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린갓 Oct 07. 2017

<자존감 수업>을 읽고

차를 몰던 중 가벼운 접촉사고가 난 여자가 남자 친구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사고가 났음을 알렸다. 그 소식을 들은 남자 친구는 보험사를 불러주고, 사고처리를 일사천리로 진행해주었다. 하지만 여자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남자 친구의 위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존감 수업>은 사고가 난 여자의 남자 친구처럼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만 하는 논문 같았다.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유형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과 실천방안만을 제시할 뿐,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나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어떠한 위로의 메시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 책을 읽고 자존감을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전부. 프롤로그에 작가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물론 정신의학과 의사로서 자존감이 떨어져 정신이 지친 환자들을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환자들이 직접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입장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병원에서의 문제고, 이것은 책이다. 책의 메시지가 정신의학과에서 벌어지는 표본 분류와 진료, 치료만의 메시지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은 휘몰아치는 부정적인 감정에 힘들어한다. 자존감 수업이라면 일단 상처받은 사람들의 감정을 먼저 어루만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하고, 그래야 이 책의 페이지를 읽고 넘기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더 잘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자존감이란, 쉽게 말해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느냐 부정적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다. 맞는 말이다. 나 스스로 나를 좋아하면 자존감은 올라갈 것이고 싫어하면 자존감이 내려가는, 어쩌면 당연한 말이다. 솔직히 내 자존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번 기회에 나는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자존감에 큰 굴곡을 겪었을 때는 군대에서 행정병 복무 후 전역을 할 때였다. 큰 부대와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고립된 독립 중대에 있었고, 그곳에서 인사 행정병으로 복무했다. 우리 중대 모든 병사의 휴가, 외박, 진급, 근무, 수당까지 중요한 것들을 관리하다 보니 모든 병사들에게 있어 어쩌다 보니 난 참 중요한 존재가 되었고,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관심이 크게 없었던 것까지 맞물려 자연스레 권력이 쥐어졌다. 그것 때문인지 인간관계 쪽으로는 참 편하게 군생활을 했던 것 같다. 책에서도 말했듯, 내가 이 조직에 있어 중요하고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면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게 된다. 내가 그랬다.


‘일’을 할 때는 자존감이 높은 편이었던 것 같다. 군대에서도 그랬었고, 여름방학에 잠시 인턴을 했을 때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인정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난 이것이 위험한 자존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군대를 전역했을 당시에 이제 거지 같은 군대를 탈출해 후련해야 했건만, 2주 동안은 기분이 그리 썩 좋지 않았다. 남을 휘두르는 힘을 가졌다가 갑자기 딱히 할 일 없는 별 것 아닌 내가 됐으니 오죽하랴. 자존감이 떨어져 갔다. 난 그것을 ‘이제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깨달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군대 전역 후 점차 우울해졌던 이유는 <자존감 수업>에서 자존감에 대해 정의한 것처럼 내가 나를 평가한 것이 아닌,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것을 기준으로 내 자존감이 좌지우지되었기 때문이었다. 내 자존감의 원천인 ‘수많은 타인’이 갑자기 없어졌으니, 자존감도 없어지는 게 당연했다. 칭찬과 권력이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보통은 칭찬과 권력이 거만함이 되어 내 눈을 가리게 된다는 게 교훈이겠지만, 나는 칭찬과 권력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공허함에 빠질 수 있으니 타인의 평가에 의존해선 안 된다는 조금 다른 방향의 교훈을 얻었다.


그 교훈을 이후로 내가 보기에 오늘 발표는 잘 했는지, 거만한 짓을 하지 않았는지, 오늘 한 일이 내가 만족한 일이었는지 돌아보곤 한다. 하라는 공부나 과제는 안 하고 놀았다면 질책한다. 반대로 하루 동안 폭풍 과제를 했다면 나 자신이 뿌듯하고, 가기 싫은 복싱장을 꾹 참고 다녀오면 내가 어쩜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어찌 보면 인간은 참 소소한 것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는 것 같다. 그게 쌓여서 자존감이 되는 거겠지.


나는 지금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일단 내 앞의 독후감 쓰는 일을 멋있게 끝내는 것, 더 장기적으로는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것이다. 매일 체육관을 갈까 말까 고민하면서 간다 안 간다 룰렛을 돌리다가 결국 가게 되는 내 모습이 반복된다면 성취감도 얻고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평균 자존감이 올라갈 것이다. 내가 이런 말 하긴 좀 웃기지만, 미모도 경쟁력인 시대이기 때문에 대비가 필요하다! 부디 내가 긁지 않은 당첨복권이길 간절히 빈다.


책은 솔직히 말하면 재미없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유형 중 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금 극단적인 상태의 사람들을 묘사해 공감이 되지 않는 것도 있었고 말이다. 다만, 사람인 이상 자존감이 항상 높을 수만은 없고 나도 물론 자존감이 솟구치거나 추락할 때가 있다. 그런 상황일 때 이 책은 존재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재미없었지만 늘 눈에 띄는 곳에 놓아둘 생각이다. 자존감이 떨어질 때마다 한 번씩이라도 펼쳐보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아무 생각 없이 치우친 자존감에 휩쓸리며 사는 것보단 재미없는 책 하나라도 읽어 과거에 내 자존감이 어땠는지, 지금은 어떤지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 자체로도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첫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