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사회 입문기(1)

내 아이의 사회생활

by 우주

길고도 길었던 육아 휴직이 드디어 끝이 났다. 24년 3월, 나의 복직과 함께 우주는 내가 다니는 회사와 같은 건물 1층에 위치한 회사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꼬박 15개월을 단 둘이 집에서 뒹굴거리느라 친구들을 제대로 사귀어본 적이 없었던 우주는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첫날부터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여러 친구들 사이에서 잘 적응했다. 처음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 약 2주간에 걸쳐 부모와 분리되어 체류 시간을 조금씩 늘리는 적응 기간이 있는데, 우주는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기만 하면 금세 빠이빠이 인사를 하고 아침 간식을 먹겠다고 선생님을 따라 들어갔다. 옆에서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고불고하는 같은 반 친구를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쓱 한번 바라보고 말이다. 그 사실이 내심 서운하기도 했지만 등원시킨 후 회사 카페에 잠시 앉아 여유 있게 커피 한 모금을 마시는 순간 그런 감정 따위는 물에 탄 솜사탕처럼 녹아내렸다. 12월 생이다 보니 만 1세 반인 새싹반에서는 막내였고 생일이 가장 빠른 아이는 1월생이라 거진 한 살 차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같은 해에 태어났어도 만 3살까지는 개월 수로 이야기하는 이유가 바로 단 몇 달 차이라도 신체 발달에서 제법 간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새싹반 1월생 친구는 부쩍 말도 잘하고 똑 부러져 훨씬 큰 아이 같았다. 일반식을 시작한 지도 몇 달 지나지 않은 우주는 여태껏 혼자 숟가락질도 못하고 걸음걸이도 야무지지 못했기에 형님 같은 친구들 사이에서 부대끼지는 않을까 적잖이 신경이 쓰였다.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가 되면 하루 종일 기다리던 어린이집 알림장, ‘키즈노트’에 알람이 뜬다. 오늘 하루 우주가 어떤 생활을 했는지 선생님들이 사진과 함께 다정한 글로 작성하여 공유해 주는데 사진 속에 가장 작은 우주가 친구들 사이에 끼여 놀고 있는 사진을 보면 기특하기도 하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어설픈 숟가락질로 입안 가득 어렵게 밥을 먹고 있는 사진, 지독한 깔끔쟁이가 친구들을 따라 모래를 만지며 싫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 비눗방울을 만지기 위해 폴짝거리며 느린 발로 쫓아가는 사진들을 보면 우주가 나와는 다른 고유한 세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이런 느낌들은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고 무뎌지는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그럼에도 나 역시 복직 후 새로운 일들을 배우고 진행하는 것에 온 신경을 기울이며 다시 사회생활에 익숙해졌다.


하루는 아침에 등원을 시켜주고 있었는데, 같은 반 친구가 도도도 뛰어 오더니 우주 얼굴을 찰싹 때리는 것이 아닌가. 잠시 머뭇거리던 우주는 엄청 큰소리로 소리를 빽 질렀고 나는 깜짝 놀라 우주를 번쩍 안아 들었다. 뒤이어 따라온 친구 엄마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는 모습에 뭐라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던 나는 속상한 마음을 감추고 ‘괜찮아요, 아기들은 그럴 수 있죠.’라고 태연한 척하며 우주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냈다. 교실에 들어갈 때까지도 우주는 분해서 그런지 악을 쓰며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부렸다. 마침 그날이 어린이집 선생님과 상담이 잡혀있는 날이라 애써 잊어버리고 오전 일을 처리했다. 면담은 오후 1시 반. 미리 사다 놓은 주먹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초조하게 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약속 시간이 되자마자 서둘러 어린이집으로 내려갔더니 새싹반 담임 선생님이 벌써 문 앞에 나와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을 따라 들어간 어린이집은 낮잠 시간이라 그런지 고요했다. 내게는 약간 작지만 귀여운 테이블에 앉아 상담을 위해 내가 사전에 작성했던 질문지를 천천히 살펴보며 우주 발달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직 만 1세 반이라 성향이 두드러지는 시기는 아니어서 일반적으로 개월 수에 맞게 잘 성장하고 있는지 정도만 물어보다가 아침에 있었던 일이 못내 신경 쓰여서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우주가 생일이 제일 늦고 반에서 제일 작아서요. 혹시 다른 아이들에게 치이거나 맞는 일도 있을까요? 사실 아침에 그런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그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깜짝 놀라는 기색으로 ‘어쩐지, 오늘 우주가 오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점심때 나온 후식이 맛있었는지 그때서야 기분이 조금 나아지더라고요.’ 라며 이제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들려준 이야기. ‘이맘때 아이들은 아직 소통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때때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과격한 행동이 나오기도 해요. 어린이집에서 최대한 그런 부분은 말로 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교육을 시키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서로 때리거나 맞기도 하는데… 오늘은 우주가 맞았다니 조금 놀랍네요.’라고 하며 말끝을 흐리는 선생님은 무언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왠지 선생님의 표정과 맥락에서 그 뒷말이 무엇인지 나도 알 것 같아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재빨리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아마 선생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였겠지. ‘굳이 말하자면 우주도 때리는 쪽이에요.’ 어느 쪽이든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 입장에서 심란하기는 매한가지이다. 부디 때리는 쪽도, 맞는 쪽도 아닌 그저 모든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노는 교과서적인 상황만 마주하면 좋겠는데. 노자의 중용이란 어디에든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이 또 한 번 느껴진다.


그토록 길게 느껴졌던 육아 휴직의 1년과는 달리, 어린이집에 보낸 후의 1년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나는 잠깐 고개를 들면 우주가 어버이날이라고 머리에 카네이션 꽃 머리띠를 하고 집에 왔고, 또 잠깐 시간이 흘렀나 싶으면 추석이니 우주에게 한복을 입혀 보내라는 연락을 받았다. 빨간 산타 망토를 두르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며 어린이집에 갈 즈음엔 말문이 트여 쉴 새 없이 참새처럼 조잘거렸다. 우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참 많았는데(특히 선생님들이나 ‘이쁜’ 언니들) 다른 반 선생님들에게 까지 쫓아가서 넉살 좋게 말을 걸고는 했다. 엄마는 그런 우주의 모습을 보며 ‘우리 집안에 저런 사교적인 사람은 없었는데.’ 하며 유전의 신비를 만끽했다. 다시 새로운 3월이 돌아오기 바로 전 주에 우주는 새싹반 생활을 마무리했다. ‘새싹반 수료증’과 함께 아이들의 한 해 보여줬던 모습이나 성향을 고려해 톡톡 튀는 귀여운 문구가 담긴 상장을 나눠주는데, 그날 우주가 받아온 것은 바로 ‘친구야 사랑해’ 상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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