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은 2023년 연말을 지나 2024년 연초, 그러니까 우울증이 발병한 지 1년이 조금 안 되는 시기였다. 이 연재를 시작하기 직전인 시기이기도 하다. 발병 후 나에게 일어난 일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전까지 마음 챙김이라는 것을 나름대로 시도했으나 결국 번아웃까지 오게 된 이유를 깨닫고, 마음과 몸은 하나라는 것에 대해 알아가고, 상담을 받고, 새로운 습관과 취미를 만들고, '나' 자신과의 인색했던 관계에 대해 깨닫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 개인적인 내용들은 연재 글로 남기지 않았지만, 상담 과정에서 그런 인색한 관계와 엄격한 기준이 만들어진 배경, 그것이 하필 그 시점에 갑작스러운 증상으로 이어진 과정에 대해 어느 정도 스스로 납득할만한 근거를 찾아갔다.
이 기간 동안 회사의 양해 덕분에 어느 정도 업무 부하를 조절해 가며 적응해갈 수 있었다. 해외 출장을 다녀오는 일도 있었고, 나름대로의 성과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체로는 시간이 갈수록 점진적으로 회복되는 상승 추세에 있었다. 그 추세 속에서 때때로 회복 속도가 붙었다는 희망에 차오르기도 했고, 반대로 다시 증상이 조금 악화되기도 했다. 상승 추세 속에서도 오르내림이 있는 곡선을 그리며, 악화되는 시기에는 퇴사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하다가, 다시 회복이 체감되는 시기에는 그런 생각을 잊고 현재에 집중하곤 했다. 그렇게 연말을 향해갔다.
연말에는 오래전부터 준비하던 이벤트가 있었다.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을 곧 졸업하고 다음 해에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는 가운데, 평소 아이들끼리도 부모들끼리고 친하게 지내던 어린이집 동기 세 가족이 함께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 각자 다른 초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보니 졸업 전에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여행지는 발리와 싱가폴이었다. 어린이집 방학인 12월 마지막 주를 활용해서 9박 10일에 달하는 꽤나 스케일이 큰 계획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어리다는 이유로, 조금 크고 나서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제대로 된 해외여행을 못 가본 지 꽤 오래됐다는 사정들이 있기도 하고, 1주일 이상의 휴가 일정을 연말에 확보하기 위해 그만큼 연중에 열심히 일을 했어야 하기 때문에 모두들 기대감이 컸다. 당연히 나의 기대감도 컸다. 우울증 증상의 측면에서든 업무적으로든 다소 힘겨운 시기에는 연말에 다 함께 떠나는 휴가에 대한 기대감으로 그 부담을 이겨냈다. 사실 발리와 싱가폴이라는 장소 자체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여행 그 자체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시간이 흘러 출국일이 다가왔고, 발리에 도착해서 숙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깨달았다. 발리라는 장소는 장소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어도 되는 곳이었다. 여행 중에 다른 일행들에게 들은 얘기에 따르면 발리는 특히 나와 같은 우울증 등의 정서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치유를 위해 찾는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나름대로 다양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해 봤지만 발리만의 유난히도 울창한 느낌의 자연환경과 현지인들 특유의 편안한 문화에서 그 이유를 체감할 수 있었다.
한겨울에서 한여름으로 옮겨간 가운데 며칠간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물놀이를 하며 들판을 뛰어다니며 추억을 쌓았다. 아이들이 잘 놀아주니 부모들도 여유롭게 여행을 즐겼다. 낙원이 따로 없는 시간이었다. 발리에서의 시간이 워낙 만족스러웠다 보니,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고 대도시인 싱가폴에서 여행의 흥이 줄어들까 하는 우려가 조금은 있었지만, 워낙 서로 친한 아이들과 부모들이다 보니 귀국하는 날까지 하루하루가 기대를 뛰어넘는 시간으로 가득 찼다.
내 입장에서는 평생 겪어본 적 없는 우울의 바다를 일 년 가까이 허우적거리다가, 완전히 반대쪽 끝에 있는 감정에 푹 빠진 9박 10일이었던 셈이다. 여행 일정 중에도 문득문득 약간의 증상은 있었지만,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과 어른들끼리의 깊은 대화로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다 보니 은근한 기대감이 생겼다. 오르내림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회복되고 있는 추세 속에서, 이번 여행을 기점으로 한결 회복에 가까워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 그런 기대감을 품고 귀국 후 첫날밤이자 새해의 첫 출근 전날 밤에 유독 깊은 잠에 들었다.
새해 첫 출근을 하는 날, 출근하지 못했다. 행정적으로 그날까지 휴가를 사용하는 것으로 휴가원을 제출하긴 했지만, 출근 시간이 조금 늦어지거나 조금 일찍 퇴근하더라도 사무실에 나갈 생각이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애써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냥 긴 여행과 비행시간으로 피로가 쌓인 탓이라고, 그날까지 휴가를 내어두었다 보니 굳이 무리해서 나갈 필요가 없어서였다고 자의적으로 원인을 규명했다.
그다음 날 아침에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실 소파에 담요를 덮고 누워 웅크린 채 오전을 보냈다. 서둘러 챙겨 먹은 약도 듣지 않았다. 발병 초기 증상과 대체로 비슷한 양상이었지만, 내가 느끼는 바는 조금 달랐다. 식은땀이 나거나 몸이 떨리거나 손발이 저릿하게 긴장이 되는 증상은 없었다. 그저, 전혀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지금 일어나서 출근해야 하는 수많은 이유들이 재판장에서 검사의 의견진술처럼 차례로 제시됐지만, 내 머릿속의 판사는 모든 항목을 하나하나 기각했다.
경험했던 바와 비슷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이 상황 속에서, 내 머릿속 한편에는 마치 작은 영사기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영상을 틀어놓은 듯 지난 10일간 여행지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그 곁에서 부모들이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재생됐다. 나는 그렇게, 일어나야 할 모든 이유를 기계적으로 기각하면서 그 작은 영사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에 시선을 빼앗긴 채 시간을 보냈다.
오후가 되고,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상황이 종료됐다. 나는 마치 원래 이 시각이 되면 출근할 계획이었다는 양 담요를 걷고 일어나 출근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에게 그간 일어난 일들에 대한 업데이트를 받고, 상사와 다른 부서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큰 문제없이 업무를 마치고 퇴근했다. 그 후 어떤 날은 아무 문제 없이 출근해서 근무를 하는가 하면, 그러다 어느 시점에는 갑자기 배터리가 소진된 전자기기처럼 작동을 멈추고 거실 소파에 몇 시간을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왜지?'
내 머릿속은 거대한 물음표로 가득 찼다. 이해할 수 없었다. 여행이 너무 좋았어서? 그렇다기에는 막상 출근을 하고 그간 못하던 저녁약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고객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반가움을 느끼고 신체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아무 문제 없이 나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수행했다. 새해 벽두라 다른 시기에 비해 업무량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일주일이 넘는 휴가로 인해 잔무가 누적되지도 않았고, 그 시기 동안 특별히 문제상황이 발생한 것도 아니었다.
신체적인 불안증상이나 공황증상은 전혀 없이, 예상할 수 없는 시점에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극단적인 무기력함만이 출현하는 이 상황은 도대체 왜 갑자기 닥쳐온 것이며 나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1년 가까이 해온 노력들과 치료 과정, 그 가운데 나름대로 윤곽을 잡아갔던 이 모든 것의 배경과 원인, 이 모든 것들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다시 원점이 됐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