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일’하고 있다고요
육아휴직 중이던 해의 장마는 유독 길었다. 무엇이든 잡고 서고,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가는 우주를 하루 종일 돌보며 집안일을 하다 보면 창밖에 내리던 비의 꿉꿉함이 집안 공기를 타고 내 마음속까지 스며들었다. 이유식을 먹이거나 다치지 않게 온종일 쫓아다니며 지켜보는 틈틈이 빨래를 하고 젖병과 식기소독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제법 손에 익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자꾸 작아지고 주눅 드는 마음은 나아질 길이 없었다. 아기를 낳기 전에 화장을 어떻게 했고, 즐겨하던 운동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일을 할 때 주변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등등 우주를 낳기 전의 생활들이 점점 멀게만 느껴졌다. 이제까지 꾸준히 이어져 오던 시간들이었는데 유독 우주를 낳은 후부터는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밤에 우주를 재우고 J와 둘이 맥주를 한잔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너무 답답해’라고 털어놓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J는 네 캔에 만이천 원짜리 수입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켜고는 잠시간 대답 없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무것도 안 하는데? 엄청 많은 일들을 하잖아’ 평소 따듯한 J의 성정을 비춰보았을 때 위로를 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나 싶었다. 단순히 듣기 좋은 말로 보듬어지기에는 골이 제법 깊었던 터였다. ‘제대로 된 일 말이야.’ 맥주를 한 모금 꿀꺽 삼켰다. ‘돈도 벌고 실력이 늘어 주변에 도움이 되는 그런 일들.’ 빨개지는 얼굴이 맥주 때문인지 속상함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J는 말없이 맥주 캔을 손끝으로 굴리다가 ‘아기를 키우는 것이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 몇십 배는 더 힘들어. 이미 충분히 많은 일을 하고 있어.’라고 대답했다.
단순히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기력하게 느껴진다고 여겼는데 며칠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분주하게 움직이는데도 그 모든 일이 ‘일’로 불리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매일 아침부터 J가 퇴근하는 늦은 저녁까지 우주를 돌보고 집안일을 했다. 우주가 뒤집고, 기고, 서고, 넘어지기까지 늘상 옆에서 쫓아다녔고 식탁 밑으로 흘린 이유식 쌀알을 닦고 무심히 터진 기저귀를 치우며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도 나조차 그건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누가 대신해주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하루였지만 그건 그냥 ‘엄마라서 하는 일’이었다. 누구도 내게 오늘 하루 ‘일’하느라 고생했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대부분 ‘하루종일 아기를 돌보느라 힘들겠네’,라고만 이야기를 하지. 지인들이 간간히 연락을 해서 ‘요즘 뭐 하고 지내?’ 하고 묻는 지극히 평범한 질문을 건네면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이렇게 답하곤 했다. ‘그냥 애기 보면서 지내.’ 그렇게 답변을 보내고 나면 어김없이 ‘그냥’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육아가 일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게 일인가 싶기도 했다. 돈을 벌어야 일인가? 실적이 쌓여야, 결과물이 보여야, 누가 평가를 해줘야 ‘일’이 되는 건가. 나는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깨어 있는 아이를 돌보며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모든 변수에 대응하고 있는데. 이게 일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란 말이지. 출퇴근도 없고 보고서도 없지만 분명히 무언가 일을 하고 있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일에는 명패도, 급여명세서도 없었다. 내가 만든 결과는 문서나 수치로 남지 않고 오직 우주의 몸과 마음에만 스며들어 있었다. 월급은 없지만 쉬는 날도 없고 성과는 보이지 않지만 어찌 하루를 견디고 나면 우주가 어느새 성큼 자라 있었다. 오늘의 일을 누구도 확인하지 않지만 그 결과는 내일의 우주로 이어진다. 내가 바라는 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싶다기보다 이 시간 또한 내 삶의 한 자락으로 온전히 남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나는 지금 설계부터 결과까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나타날 인생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를 J와 함께 이끌고 있다.
마음을 다잡고도 여전히 몸은 힘들었던 그 긴 여름이 끝이 났다. 창문을 열면 습기 어린 비내음이 아니라 선선한 가을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유난히 높고 맑은 하늘빛이 고단했던 마음에 잠깐의 위로처럼 스며들었다. 도저히 집안에만 머무를 수가 없어서 유모차를 끌고 우주가 가진 옷 중에 가장 가을스러운 옷을 입혀 제법 널찍한 집 앞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그간 비가 오거나 너무 더워 데리고 나가기가 어려우니 백화점에 오가거나 아니면 집에만 있어 몰랐는데 어느새 나뭇잎마다 알록달록 물이 들어 세상이 온통 화려했다. 날씨도 제법 선선해져 우주와 돌아다니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빨갛게 물이 든 공작단풍 하나를 주워 우주 손에 쥐어주니 좋아서 꺄- 하고 소리 내며 웃는다. 내가 ‘우주 좋아?’ 하고 물으니 어설프게 ‘조아-’하고 따라 하며 방긋 거린다. 작년 가을 이맘때만 해도 세상에 없던, 내 뱃속의 작은 존재였던 우주는 지금 내가 준 단풍을 보며 세상에 우뚝 서 있다. 정확히는 유모차에 앉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