸살이 돌며 수유가 가능할 것이니, 정해진 시간에 아기를 데려가 직수를 시도하는 것과 함께 유축기를 사용하여 분유병에 모유를 담아주면 분유와 섞어 아기에게 먹여주겠다고 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둘러보니 첫날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유축기가 테이블 한 편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보기에도 낯선 이상한 생김새에 이리저리 살펴보다 유튜브로 유축기 사용법을 대략 숙지한 후 전원 버튼을 눌렀다. 5분씩 양쪽 번갈아 세 번의 사이클을 돌고 나니 5ml 정도의 샛노란 병아리색 모유방울이 분유병에 알량하게 담긴다. 코딱지만 한 양이라 분유병을 한번 흔들어보고 아기한테 먹일 정도는 아니란 생각에 그대로 세면대에 흘려보낸 후 분유병을 돌려주러 신생아실로 갔다. 빈 분유병을 신생아실 간호사에게 건네니, 응? 하는 표정과 함께 ‘아직도 모유가 안 돌아요?’ 하고 물어왔다. ‘양이 너무 적어서 그냥 버리고 왔어요.’라고 대답하니 뜨악한 표정으로 혀를 쯧쯧 차며 ‘에그머니! 그게 초유인데! 영양분은 거기에 다 담겨 있단 말이에요. 다음부터는 양이 아무리 적어도 다 들고 와요!’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순식간에 또 우울해졌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근거도 없는 내 자신감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사실 이맘때즈음엔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블로그를 뒤적거려 보니 그 샛노란 ‘초유’에 대한 찬양이 온 인터넷에 만연했다. 그걸 그대로 세면대에 버린 나는 천하의 나쁜 엄마였다. 그 뒤로는 어떻게든 그걸 만회하고자 이를 악물고 4시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놓고 밤낮 가리지 않으며 유축을 했지만 한 번에 40ml 이상이 모이는 일은 없었다. 바로 옆 방 산모는 모유가 흘러넘치다 못해 남아돌았다. 버리기는 아까워서 냉동실에 보관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날 하루 간신히 짜낸 모유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탈탈 분유병에 담아냈다. 차라리 J의 눈물을 뽑아내는 게 양이 더 많을 것 같았다. 그런 처지다 보니 직수는 꿈도 꾸지 못했고 시도할 때마다 배고프고 화가 난 아기는 더 신경질적으로 울었다. 심지어 산모들이 가장 고생한다는 젖몸살조차 없어서 산후조리원의 대표적인 서비스인 ‘젖몸살을 풀어주는 가슴마사지’는 나에겐 완전히 무용지물이었다. 마사지사가 뭉침 없는 말랑한 가슴을 형식적으로 조물거리는 모습이 한층 우울감을 더했다. 그렇게 산후조리원에서 보낸 2주 동안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완전히 단유 되었다. 한동안 나의 네이버 검색창에는 ‘분유만 먹은 아기 건강한가요?’ 란 키워드가 사라지지 않았다.
옆 방 산모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녀는 나와 분만실 동기였다. 같은 병원,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출산을 했는데 내가 복도에서 울부짖는 것을 그대로 목격하고 너무 무서워 제왕절개가 가능한지 간호사한테 물어봤다고 나중에야 전해 들었다. 오며 가며 마주치다 보니 잠깐 복도 소파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본인이 간식으로 챙겨 나온 과자를 나눠주며 저녁 식사는 산후조리원 내 식당에서 먹을 수도 있고 각자 방에서 먹을 수도 있는데, 식당에서 먹으면 자연스레 다른 산모들과 이야기를 하며 친해질 수 있으니 나와서 먹으라고 알려주었다. 일반적으로 산후조리원에서 친해진 엄마들끼리 끈끈한 전우애가 쌓이며 퇴소 후에도 만나 같이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새로운 육아공동체가 생긴다는 것을 나도 익히 알고 있었는데 마주칠 일이 없어 마침 전전긍긍하던 차였다. 퇴소가 바로 내일모레인데 이제야 육아 커뮤니티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다니. 그녀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기 이름이 우주죠? 작명소 가서 아기 이름을 받아왔는데 그중 우주란 이름이 있더라구요. 이름이 너무 입에 찰싹 붙고 이뻐요. 그래서… 저도 우주라고 지어도 괜찮을까요?’ 좋은 정보를 알려준 그녀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불편하지 않도록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요, 어차피 퇴소하면 다시 마주칠 일이 없을 텐데요.’ 그녀의 당황하는 표정을 보고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지만 물은 이미 대단히 엎질러진 후. 그날 저녁은 그녀가 알려준 대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이미 친해진 산모들 네다섯 명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길래, 나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엄마라는 여유를 온몸에 무장한 그녀들이 나에게 친근한 인사를 건넨다. 말 트기 성공이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말미에, 한 엄마가 이번에 낳은 아기는 둘째라며 사실 자기가 첫째를 낳기까지 세 번이나 유산을 겪었다고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함께 식사하던 엄마들은 분위기 때문인지 깊게 감정에 몰입되었고, 하나둘 코맹맹이 소리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도 뭔가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둘째는 이슈가 없었나 봐요?’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잠시의 어색한 침묵 뒤에 겨우 대화가 다시 이어졌지만, 그전만큼 화기애애하지는 않았다. 결국 어색하게 식사가 마무리된 자리에 나는 또 혼자 남겨졌다. 평소 그렇게나 자주 나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뜨리던 호르몬. 하필이면 그날 그 순간에 자리를 비운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퇴소하는 날까지도 ‘조동(조리원 동기) 단체 카톡방’에 초대받지 못했다. 옆 방 산모 역시 퇴소하는 날까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싶어 J에게 털어놨지만 그는 그저 긴 한숨만 남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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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어떻게 입증하죠?” 1등 칸에 탄 엄마들은 모성이 입증된 엄마들이라는 대답에, 주인공은 다시 물었다. “아이를 위해 얼마나 희생할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거죠. 아이를 여러 명 낳아 오랜 기간 육아에 묶여있었거나, 자연주의 출산으로 쌩으로 진통을 겪고 아이를 만났거나, 모유 수유를 완모로 2년 했거나. 뭐 그런 것들이요.” 경험도, 모유도, 인맥도 가지지 못한 나는 진정 꼬리칸 엄마였다. 그보다 더 마음 아리고 서글펐던 사실은 내가 꼬리칸에 타고 있으면 콩실이 도 꼼짝없이 나와 함께 꼬리칸에 타고 있어야 한다는 드라마 속 그 대사, 그대로의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