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초기 육아기(3)

수술실 앞 두 개의 기억

by 우주

분만한 병원에서 퇴원할 때 받았던 ‘퇴원 전 검사’에서 우주의 왼쪽 귀 청력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소견이 있었기에 세 달 정도가 지난 후 근처 이비인후과에 방문했다. 이쯤이면 귓속 양수도 다 마른 뒤 일 테니 내심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주를 재워 정밀하게 다시 진행한 청력 검사의 결과는 실로 참담했다. 사실상 장애 수준의 청력. 그것도 한쪽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양쪽 귀 모두 청력 소실에 가깝다고 했다. 의사는 이 정도면 거의 들리지 않을 거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순간 귀에 징-하고 이명이 들리며 눈앞이 캄캄했다.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아 말을 더듬으며 ‘어.. 그럼 어떻게 해야 되죠?’라고 묻는 나를 도닥이며 J가 대형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소개장을 써달라고 했다. 병원을 나서자마자 예약한 대형병원은 운 좋게 그다음 주에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지옥이 바로 여기 있구나 싶은 한 주를 어렵게 보내고, 마침내 진료를 보기로 한 날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 소아 전문 이비인후과 교수의 진료실이다 보니 대기실 앞은 어린아이들로 바글거렸다. 개중에 귀에 보청기를 낀 네다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쌍둥이 형제가 우두커니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우리 우주도 보청기를 하게 되는 건가 싶어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이윽고 차례가 되자 긴장으로 온몸이 뻣뻣해진 채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금테 안경을 쓴 이비인후과 교수는 예상보다 젊고 쾌활한 인상이었다. 우리가 가져온 검사지들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뭐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하며 내시경을 통해 귀를 한 번 보자고 했다. 차갑고 낯선 감촉이 귀에 닿자마자 악을 쓰고 우는 우주를 움직이지 못하게 꼭 끌어안고 귓속을 살펴보니 이게 웬걸, 양쪽 귀에 물이 가득 차있다고 했다. 삼출성 중이염이었다. 열이나 통증 없이도 액체가 오래 고여 청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현재 청력에 문제가 있는 원인이 바로 이것으로 보이니 고막에 튜브를 삽입해서 삼출액을 빼주는 수술을 하자며 바로 일정을 잡아주었다. 물론 이후에도 청력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아예 무시할 순 없었지만 J와 나는 지옥으로 끌려들어 가기 직전 바로 입구에서 유예기간을 선고받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또 긴장 속에서 우주를 돌보며 하루하루가 흘렀다.


분당에 있는 대형병원은 개인적으로 아주 불편한 곳이었다.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4년 동안 그 병원에 머무르며 수차례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오갔었고 입원도 오래 해서 병원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이었다. 우주가 그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니 거부감이 목구멍까지 불쑥 치밀었다. 엄마에게 이야기하니 아무 말 없이 나랑 똑같은 표정이 되돌아왔다. 수술 당일날 아침 온 가족이 출동했다. 우주는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신나서 연신 꺄꺄 소리를 질렀다. 이비인후과로 가서 접수를 하니 수술 전 검사를 위해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다. 가장 작은 사이즈를 받아왔는데도 바지는 커서 입을 수가 없었고 상의만 소매를 돌돌 걷어 원피스처럼 입혔다. 수술 대기실에 있는 많은 사람들 중 가장 어리고 작은 환자였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간호사가 작디작은 손임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혈관을 찾아 한번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다른 간호사들과 복장이 다른걸 보니 아기가 고생할까 싶어 간호사실에서 주사실로 지원 요청을 한 모양이었다. 우주는 그날 담당 교수의 첫 수술이었다. 간호사들과 인턴 의사가 번갈아 찾아오며 아기가 불편하지 않도록 돌봐 주었다. 수술 전 검사 결과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곧바로 수술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보호자들은 수술장 밖에서 대기해야 하는데, 혼자 들어갈 수 없는 우주는 예외적으로 보호자가 같이 들어가야 했다. 왠지 모르게 울더라도 내가 꼭 가야 할 것 같아서, 수술장 안으로 같이 들어가겠다는 J를 만류하고 우주를 안아 들었다.


