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먹는 것도 유전인가요
이유식을 먹이는 시기도 그때그때 시대마다의 트렌드가 있는데, 최근에는 생후 180일을 기점으로 이유식을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릴 때는 엄마가, 학생 때는 학교에서, 직장인일 때는 회사에서 삼시 세끼 받아먹을 줄만 알았던 나의 인생 전반에 걸친 식생(食生)은 이제 주는 것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대전환점을 맞이했다. 이에 뒤처질세라 엄마들 사이에서 소위 ‘제2의 혼수’라고 일컬어지는 이유식기와 장비들을 우주 생후 160일 무렵부터 부지런히 사모으기 시작했다. 라면 하나를 끓이기 위해서도 눈금이 표시된 계량컵에 물을 따르는 내 입장에서 이유식은 정말이지 대단한 도전이었다. 대망의 첫 이유식은 미음. 유기농 쌀가루와 실리콘으로 된 조리 도구를 이용하여 15분 동안 조리법을 숙지하고 제조에 들어간 나를 엄마는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도 나를 닮아(내가 엄마를 닮은 거지만) 말수가 그리 적은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왠지 그 순간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의사소통에는 ‘언어’만 그 대상인 것이 아니라 제스처나 표정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듯 눈빛만으로 ‘매우 한심하지만 굳이 의욕을 꺾고 싶지는 않다’ 정도의 의사를 내비쳤다. 우주는 잘 먹는 아기는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또 아예 안 먹지는 않았다. 아기일 때 식습관을 잡기 위해 제때 밥을 안 먹이고 내버려두니 탈수가 올 때까지 먹지 않았던 나보다는 한결 먹이기 쉬웠다. 엄마는 30여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우주 입에 쏙쏙 숟가락을 넣어주었다. 초반 며칠은 잘 먹지 않다가 입으로 냠냠 음미하는 형식의 영양섭취법이 점점 익숙해지자 아기새처럼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물론 먹는 양은 항상 표준보다 두어 숟가락이 적어 남은 죽을 마저 먹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엄마는 그 모습을 옆에서 보며 ‘너도 너 같은 딸 낳아봐라- 하고 생각했지만 진짜 낳을 줄은 몰랐네.’라고 하면서 여유 있게 오랜 시간에 걸쳐 제법 많은 양을 우주에게 먹여주었다. 왜 잘 안 먹을까 발을 동동 거리는 나를 엄마는 곁눈으로 보며 ‘그래도 우주가 너보단 훨씬 낫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인터넷에는 ‘자기 주도 이유식’, ‘밥솥 이유식’, ‘큐브 이유식’ 등 이유식 방법에 대한 노하우들이 떠돌아다녔다. 애초에 요리에 대한 지식 베이스가 얄팍하다 보니 스스로가 가진 이유식의 기준 따윈 없었고, 유튜브로 보고 좋아 보이는 것을 이것저것 따라 했다. 물론 그중에서 사방 데에 이유식을 흩뿌리는 ‘자기 주도 이유식’만은 시도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유식 중기에 접어들자, 재료의 맛을 온전히 느끼며 모양도 이뻐 보이는 ‘큐브 이유식’을 따라 하기 위해 맘먹고 비싼 믹서기와 알록달록한 색상의 실리콘 큐브 틀도 여러 개 구입했다. ‘큐브 이유식’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모든 재료를 탈탈 넣고 끓여서 한 그릇 죽으로 만드는 방식의 이유식이 아니라 재료 본연의 맛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각각의 재료를 갈아서 마치 반찬처럼 식판에 예쁘게 담아주는 형태이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실리콘 아기 식판까지 완벽하게 색깔 배색을 이루게 하여 내놓았지만 아직 우주의 심미안은 나와 동기화되어 있지 않았다. 약간의 쓴맛이 날 수 있는 채소로 이루어진 녹색 큐브는 한번 맛을 보더니 두 번 다시 입도 대지 않았고 그 바람에 대단히 입맛을 버린 우주는 고소한 쌀죽도, 달달한 호박죽도 입에 넣지 않고 그저 분유만 찾았다. 요리도 미숙한 데다가 우주에게 이유식을 먹이기 위해 하루 종일 씨름하는 것이 힘들어 쉬지 않고 징징거리는 나를 위해 어느 날 J는 퇴근길에 즉석밥 용기 같은 그릇에 담긴 시판용 이유식을 몇 개 구해왔다. 두 종류의 재료가 섞인 한 그릇 형태의 죽이었는데, 그중 하나를 집어 어떤 것인지 살펴보니 ‘한우브로콜리 묽은 죽’이라고 쓰여있었다. 재료 조합만 봐도 도무지 우주가 입에 댈 것 같지가 않았지만 그날 제대로 먹은 것이 오직 분유뿐이다 보니 버리는 셈 치고 하나를 뜯어 냄비에 팔팔 끓여 식힌 후에 호호 불어서 입가에 가져가 보았다. 말도 못 하는 주제에 의사소통 하나는 확실해서 고개를 휙 돌리는 모양새에 숟가락을 사용해 입가에 슥슥 죽을 묻혀주었다. 먹기 싫은데 억지로 먹이려는 모양새가 못마땅한지 뿌앵 울며 혀로 입술을 한번 쓱 핥더니 잠시간의 침묵. 우주는 의심쩍은(이맘때 이런 감정선이 형성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표정으로 입을 아- 하고 벌렸다. 숟가락질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몇 번의 숟가락질이 지나자 그릇은 바닥을 보였다. 한 그릇을 뚝딱 다 먹다니! 감격에 겨운 내 눈앞에 입가에 약간의 이유식이 묻은 채 끄억- 하고 트림하는 우주가 보인다. 심지어 등을 두드려주지도 않았는데. 내가 만든 것과 맛이 다른가 싶어 그릇에 남은 걸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먹어 보았지만, 나에게는 둘 다 똑같이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J가 얄미롭고도 뿌듯한 표정으로 회사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여주었다. 이유식을 사 먹이는지, 해 먹이는지에 대해 문의하는 초보 아빠의 글이었는데 베스트 댓글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이유식은 사 먹이는 겁니다. 명심하세요. 이유식은 사서 드세요.’ 추천 수는 100개를 넘어갔고 그 댓글에 대한 찬양이 일색이었다. 작성자가 대댓글로 ‘감사합니다!’ 하고 외치자 시크하게 ‘끄덕’이라고 코멘트 남겨둔 것까지 완벽했다. 나 역시 박수를 짝짝 두 번 치고 바로 이유식 판매 사이트에 들어가 정기 배송을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