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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 Nov 17. 2019

간호사 말고 다른 길은 없나요

간호대 입학부터 병원 퇴사까지

1. 고등학교 시절


진로 고민의 시작은 고 삼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이과생이었던 나에겐 크게 세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자연대, 공대, 그리고 보건계열. 19세의 나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진지하게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우선 수학, 물리 머리는 아니다.(공대를 제외했다) 생물 화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딱히 연구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자연대를 제외했다) 그러다 보니 남은 것은 보건대. 게다가 아빠의 엄청난 서포트("간호대 나오면 간호사 하는 것 말고도 다른 길 많더라! 그리고 여자는 전문직이지.")가 더해져, 간호대라는 선택지는 나쁘지 않은 선택지로 보였다. 그리하여 나는 큰 고민 없이 간호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사실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하기는 했다. 이전까지 간호학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전공이었고, 아빠가 말하는 ‘간호사 말고 다른 길’은 별로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무사히 입시를 마치고 대학에 간다는 희열이 더 컸다. 이 선택이 후에 어떤 결과를 불러 올 지도 모르고.



2. 대학교 1-2학년


부모님의 권유와 점수에 맞춰서 입학한 대학생답게, 나는 전공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열심히 밖으로만 돌았다. 동기들이 다들 하는 학과 동아리 말고 중앙 동아리에 들어갔고, 어쩌다 인연이 된 선배 손에 이끌려 총학생회 일도 시작했다. 새내기 때 시작한 나돌기는 2학년이 되자 그럴듯한 직함도 달고 각종 크고 작은 행사도 기획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중앙 동아리는 물론이고 총학생회 활동은 모두 간호학과 학생들이 보통 하지 않는 활동이라 나는 어딜 가든 "간호학과가 왜 여기에서 이런 일을…?!"같은 시선을 받곤 했다.


2학년부터는 본격적인 전공 공부가 시작되었다. 자비 없이 타이트한 전공 수업 시간표는 특히 나를 미치게 했다. 화끈하게 학점을 포기해 버릴 배짱은 없고, 공부는 하기 싫어서 2학년 내내 울상으로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힘들게 학교를 다니던 중, 간호대 최대 행사인 촛불의식이 진행되었다.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왼 손에는 촛불을 들고, 입으로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낭독하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건 내 길이 아니야. 다음 학기엔 무조건 휴학이다.”

 


3. 휴학 1년, 그리고 복학


휴학을 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나는 휴학계를 제출했다.(부모님과의 사소한 갈등이 있었다) 내 휴학 1년의 모토는 ‘간호학 관련된 거 빼고 다 해보자!’였다. 나는 재미없는 간호학 말고, 미친 듯 사랑할 수 있는 꿈다운 꿈을 찾아 쫓고 싶었다. 그 정도는 해야 청춘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모토에 걸맞게, 휴학 일 년동안은 정말 많이 돌아다녔다. 영어공부에 꽤 오랜 시간을 쏟았고, 각종 스터디, 동아리에 참석하며 학교 밖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생각보다 미친 듯 몰입할 수 있는 꿈은 나타나지 않았따. 일생 일대의 꿈이라는 것은 일 년 노력한다고 해서 뚝딱 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겨울은 끝나가고 있었고 복학이 다가왔다.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학교 돌아가서 면허는 따는 것도 방법이겠다. 라며 나는 스스로와 타협했다. 휴학기간 일 년 동안 열심히 살았기에 미련은 없었다. 

개강 날짜는 빠르게 다가왔다.



4. 복학 이후와  취업 준비


다시 간호대 생활이 시작되었다. 3, 4학년 학사일정은 엄청난 수업량과 그에 못지않은 실습일정을 병행해야 했는데, 마치 학생들이 딴 생각 할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건 내 길이 아니야!"라고 울부짖는 일은 없이 얌전히 학교를 다녔으니 나름 휴학의 의미가 깊었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실습을 하면서는 간호학의 의미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간호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마인드로 학교 수업이야 그럭저럭 들을 수 있었지만, 취업이 다가오자 굉장히 난감해졌다. 누군들 '귀사의 발전과 자아 성장을 위해' 입사를 하겠냐마는, 어쨌든 간호사라는 직업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엄청나게 하기 싫다는 것은) 꽤나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앞으로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3차 병원을 가기는 해야 하겠는데, 도저히 자기소개서에 '저는 나이팅게일이 되는 것이 제 평생의 소원이었으며 간호 본부장이 될 때까지 이 병원에 뼈를 묻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원서도 겨우겨우 2군데만 썼다. 일원동에 있는 S병원과 자대 병원. S병원에서는 최종까지 올라갔으나, 그다지 간절하지 않았던 나의 내면을 간파 당한 것인지 최종 임원 면접에서 탈락했다. 나는 결국 자대 병원에서 간호사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5. 간호사로 일하며, 퇴사 결심을 하기까지


고등학교부터 졸업까지의 행보를 비추어보아, 애초에 나는 내가 임상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력은 하되, 진지하게 죽고 싶으면 때려 치자 다짐하고 입사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현실적인 마인드셋이 나를 버티게 했다. 환자가 나를 개차반처럼 대해도, 선배 간호사가 나를 활활 태워도, 교수가 뜬금없이 소리를 질러도, 대부분은 일을 시작하기 전 예상했던 일이었다. 뭐, 이런 상황을 예견했다고 해서 마음고생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이때 썼던 일기를 보면 펑펑 울고 만다.


나는 병원에 아슬아슬 매달린 채, 끊임없이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었다.('이렇게 힘들면 그만두는 게 맞지 않을까?') 대체 언제쯤이면 할 만 해지는 거냐고 학교 선배들에게 따졌다. 선배들은 1년을 버티면 전보다는 낫다고 했다. 그래서 딱 일 년을 아득바득 버텼다. 


그리고 1년 하고도 몇 개월 후, 나는 퇴사를 신청했다. 퇴사 면담에선 구구절절, 구질구질한 사유가 어지러이 더해졌지만, 결국 핵심은 같았다. 나는 간호사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학생 때부터 끊임없이 고민했던, "간호사가 과연 내 길인지, 아닌지"라는 고민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6. 퇴사 이후


A를 할지, 말 지는 그나마 쉽다. 하는 것, 아니면 안 하는 것이니까.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작되었던 몇 년의 고민을 뒤로하고, 드디어 나는 할지 말 지의 선택지 중 '안 하는 것'을 선택했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고민은 이제 시작이다. 심지어 이번엔 할지, 말 지의 문제가 아니다. 객관식도, 주관식도 아닌 서술형이다. 


간호사 안 하면, 다음엔 뭐 할 건데? 


나른 보는 사람들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내게 지겹게 묻는 질문이다. 하지만 나의 답변은 언제나 같다.


아무거나, 간호사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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