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은 머리카락과 함께 흐르고
생후 6~70일 정도에 이르자, 우주는 제법 통잠이라는 것을 자기 시작했다. 비록 길어봐야 5시간 정도였지만 그 정도라도 중간에 깨지 않고 같이 푹 자니 가뭄에 단 비와 같았다.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밤새 잠을 설치며 제대로 된 숙면을 방해받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왜 100일의 기적이라고 하는지 뼈저리게 느끼며 각오했던 100일 보다 빠르게 밤잠을 시작한 것에 깊이 감사했으나. 그렇게 점차 나아지나 싶었더니, 하필 J에게 회사일이 끊임없이 폭발적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그 간 낮에는 회사일을 하랴 밤에는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육아를 하랴 고생했던 J의 육아 비중을 눈물을 머금고 줄여줄 수밖에 없었다. 60일이 지나자 정부 지원 3주에 개인 사비로 1주일을 더해 총 4주간 함께했던 산후도우미도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나의 본격적인 ‘진짜’ 육아가 시작됐다. 정신머리는 20대에 머물러있는데 육체는 비루한 30대 후반의 약골인 상태. 인생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들은 말처럼 아기는 자면서도 자지 않는 존재였다. 5분 잘 때도 있고, 40분을 내리 잘 때도 있었지만 그 어떤 패턴도 읽히지 않았다. 아기가 잘 때 나도 틈을 타 잠을 청해야 하는데 그 타이밍이 도무지 맞춰지지가 않았다. 우주의 발달을 염려하면서도 하루 종일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 몇 마디 말을 건네는 일조차 힘에 부쳤다. 한 평 남짓한 베이비룸 안에서 우주만 바라보다 보면 자존감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답답함과 우울감이 뒤섞였다. 냉장고에서 간단하게 반찬을 꺼내 끼니를 챙기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굶다시피 하며 아기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져 있었다. 날씨가 추우니 아기를 데리고 산책을 하기에는 어려웠고 겨울밤은 유난히도 빨리 찾아왔다. 하루는 길게 느껴졌지만 일주일은 금세 흘러갔다. 내가 지쳐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J는 아무리 일이 많아도 저녁 8시 전에는 집에 도착하려 노력했다. 그대로 집으로 들고 온 회사일을 13인치 노트북으로 틈틈이 처리하며 내 저녁을 챙겨주고 우주를 돌보았다. 하루 종일 쌓인 분유병을 삶아 소독하면서 J가 회사에서 온 업무 전화를 받는 소리를 듣자 이상하게 그런 일반적인 대화가 너무 그리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그즈음부터 머리를 감으면 과장을 조금 보태 어린아이 가발은 하나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머리카락이 빠졌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해그리드만큼이나 머리숱이 많다고 자부했었던 것이 무색하게 정수리가 휑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너무 자주 감아서 그런가 싶어 집순이의 특권인 2~3일에 한 번만 감기도 시전 해보았지만 빠지는 양은 날짜와 비례해 늘어났다. 다시 자라지 않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동네 미용실에 방문하여 단발로 머리를 바짝 잘라달라고 했다. 미용사가 머리를 이리저리 넘기며 유심히 살펴보더니 ‘아기 낳은 지 얼마 안 되셨군요?’ 하고 물어왔다. 그 말에 숨이 턱 막히며 내가 지금 정상이 아니구나, 이 요상한 감정놀음이 바로 산후우울증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저녁은 시계가 8시를 넘어 9시 30분을 가리키는데도 J가 오지 않았다. J가 퇴근할 때까지만 버티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힘들어도 잘 버텼는데 그날따라 도무지 연락도 되지 않고 언제 오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10시가 넘어서야 헐레벌떡 집에 온 J는 연신 미안하다고 하며 갑자기 시스템 장애가 발생해서 집에 오는 동안 차 안에서 내내 업무 전화를 받느라 연락도 못했다고 했다. 같은 IT 업종에 근무하고 있기에 평상시엔 당연히 이해가 갔을 법한 상황인데도, 머리론 알면서 마음에서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버럭 화를 내며 쾅 소리와 함께 안방 문을 세게 닫았다. 문 밖으로 우주의 울음소리가 새어 들어온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도 우주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화를 낼 상황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불같이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계속 목구멍까지 넘실넘실 넘어왔다. 사회에서 나만 고립되어 제 역할을 못하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도태되고 낙오된 것 같았다. 다시는 사회에 발을 디딜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런 종류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너 오늘날 잡았다!’, 하는 기세로 폭발했다. 한 시간가량을 그렇게 목놓아 울자 밖에서 간신히 우주를 재운 J가 조용히 안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꼼짝도 하지 않는 나를 말없이 몇 번 토닥토닥하고 잠옷을 챙겨 갈아입고는 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나중에 한참 지난 후에야 J가 이때 이야기 하기를, 자신도 힘들고 화가 많이 났었지만 화내면 안 될 것 같아 꾹 참았다고 하며 다음부터 이런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연락해서 기다리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전했다. 나도 예전에는 제법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실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계속 깊은 바닥으로 잡아끌어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