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초기 육아기(1)

나갈 땐 둘이었는데, 올 땐 셋이 되었네

by 우주

저출산 시대에 걸맞게 나라에서 ‘3주 간 무료로 산후도우미’를 제공해 주는 아주 좋은 제도가 있다. 다만 출산율이 높은 동네는 제법 경쟁률이 치열하다. 평이 좋은 업체는 가능한 일찍 신청을 해야 사용할 수 있고 나처럼 예정일보다 2주가량 빨리 아기가 나오면 그 중간 일정이 붕뜨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예약해 둔 업체에 연락하여 일정을 조금 더 당길 수 없냐고 물어보니, 12월 26일에야 방문 가능하다고 했다. 내가 조리원에서 퇴소하는 날짜는 12월 22일. 퇴소하여 바로 익숙한 환경인 우리 집에서 기본적인 케어 방법이나 육아 지식들을 전수받고 본격적인 육아를 시작하려던 계획은 한 큐에 무너졌다. 무려 5일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신생아라고는 다큐멘터리에서나 본 것이 전부인 우리에게 ‘아무 문제 없이 신생아를 돌봐라!’하는 챌린지가 떨어진 것이다. 산후조리원에서 어깨너머로 배우고 나올 수도 있었지만 볼 때마다 간호사들이 양말을 신고 다니라고 잔소리하는 것부터가 듣기 싫어 될 데로 되라는 마음가짐으로 2주 내내 빈둥거리며 피해 다닌 책임은 오롯이 J와 내가 지게 될 터였다. 마지막 보루로 믿고 있던 친정 엄마는 하필 또 그 시기에 일이 생겨 오지 못하게 되었고 챌린지의 날은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분유를 먹이는 것과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이야 어찌 어설픈 손길로라도 해내겠지만, 걱정되는 부분은 아기 목욕과 예상치 못한 비상 상황이 닥치는 것. 평소 항상 자신만만하여 어떤 어려운 일도 심드렁하게 ‘그까짓 거 그냥 하면 되지-’라고 대답하는 J가 이번에도 똑같이 말했지만, 이전처럼 귀엽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J가 자신 있게 주장하는 것들은 대부분 이루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제주항공 주식이나 드라마 결말 같은 것들은 애교 수준) 2주 만에 돌아온 집은 떠나기 전과 비교해 많이 바뀌었다. 거실에 있던 딱딱한 테이블과 소파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푹신한 매트가 깔린 베이비룸과 수유 의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내가 집을 비운 동안 J가 아빠 펭귄마냥 부지런히 둥지를 꾸민 결과였다. 산후조리원 있는 내내 친구도 못 사귀고 미역국 안 먹는다, 양말 안 신는다 잔소리만 줄창 듣느라 몹시 고달팠는데 집에 오니 숨통이 트였다. 쿠션에 기대어 아기를 살포시 눕히니 집에 온 걸 아는지 모르는지 색색 거리면서 잠이 들었다. 산후조리원에서 퇴소하기 전 출생신고도 하여 아기는 이 지구에서 유일한 자신의 세계, 그리고 다른 세계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가 될 ‘우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J와 나는 잠든 우주를 가운데에 두고 세 식구 완전체가 드디어 집에 모두 모였음을 자축하는 ‘환영의 춤’을 추었다.


