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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과 예술가 1 - 발견

스스로 키워온 인정욕구에 대한 깨달음과 그 안에 있는 나의 발견 

다시 찾아온 무기력에 대한 비상대응체계 중 하나로 심리상담을 다시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이어진 상담은 많은 변화와 함께 진행됐다. 그 변화는 일상에 있어서의 변화와 내면의 변화를 모두 포함했다. 상담 초기는 주로 지난 1년간 있었던 일을 다시 풀어내는 과정이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증상이 발현됐고, 그 당시 상담을 통해 어떤 도움을 받았고, 어떤 약을 먹고 있으며, 어떤 회복 곡선을 그리다가, 어떤 시점에 어떻게 다시 재발했는지. 


자연스럽게 상담은 그 이전 상황에 대한 설명과 그 과정에서의 감정에 대한 주제로 이어졌고, 그렇게 점점 그 이전, 그 이전을 향해 결국 어린 시절에 도달했다. 이 여정은 아주 천천히 진행되어, 음식을 아주 오래 곱씹으면 미처 못 느끼던 맛을 느낄 수 있듯이, 저 깊숙이 묻혀있던 기억을 꺼내어 그때의 감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첫 상담은 눈물을 왈칵 쏟는 일이 잦았던 반면, 이번 상담은 차분한 흐름 속에서 차근차근 진행됐다. 


어느 날은 어린 시절 내가 얼마나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 활발한 아이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생님이 무언가 질문을 했는데 나는 알고 다른 아이들은 모를 것 같은 내용인 경우라면 팔이 늘어날 만큼 쭉 뻗어 손을 들고서 동공이 잔뜩 확장된 눈으로 나를 지목해 주길 애타게 바라며 선생님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면서도 '선생님 저요! 저요!'라고 소리치지는 않았다. 지목되기를 기다렸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일화는 나의 유년시절을 너무나 잘 설명하고 있구나. 


아니 어쩌면 유년시절을 넘어 나라는 사람을 관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외향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요즘 말로 '극 E' 또는 '대문자 E'라고 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고 활발하게 활동하진 않는다. 모임이나 회의가 있다면 되도록 말을 아끼고 상황을 지켜본다. 그러다가 내 의견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부터 조금씩 참여한다. 그렇게 그 모임이나 회의에서 자연스럽게 점유율을 높여나가다가 결국 다수의 지지를 받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 말하자면 관심을 받고 싶은 욕구, 인정욕구를 유예하는 패턴이다. 


이 이야기를 한 날, 상담을 마치고 상담실을 나서는 데 상담가 선생님께서 한마디를 남기셨다. 


"본인 생각보다 아주 강한 사람인 것 같아요."


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문을 나섰다. 



인정욕구를 유예하는 패턴에 대한 확인은 이런 질문을 남겼다. 왜 유예할까. 왜 '선생님 저요!'라고 소리치지 않았을까.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질문이 조금 바뀌었다. 왜 유예하게 '됐을까'.


더 어린 시절, 그러니까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인 유아 시절의 가느다란 기억의 끈을 따라가 보면 나는 인정욕구를 유예하지 않았다. 쳐다봐주지 않으면 떼를 부렸고, 기대했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울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울고 떼쓰던 기억이 태반이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2~3학년 때 즈음이었던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고 어리석고 폐를 끼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게 더 어른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실제로도 사회적으로 더 어른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그날 이후로 나는 거의 40년 가까이, 인정욕구를 유예하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쌓아왔다. 


그것은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었던 것 같다. 울고 떼를 부려봤자 별다른 효과는 없고, 오히려 인정욕구를 유예하면 그 어른스러움에 대한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결국 내가 실제로 뛰어나다면 주머니에 든 송곳처럼 언젠가 드러날 테니 참고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전략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주머니가 너무 두꺼워 끝내 송곳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 혹은 나라는 송곳의 뾰족함이 부족해 주머니를 뚫어내지 못했을 때, 때로는 아무도 송곳은커녕 주머니를 쳐다보지 않았을 때, 궁극적으로는 결국 송곳이 드러나긴 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을 때 찾아오는 좌절감의 무게는 오히려 더 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인정욕구를 유예하는 그 시간 동안 늘 불안했던 것이다.  


나는 차분하게 때를 기다린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 내면에서 일어났던 일은 마치 시상식에서 수상자를 발표하기 직전에 노련한 사회자가 잔뜩 긴장감을 고조하는 것과 같은 팽팽한 불안이었다. 나의 어른스러움은, 사실은 입을 꾹 닫은 채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어린아이를 품고 있었다. 


이런 패턴이 40년 가까이 강화되면서 파생된 효과는, 인정욕구가 더 강해졌다는 점이다. 그 팽팽한 불안의 시간을 지나 결국 인정을 받아냈을 때의 성취감이 너무 컸던 나머지, 반대로 그 결과가 부끄러운 실패나 차가운 외면으로 이어졌을 때의 좌절감이 너무 컸던 나머지, 인정에 대한 기대와 갈구는 점점 커져갔다. 흔히 '관종'이라 불리는 캐릭터의 특성과는 정반대인, 아주 점잖은 인정중독인 셈이다. 


아주 조용하게, 하지만 그만큼 뜨겁게 남들의 인정을 갈구하던 시간은, 나 스스로가 나를 그렇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나는 남들의 인정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남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어울린다. 음악을 할 때는 인기에 연연했고, 사업을 할 때는 성과와 성취를 향해 몸을 던졌다. 나는 순수하게 작품에 몰입하는 것으로 환희를 느끼는 예술가가 아니다. 나는 예술을 동경하긴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반응과 인정을 더 중요시한다. 그건 마치, 물건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팔아 내고자 하는 상인에 가깝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나는 상인이다. 



아니야. 


어딘가 깊숙한 곳에서 이 결론을 거부했다. 분명 아주 자연스럽고 그럴싸한 인과였다. 상담을 통해 내가 살아온 세월을 다시 곱씹어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정돈된 흐름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나도 정확하고 수긍이 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내 안의 어딘가에서 그 결론을 거부하는 것 같은, 아주 깊은 불편감이 느껴졌다. 내가 놓친 부분이 있을까. 저 논리의 전개에서 어딘가에 오류가 있을까. 


결론부터 역순으로 점검하면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갔다. 나는 관심을 받기 위해 떼를 부리고 울어대던 어린아이였다. 쳐다봐주지 않으면 떼를 부렸고, 기대했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울었다. 


놓친 부분을 찾았다. 무엇을 봐주길 원했을까. 


때로는 노래, 때로는 웃긴 행동, 어려운 동작, 남들이 모르는 지식, 희한한 소리, 기발한 농담

그것들은 그저 천진난만한 한 아이가 드러내고 싶은 모든 것이었다.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그저 '나' 자신이었다. 




- 다음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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