수술장 안에는 그 시간대 수술을 받으려고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의 침대가 줄지어 놓여있었다. 마치 차가운 수술 공장처럼. 열댓 명의 사람들이 침대에 누워 생기 없는 눈을 꿈뻑거리며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고,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그 사이를 바쁘게 움직이며 이런저런 기계들을 세팅하고 수액을 연결하고 있었다. 나도 수술대에 우주를 눕힐 때까지 따라 들어가야 했기에 담당 간호사가 입혀주는 수술가운을 먼저 입고, 우주에게도 입혀주었다. 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며 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내 아빠도 바로 이곳에서 수술 준비를 하고 두려움을 억누르며 수술을 받았었겠구나, 내 아기가 이곳에서 엄마 없이 혼자 수술을 받아야 하는구나. 사람들이 누워있는 침대가 순서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우주를 안고 순번에 맞춰 침대 사이를 걸어서 이동했다. 우주의 수술방 안에는 네 명정도의 녹색 수술복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금세 반대쪽 문이 열리며 담당 교수가 들어왔다. 우주를 수술대 위에 눕혔다. 이제 세상에 나온 지 고작 6개월 밖에 안된 작은 우주는 새된 목소리로 울며 내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교수가 우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 쪼끄만 게 벌써 엄마바라기구나?’ 하고 우주 입에 슬며시 마스크를 대주었다. 호흡으로 바로 마취가 시작되었고 앙앙 울던 우주의 손에 스르륵 힘이 빠졌다. 양쪽 눈꼬리에 눈물이 가득 고인채. 나는 그 자리에서 못 참고 엉엉 울고 말았고, 간호사가 나를 토닥거리며 수술장 밖으로 데려다주었다. 수술장 바로 입구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던 J와 엄마는 내가 모습을 보이자 둘 다 물기 어린 빨간 눈으로 나를 챙겨서 자리에 앉혀주었다.


셋 다 한마디 말없이 수술장 입구 대기실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서 수술 현황 모니터만 뚫어져라 본 지 한 시간 반정도 지났을 무렵, 모니터의 우주 현 위치 항목이 ‘회복실’로 바뀌었다. 수술이 끝났다는 의미다. 잠시 후에 우주 보호자를 찾는 방송이 울리자 J와 나는 출발선 위의 호각 신호를 들은 육상선수처럼 수술장 앞으로 뛰쳐나갔다. 담당 교수가 먼저 문 앞으로 나와 수술은 아주 깔끔하게 잘 되었으니 걱정 말라고, 아기가 마취에서 깨어나면 바로 데리고 나올 것이라고 했다. 연신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닫혔던 문이 다시 열리고 우주를 태운 침대가 덜덜거리며 밀려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고개를 기웃거리는데 침대 위에 우주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딨 는 거지? 당황하여 침대 곁으로 바짝 다가서자 이불에 폭쌓인 작은 아기가 눈은 퉁퉁 붓고 목소리는 잔뜩 쉬어서 애앵- 하면서 울고 있었다.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던 거다. 나는 바로 우주를 안아 들고, 2시간 정도 재우면 안 된다는 지령을 받아 계속 잠들려고 축축 처지는 아기를 어르고 달래며 1층 병원 복도를 수십 바퀴 돌았다. 무사히 수술이 끝나 내 품에 안겨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었다. J는 두 번은 못할 짓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루 만에 J의 두 눈은 퀭하니 쏙 들어가 있었다. 일주일 후, 다시 병원을 찾아 청력 검사를 했고 잠시 기다리면 검사 결과를 그날 바로 알려준다고 했다. 이번엔 J가 검사실에 아기를 데리고 들어갔었는데, 끝나고 나오자마자 근심 어린 표정으로 검사지의 그래프 지표가 안 좋아 보인다는 말을 꺼냈다. 그 말에 또 애꿎은 J에게 잔뜩 성을 내며 우주를 안고 진료실 호출이 올 때까지 내내 복도를 서성였다. 도저히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우주의 차례가 와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니 담당 교수가 자리에 앉아 유심히 검사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듯한 느낌이 절정에 이를 때 즈음, 비로소 교수가 검사지에서 눈을 떼고 방긋 웃으며 말했다. “완전히 정상이네요. 이제 병원에는 안 오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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