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사회생활
나는 원래 스몰토크를 그다지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평생 함께 할 동지를 만들 수 있다는 산후조리원과 문화센터에서 조차도 커뮤니티에 소속되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도는 모습을 보면 왜인지 이제는 이해가 될 것이다. 만 2세 반인 잎새반에 진급한 우주는 몸도 마음도 훌쩍 커서 정말 큰 아이 같았다. 그와 비례해 말도 엄청나게 늘었다. 아이들이 다 그렇다고 하지만 유독 말이 많은 우주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스럼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붙였다. 특히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속으로 ‘우주야 제발 다른 사람들한테 말 좀 걸지 마…’라고 기도할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하고 말을 꺼낸 우주는 만약 상대방이 본인과 마찬가지로 상냥하게 인사를 해주면 폭주 기관차 마냥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은 왜 빨간 옷을 입었는지, 아침에 빵을 바닥에 흘려서 엄마한테 혼이 났다던지 하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속사포처럼 흘러나온다. 나는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빨리 내가 가야 할 층에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다정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사교성 좋은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 우주와의 시너지는 극대화가 된다. 대게 그런 할머니들의 수다는 결국 나에게 향하게 되기 때문에 스몰토크를 잘하지 못하는 나는 그런 상황이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주를 이뻐해 주는 그 마음이 고맙기에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나누고 우주 뒤통수를 꾸욱 눌러 ‘자, 이제 인사해야지. 안녕히 가세요~’ 하고 마무리를 한다. 내게 팔을 잡혀 끌려서 내려가는 순간까지도 우주는 수다를 떤다. ‘우주 집에는 고양이가 있는데 우주만 보면 하악 해요.’
우주의 넘치는 에너지는 이제 집에서 책을 보여주거나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그네를 태워주는 것으로는 해소가 안 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동네 깔끔한 키즈카페를 검색해서 몇 번 데리고 갔는데 친구를 좋아하는 우주는 네댓 명 몰려온 다른 아이들 그룹에 끼어 같이 놀고 싶어서 부지런히 그 뒤를 쫓아다녔다. 대부분 우주 또래는 없었고 여섯 살은 돼 보이는 큰 아이들 그룹이 많았다. 그 정도 나이의 아이들은 우주를 데리고 놀면 재미가 없으니 따라다니는 우주를 모른 체하며 자기들끼리 도망 다녔다. 잠깐 우주를 데리고 놀아주는 언니들도 있었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시무룩했다가 다른 그룹을 쫓아가고, 거기서도 외면받으면 기죽지 않고 또 다른 친구를 찾아 나서는 우주의 모습을 보며 못내 측은함이 밀려왔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지만 우주를 위해 둘째를 낳아야 하나 싶다가도, 또 육아휴직을 갈 생각이 끔찍하여 고개를 휘휘 저었다. 요새는 대부분 외동이 많다 보니 잎새반 친구들도 형제가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새싹반에서 12명 모두가 잎새반으로 진급했는데, 새싹반일 때는 딱히 아는 척하지 않았던 엄마들이 하원할 때 하나 둘 모여 서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거기서도 딱히 말을 붙이지는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우주의 엄마라는 것을 알면 눈을 반짝이며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 우주는 이미 잎새반만이 아니라 동생반인 새싹반, 형님반인 꽃잎반에서도 이름을 부를 정도로 아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자기 아이와 스스럼없이 잘 노는 친구들이 더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보니 하원할 때 곧장 집에 안 가고 누구든지 어울려 노는 우주는 제법 유명인사였다. 특히 내가 자기한테 했던 말들을 친구들한테도 따라 하는 일이 많았는데 ‘너무 귀여워~’, ‘우주랑 손잡고 갈래?’ 등의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말이다 보니 어린이집 엄마들은 자기 아이와 우주를 같이 놀게 해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더 웃긴 건 우주는 이런 말을 하며 다른 엄마들의 표정을 살핀다) 잎새반에 진급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사내 메신저를 통해 처음 보는 이름이 말을 걸어왔다. ‘우주 어머니시죠? 저 누구 엄마예요. 혹시 단톡방 만들어서 주말에 시간 되는 분들 모여서 같이 키즈카페 가실래요?’ 나에게는 그토록 어려웠던 단톡방으로의 초대가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측은해야 할 것은 우주가 아니라 나였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