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재독했던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에는 내 인생에 없지만 가장 갖고 싶은 존재가 나온다. 바로 든든한 이모다. 우리 엄마는 1남 1녀 중 첫째 딸, 우리 아빠는 3남 중 둘째 아들이다. 이모와 고모, 하물며 사촌 언니조차 없이 자란 나는 혼자서도 잘 크면서도, 남몰래 기댈 수 있는 여자 선배를 바래왔다.
작품 속 이모는 말도 수려하게 한다. 어린 담이 공장에 다니는 이모에게 무엇을 만드냐고 꼬치꼬치 캐물을 때면 이모는 이렇게 답한다.
소리를 만들어.
스피커를 만든다는 뜻이었다.
예쁨을 만들어.
손거울이다.
이 아름다운 비유를 보고 나의 직업을 문학적으로 설명하고 싶다는 욕구가 느닷없이 타올랐다. 세상에 아름다운 물감 한 방울 떨어뜨릴 수 있는 직업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급히 메모장을 실행해 내가 하는 일을 떠올렸다.
나는 자부심을 만든다.
죄책감을 덜어내는 그릇을 만든다.
이룰 수 없는 꿈을 만든다.
이 글에 당장 내가 다니는 회사와 직업을 밝히진 않을 것이다. 아마 퇴사하기 전까지는 수수께끼로 남겨 놓을 것이다. 이 글을 보는 이가 비유만 보고 어떤 직업을 떠올릴지 궁금하기도 하다.
정답은... 수 개월, 혹은 수 년 뒤에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