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잘 크고 있는 걸까요
초기 육아는 정말 산등성이의 연속이다. 하나의 산을 겨우 넘고 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기가 이유식을 잘 먹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다음으로 ‘발달의 산’을 마주하게 된다. 그즈음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자폐’, ‘ADHD’ 같은 반갑지 않은 키워드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집에서 딸랑이를 흔들어주거나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는 정도로는 잘 자라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어렴풋이 반응이 있는 것 같긴 했지만 나에게도 이런 육아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내 주변에 있는 아기는 우주 하나뿐이다 보니 잘 키우고 있는 건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저런 이유로 집 근처 백화점 문화센터를 등록하기로 했다. 분기마다 신청하는 시스템인데, 아기가 많은 지역이다 보니 경쟁률은 인기 가수 콘서트 예매 못지않았다. 육아 인프라가 잘 갖춰진 대신 감수해야 할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다음 분기 접수일을 확인하고 오픈 시간에 알람까지 맞췄다. 당일, 접수 시간보다 2분 먼저 맞춰놓은 알람이 요란하게 울리자마자 미리 준비해 두었던 웹사이트에 빠르게 접속했지만 보이는 화면은 몇십 번 대의 대기열 화면이었다. 느린 손을 탓하며 접수에 실패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기다렸다. 다행히 계정과 수강 과목을 미리 세팅해 두었던 덕분에 막바지 순번으로 겨우 원하는 강의에 등록할 수 있었다. 대학교 수강 신청도 이렇게까지는 힘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저출산 시대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주는 이제 겨우 바닥을 기며 어설픈 발음으로 ‘어마, 어엄마’ 하는 7개월 아기였다. 이런 시기에 뭔가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하루 종일 혼자 돌보는 일상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내 인내심의 문제일까?’ 싶기도 했는데,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글을 자주 보니 ‘지금 뭔가를 해줘야 하는 시기인 건 맞다’는 막연하고 회피성 짙은 확신만이 남았다.
7개월 아기를 위한 문화센터 수업은 보통 ‘음악놀이’나 ‘오감놀이’다. 내용은 비슷하다. 노래를 들으며 촉감 놀이 재료를 이것저것 만져보는 형식이다. 집에서는 해주기 어려운 재료들을 놀이용으로 제공하여 만지작 거리게 해 주며, 열 명 남짓한 아기들과 함께 동요에 맞춰 40분 정도 진행한다. 매 회차 주제에 맞는 의상과 촬영 소품도 빌려주는데, 팥을 이용한 날엔 팥죽 할머니 복장을 했다. 노란 치마에 빨간 저고리, 흰머리처럼 보이는 두건까지 갖춰 입혔다. 다른 아기들은 낯설지 않은지 팥을 덥석 집어 들었고 엄마들은 바닥에 뒹구는 팥 알이 자신의 아기 입에 들어가는 걸 막아내느라 정신없었다. 그런데 우주는 꼬박 내 무릎에 앉아 잠시라도 내려놓을라치면 악을 쓰며 울었다. 결국 놀이 시간 내내 내 무릎에 앉혀 놓고 다른 아기들이 즐기는 모습을 우두커니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날이 두세 번 반복되자 마음 한편에서 어렴풋한 불안이 올라왔다. ‘혹시 우주가 느린 건 아닐까?’, ‘지나치게 내성적인 건가?’ ‘아니면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들. 돌이켜보면 이제 겨우 7~8개월밖에 안 된 아기에게는 너무 섣부른 판단이기는 했다. 어느 날은 편백을 주제로 한 4회 차 수업이었다. 우주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발밑의 편백을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홱 돌려 내 무릎에 앉아있었다. 선생님은 율동을 하고, 엄마들은 박수를 치고, 아기들은 편백과 나무 악기를 입에 넣고. 그야말로 아기판 클럽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 소란 속에서도 우주는 조용히 내 무릎에 앉아 딸랑이만을 손에 쥐고 있었다. 문득 유튜브에서 본 ‘내 아이, 혹시 자폐 스펙트럼일까요?’라는 영상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우주가 딸랑이를 몇 번 흔들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맞은편에 앉은 아기 엄마를 한참 바라보더니, 내 무릎에서 내려와 다른 아기들 사이를 열심히 기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목표 지점에 도달하자 그 아기의 장난감을 휙 뺏어 들고는 그 아기 엄마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나는 순간 얼어붙었고 그 아기 엄마는 처음엔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우주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나는 그때서야 처음으로 다른 엄마들의 표정이나 생김새를 제대로 살펴보았다. 한 달 동안 같은 공간, 같은 시간 내내 같이 수업을 들었는데도 말이다. 우주는 낯선 환경에서 조심스러운 아이였다. 4회 차 동안 내내 다른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후로는 다른 아기의 장난감을 뺏기도 하고, 엄마들 앞에서 춤을 추거나, 아기들을 만져보며 엄마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저 우주의 타고난 성향이었다. 나는 문화센터에서 활동하는 내내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일반적인 아기의 반응, 예컨대 장난감을 만지고 소리를 지르며 입에 넣는 모습만을 찾으면서 정작 우주가 어떤 아기인지는 보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성은 내가 부족했던 것 아닐까. 시선을 돌려보니 아기들도 엄마들도 모두 달랐다. 겁 없이 모든 것을 만지는 아이, 엄마가 있는지 계속 확인하는 아이, 다른 아기 장난감에 더 관심을 가지는 아이. 생김새만큼이나 성향도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그 아기의 엄마들은 더욱 각양각색이었다. 우주는 어느새 문화센터의 환경에 익숙해졌다. 딸랑이 장난감을 쥐어주면 음악에 맞춰 어깨춤을 추며 흔들기 바빴다. 제법 흥이 많은 아기였다. 다른 사람의 표정을 살피고 환경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에 ‘정상 발달’에 대한 걱정은 서서히 잊혔다.
우주는 돌잔치 때 돌잡이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악기를 들어 올렸다. 제발 악기만은 잡지 말아 달라는 내 소망을 그대로 산산조각 내버리며.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엄마의 욕심에 손에 들려있던 악기를 뺏어 몰래 등 뒤로 숨기고는 다른 것(돈, 판사봉, 실)을 잡을 수 있게 유도해 보았지만 우주는 악기를 돌려 달라며 목청을 높여 앙앙 울었다. 우리 집안에는 가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J는 아빠를 꼭 닮았다며 그저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었다. 결국 다시 악기를 손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우주의 돌사진이 남았다. 몇십 년 후에 홍대 골목 어디선가 꼽슬꼽슬한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히피 같은 옷차림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력이 없어 포기한 J의 락밴드 보컬의 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