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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신의 이유 Nov 10. 2022

워킹맘 일기

미용실 힐링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밑부분은 갈색 윗부분은 검은색인 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검은 머리가 기세 좋게 전진 또 전진하며 머리카락 끝까지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갈 때쯤 미용실을 찾았다.


오늘은 특별한 날 중에 더 특별한 날.


임신했을 때는 임신을 해서

출산하고는 정신이 없어서

아이를 키우면서는 육아를 하느라


다니던 미용실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설 때까지


그렇게, 아주 오래 걸렸다.


화장도, 꾸미기도 귀찮아하는 나는

그럭저럭 몸단장을 하고 다녔다.


대학시절에도 운동화 하나에 긴 머리는 질끈 묶고 특별한 날에만 머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직장인이 된 후 밝은 갈색으로 염색을 한 적이 있는데 보기에는 참 좋았지만 관리가 어려웠다. 틈만 나면 뿌리 염색을 해야 고운 빛이 유지되고 나는 그 시기를 번번이 넘겨서야 미용실을 찾았다.


역시 사람은 생긴 대로 사는 게 최고야 하며 다음엔 검은색으로 다 염색한 뒤 절대 염색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미용실을 나선 것이 마지막 기억. 오랜만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미용실 방문.


밝은 조명 커다란 거울 바쁜 매장 안

염색약과 파마약의 냄새가 코끝에 스치고

내 몫으로 작은 간식 봉투가 놓인다.


“음료는 뭘로 하시겠어요.?”

오랜만에 듣는 질문


누군가가 나의 의사를 묻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어서 나는 이 질문에 빠른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아이스티 주세요.” 속삭이듯 말하곤

이내 어색한 공기에 눌려 발만 왔다 갔다.


복직 전에 무거운 머리카락만 좀 정돈하자 들린 곳인데 그렇게 귀찮아했던 염색이 갑자기 하고 싶었다.


노랗고 빠알간 낙엽의 쨍한 불길이 번져가는 이 가을 나는 집에서만 만끽하고 있으니 머리카락으로라도 가을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


그저, 가을을 닮고 싶었다.


머리카락 한올 한올 색을 입히고 샴푸.

눈을 가리는 작은 천이 덮이고

코를 킁킁거리게 하는 달콤한 샴푸 냄새가 난다.


손에는 핸드크림

머리에는 적당한 세기의 두피 마사지

거기에 물소리까지 더해지니

왜 여자들이 힐링을 위해 미용실을 찾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잘라

상쾌하고 가벼워진 머리에


가위 몇 번 헤어드라이기 몇 번,

고데기가 몇 번 스치면


새까맣고 무거운 머리카락은 어느새 사라지고

귀밑으로 유려한 곡선의 머리카락이 춤을 춘다.


이런 순간을 놓칠 수 없어 찍어보는 사진.

누가 뭐래도 오늘 나는, 가을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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