대망의 육아 시작. 시도 때도 없이 깰 거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비규칙적일 것이란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애초에 나올 때부터 작았던 우주는 산후조리원에서 퇴소하여 집에 올 때까지도 3킬로그램을 넘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위도 작아 유달리 잠에서 자주 깼고 기저귀에 소변 한 번 본 것도 참지 못하는 고약한 성미를 가지고 있었다. J와 나는 서로 의리를 지킨다고 항상 같이 일어나서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았는데, 이는 아주 대단한 패착이었다. 한 명이 돌보면 다른 한 명은 반드시 체력을 비축하여 컨디션을 유지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20분 혹은 3~40분 간격으로 울어대는 우주를 돌보느라 밤을 생으로 꼴딱 지새웠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하루이틀로 끝날 것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우유만 먹이면 되는 것이 아니고 트림도 적절하게 시켜야 했는데 운 좋으면 5분 안에 나오지만 나쁘면 수십 분을 두드려도 나오지 않았다. 30분이 넘어가도 트림이 안 나오길래, 못 들었겠거니 하고 침대에 눕히는 순간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우유 토’는 안 그래도 자신감이 바닥까지 하락한 나에게 극심한 공포감을 안겨줬다. 그렇게 고단한 정신을 이끌고 맞이한 이틀째 밤. 하루에 두 번씩 규칙적으로 변을 잘 봤었는데 이상하게 퇴소한 이후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우주의 작은 배는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말도 못 하는 작은 아기가 뭐가 그리 괴로운지 새벽 1시가 넘어가도록 잠도 못 자고 맹렬히 울어댔다. 둘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 산후조리원에 전화해 보기로 했다. ‘산후조리원입니다-’ 익숙한 원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어찌나 반갑던지. J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이것저것 물어보며 상황을 파악한 원장이 분유를 한 숟갈 더 넣어 진하게 타서 먹여보란다. 아마 모유를 섞어먹다 분유만 먹게 되니 변비가 온 것 같다고. 안 먹는다고 입을 꾹 닫고 우는 우주를 어찌 어르고 달래어 분유를 먹이니 금세 변의를 느껴 얼굴이 빨개지도록 끙끙거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힘만 주고 있지 기다리던 것은 고개를 내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힘을 못주고 병아리처럼 가냘프게 삐약거리며 울자, J가 안 되겠다 싶어 손으로 엉덩이를 꾹꾹 누르며 도움을 줬다. 잠시 후 끄트머리가 까맣고 딱딱하게 굳은 ‘기다리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이 작은 몸에 이렇게나 많이 담겨있었지 싶은 노란 것들을 다 밀어낸 우주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분유병을 입에 물었다. 그 와중에 기저귀 끝에 약간의 빨간 피가 묻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자 나는 왈칵 J에게 눈물 섞인 화를 내고 말았다. 모유도 못 먹이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아기는 힘들어하고. 정말 최악의 꼬리칸 엄마였다. J도 지치고 힘들었을 텐데 담담하게 내가 쏟아내는 말도 안 되는 모난 말을 받아주며 토닥거렸다. 새벽 세시 경이 돼서야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방 안 끝까지 햇빛이 밀고 들어와 있었다. J가 아기를 데리고 거실에서 자며 밤새 돌봐 준 덕이었다.


어렵고 낯설었던 아기 돌보기가 약간이나마 손에 익기 시작한 날은 크리스마스였다. 티브이에는 온통 연말과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저녁이 되자 바깥 길거리에서도 성탄절을 축하하는 노랫소리와 꺄르륵하는 즐거운 웃음소리가 뚫고 들어왔다. 푹신한 침대에서 얄미롭게 혼자 푹 잔 주제에 여전히 기분이 풀리지 않아 울적하고 처져있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J가 ‘잠깐 마트에 좀 다녀올게-’ 하더니 나름 크리스마스 느낌이 산뜻하게 담긴 초콜릿 케이크와 와인을 사들고 돌아왔다. 그걸 보고 3일 만에 헤죽 하고 웃음을 보인 나는 J를 꼭 한 번 껴안고 초에 불을 붙였다. 우주를 안고와서 씻지도 못한 채 꼬질꼬질한 모습 그대로 셋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 셋의 첫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휴대폰 속 사진으로 남아있다. 다음 날 아침, 월요일 아침이면 늘 그렇듯 일찍 출근한 J는 이미 없었고 아기와 나만 잠들어 있던 고요한 집에 초인종이 울렸다. 여러 번 울리는 벨 소리에 겨우 일어나 문을 열었더니 인상 좋은 산후도우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마치 신이 보낸 선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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