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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 Jan 19. 2020

병원용 커뮤니케이션 vs 비즈니스용 커뮤니케이션


나는 내가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로 자신이 있었는가 하면, 병원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내 자소서 키워드가 '소통'이었다. 아직도 생각난다. 병원 면접 때 했던 나의 자기소개 마무리 멘트.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더 나아가 환자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간호사가 되겠습니다.



환자의 이야기를 끌어내겠다는 포부에 걸맞게, 나는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스스로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물론 어느 정도 병원 일에 적응한 후의 이야기다.) 


'간호사와 간호사', '간호사와 의사', '간호사가 환자', '간호사와 검사실'이 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것은 정해져 있다. 환자 인계, 오더 확인, 시술 전후 환자 교육, 검사실 시간 체크 등... 처음이 어렵지, 이 체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몇 가지의 템플릿을 익힌 뒤엔 곧잘 능숙히 사용했었다.



나름 한 소통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을 지나, 나는 지금 회사로 이직했고, 이곳에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커뮤니케이션을 만났다. 난 몰랐지, 회사(특히 마케팅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내/외 다른 팀과 협업이 필수인 마케팅 업무의 특성상, 대부분의 업무는 커뮤니케이션이 동반된다. 고수들의 커뮤니케이션이 난무하며, 때로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업무가 되는 이곳에서, 나는 나의 미숙한 커뮤니케이션 실력을 가감 없이 선보였다. 그리고 내가 재능 있었다고 생각한 나의 능력이 실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깊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비즈니스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란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병원과 이곳에서 소통, 커뮤니케이션은 무엇이 다를까? 나는 병원에서 별 일 없이 잘만 일 했는데, 여기에서는 왜 이렇게 맥을 못 출까?



먼저, 병원에서의 일하던 방식을 떠올려보자. 병원 커뮤니케이션의 키워드는 '지금'과 '면대 면'이다. 


병원의 모든 업무는 단기적이고, 그것도 모자라 '지금 당장' 이루어진다. 환자 상태가 이러한데, 지금 이 약을 투약할지, 말지. 지금 수술실로 보내야 할지, 말지. 내일 환자 퇴원을 시킬지, 말지 하는 것이 병원 내의 주요 커뮤니케이션 내용이다. 이런 환경에서 업무 계획은 멀어야 내일, 또는 모레 정도가 될까 말 까다. 


그리고 이런 결정들의 대부분이 상태가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의 침상 옆에서 일어난다.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대부분 면대 면, 또는 통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외 모든 의료진은 전산으로 의료 기록을 남기지만, 이 기록은 업무 공유용이 아니거니와, 기록을 작성을 위한 규칙이 따로 있어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은 정확히 특성이 그 반대다.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의 키워드를 꼽자면, '장기간'과 '이메일(서면)'을 들 수 있겠다. 


우리 팀에서 하고 있는 대다수의 일들은 타 팀의 업무 협조가 필요하고, 우리 회사가 아닌 관계사와 진행하는 일들이다. 때문에 갑자기 '지금 당장' 해 달라거나, 필요할 때마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면대 면'으로 소통하는 것은 욕을 바가지로 먹을 일이다. 우리 회사의 경우, 관계사와의 협업은 이메일로, 내부 업무는 컨플루언스(confluence)를 이용하고 있다. 그 말인즉슨, 모든 업무 요청은 '서면'에 기반한다는 뜻이다.



이런 변화된 환경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명확한 언어로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면대 면으로, 구두로, 얼굴을 아는 사람들과 이미 알고 있는 환자에 대해 업무 요청을 하는 것과, 얼굴도 모르는 관계처 사람과 이메일로 업무 요청을 하는 것은 아주 다른 차원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이런 업무 성질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얼렁뚱땅 나 편하게 메일을 쓰게 된다. 그러면 당연히 상사에게도 혼나고 관계사에게도 짜증 섞인 전화를 받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메일 쓰기가 익숙지 않았던 시절, 나는 메일을 한 번 써 놓고, 혹시 '나 중심적'으로 쓰인 부분이 없는지, 누가 읽어도 같은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여러 번 읽어본 뒤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간단한 메일 하나도 쓰는 데 한 시간씩 걸리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메일을 쓰는 일은 어렵다. 그래도 잘 쓰인 메일을 따라 써보고, 관련 서적도 탐독한 끝에, 요즘은 종종 '메일 잘 쓴다'는 칭찬도 듣고 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게 잘 가고 있는 듯하다.


한 가지 욕심이 있다면, 이런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에 관련해 스스로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것. 최근, 정기 팀 내 스킬업 워크숍 시간에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법'에 대해 스터디를 했었는데, 업무 관련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어렴풋이 느꼈던 것들이 이미 이론화되어 있어 놀라웠다. 역시 어떤 일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공부를 하는 것도 지름길로 가는 방법인 듯.



글을 쓰는 지금은 일요일 저녁이다. 내일도 출근하면 메일을 열어보고, 답변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겠지. 메신저로 업무 상황을 체크하고, 전화 통화도 하고 보고서도 써야 할 테다. 


내일 하루도 보다 명확하게,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길 바라며.





병원 밖으로 나온 간호사 ; 전 간호사, 현 마케터의 탈간호 후 격한 방황기 및 두 번째 신입 생활

인스타그램 계정; @writer.m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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