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실 엄마
아기가 태어난 날을 기점으로 나에게는 새로운 호칭이 생겼다. 바로 ‘콩실 엄마’. 간호사들은 아기의 태명을 붙여 상냥한 목소리로 나를 콩실이 엄마- 하고 불렀다. 병원같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어찌 보면 삭막한 공간에서 불리는 호칭치 고는 참으로 귀엽다. 대학병원이 아닌 분만 전문 병원이다 보니 가질 수 있는 귀여움인가 싶기도 했다. 대학병원에서는 출산한 즉시 병실에서 엄마가 아기를 계속 데리고 있는다고 하던데, 내가 있었던 산부인과 전문병원은 신생아실에서 내내 아기를 돌봐주었다. 아홉 달을 꼬박 품고 있다가 힘겹게 내보내긴 했지만 아직도 누군가의 엄마라는 급박하게 마주한 환경이 심히 부담스럽고 낯설었던 터라 오후에 슬쩍 가서 얼굴을 보고 오는 것으로도 만족스러웠다. 2일 차가 되면 병원에서 엄마들을 옹기종기 모아놓고 모유 수유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따뜻한 주황빛 형광등이 켜져 있는 자그마한 방 안에서 쿠션을 껴안고 기다리고 있으면 하얀 천에 쏙쏙 쌓인 아기들을 간호사가 한 명씩 조심스레 건네준다. 아기는 품에 안는 것만으로도 어설프고 버거웠다. 목도 가누지 못해 금방이라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것 같았다. 안고 있는 내내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간호사가 알려준 대로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가슴에 아기 얼굴을 묻어보았지만 모유는 당연히 나오지 않았고, 아기는 생소한 영양 획득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바로 빼액하고 울어버렸다. 덩달아 수유가 부끄럽고 어려웠던 내 눈에도 물기가 돌았다.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으면 2박 3일 만에 퇴원하게 된다. 당일 아침에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짐을 싸고 아기를 데리러 오라는 호출을 기다렸다. 그 사이 신생아실에서는 퇴원 전 간단한 신생아 기본 검사들을 해주는데 대표적으로 청력 검사가 그 안에 포함된다. 병실 내 비치된 전화기를 통해 호출이 오자 J와 함께 분만의 여파가 남아 시원치 않은 걸음걸이로 신생아실 앞에 도착했다. 벨을 딩동- 누르고 아기를 데리러 왔다고 하니, 나이 지긋한 간호사가 얼굴만 쏙 내밀고 ‘잠시만요. 아직 검사가 덜 끝났어요.’ 하고 들어간다. 신생아실 복도에 알록달록 붙여놓은 그림들과 손 편지를 구경하며 시간을 때운 지 대략 20여분 정도가 지났을까. 다른 엄마들은 모두 기쁜 표정으로 아기를 찾아가는데, 나의 아기만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언제 나오나 벨을 눌러 물어볼까 하는 찰나에 기다리는 아기는 나오지 않고 조금 전 얼굴만 보였던 간호사가 팔자 눈썹을 그리며 문을 열고 나왔다. ‘애기엄마 잠시만 이리로 와 보실까요.’ 걱정이 와락 달려든다. 무슨 일이지 싶어 간호사를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가니 검사가 막 끝났는지 아기를 하얀 천으로 다시 돌돌 말고 있었다. 곤히 잠든 아기를 살포시 내 품에 안겨주고 옆에 있던 아기 수첩을 집어 J에게 수첩의 맨 앞장을 펼쳐 보였다. 간호사의 손가락 끝에 쓰여있는 글자는 ‘리퍼(재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에게 간호사가 말했다. “아기 왼쪽 귀 청력 검사를 나중에 다시 받으셔야 해요.’
산후조리원으로 향하는 차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삽시간에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말 없는 나를 J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다독였다. 아직 귓속에 양수가 빠지지 않아 그런 것이라고, 이런 경우는 흔하니 재검을 받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기분이 쉬이 풀리지 않았다. 2.2킬로그램의 작은 몸을 너무 서둘러 내보낸 탓일까. 내가 며칠 더 품고 있을 것을. 바쁘게 손가락을 놀려 휴대폰으로 검색해보니 아무 문제없었다는 경험담이 대다수였지만, 내 관심은 모두 몇 건 안 되는 청력 장애를 가진 아기들의 이야기였다. 엄마나 아빠의 유전적 영향일 확률이 높다더라, 대부분의 청력 장애는 모두 유전이더라 하는 내용들에 매몰되어 아기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와중에 차가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입구에 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미리 전화를 해둔 덕에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아기를 마중 나와있던 거였다. ‘어서 와요. 고생했어요. 아기가 무척 예뻐요.’ 방긋 웃으며 건네는 그 따뜻한 목소리가 또 주책없는 눈물샘을 자극한다. 애써 눈물을 꿀떡 삼키며 금남의 구역, 엄마들의 천국이라 일컬어지는 산후조리원에 발을 들였다. 배정받은 방에 짐을 풀고 신생아실로 가보니 도토리 같은 조그마한 아기들이 나란히 줄지어 배치된 아기침대에 누워있었다. 그 짧은 시간 본 얼굴이지만 나도 엄마라고, 내 뱃속에서 나온 아기 얼굴에만 동그랗게 후광이 떠있었다. ‘콩실이’라는 명패가 눈에 잘 보이게 붙어있다. 그날 이후 한동안 내 이름은 저 멀리 어디론가 사라지고 ‘콩실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