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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Jun 10. 2024

엄마의 기억 상실증

월요일은 기억하다

얼마 전에 종영했던 드라마 <눈물의 여왕>은 흔하고 뻔한 이야기였다. 클리셰 범벅인 소재를 마법같은 드라마로 만든 작가와 연출 능력에 감탄하면서 봤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후반부로 갈수록 이상하게 벌어지는 전개에 황당할 때가 많았다.


여자 주인공 해인이는 불치병에 걸렸고, 당연히 죽을 줄 알았지만 결국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런데 그 수술이 기억 상실증에 걸리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에서 실소가 나왔다. 더구나 해인은 기억을 잃는다면 수술을 받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깟 기억이 뭔 대수냐, 일단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간절한 욕망일 텐데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싶은 마음이었다. 해인을 사랑하는 현우가 '그냥 살자, 제발 좀 살자'라고 애원하지만 해인이 말한다.


"살아있다는 건 그 기억들을 연료 삼아서 움직이는 거야. 그러니까 그 기억들이 나고 내 인생이야. 그런데 그게 다 사라지는 거라고. 나한테 여기도 모르는 풀밭이 되고, 너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거야. 근데 어떻게 그게 나야? 그래서 난 그따위 수술은 안 받겠다는 거야. 나로 살았으니까 나로 죽을래."


해인의 대사다. 드라마를 보며 들을 때는 감동보다는 오글거림과 어이없다는 마음이 솔직히 컸다. 그런데 해인이 말한 그 '기억'이 살아가는데 진정 연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나에게도 생겼다.


진짜 드라마 같은 일이 말이다.



6월 6일, 휴일을 여유롭게 보내고 남편과 헬스장에서 운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중이었다. 밤 9시가 조금 넘어서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 살갑게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가 아니라 동생 이름이 핸드폰에 뜨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늘 불길한 예감은 들어맞는 게 신기하다.


"누나, 내가 내일 서울에 일이 있어서 엄마집에 와 있거든. 엄마가 볼일 있다고 4시쯤 외출했는데 아직도 안 들어오셔서 전화를 했더니 신촌역에 계신데. 근데 집에 오는 길을 모르겠다는 둥 자꾸 횡설수설하는데, 혹시 전에도 이런 증상이 있었어?"


동생이 하는 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올해 만 65세가 된 엄마는 누구보다 정정하셨고, 서울 지리에 어둡고 길을 못 찾는 나와 다르게 지하철과 버스를 오가며 빠른 노선을 꿰뚫고 계신 분이다. 엄마댁은 신도림역이니 신촌역에서 2호선만 타면 바로 오는 것을 집에 오는 길을 모른다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일단은 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오겠다고 했다.


"누나, 아무래도 지금 바로 와봐야 할 것 같아. 엄마가 아무래도 이상해. 집이 어딘지도 모르겠다고 하고, 내가 어디서 일하는 지도 모르는 눈치야. 빨리 와줘."


다시 걸려온 전화에 남편과 급히 서울로 향했다. 차 안에서 불안한 마음이 엄습하고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다. 일단 정신을 차리고 의사인 사촌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 설명을 하며 도움을 청했다. 그 동생은 아무래도 뇌졸중이나 뇌경색이 온 것일 수 있으니 빨리 응급실로 가보라고 했다.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 불안함은 더 커졌다. 동생에게 집 가까이에 있는 응급실로 엄마를 모시고 오라고 했고, 남편과 나도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만난 엄마는 겉으로는 이상한 낌새는 없었다.


"너희가 왜 여기까지 왔니? 내가 뭐 이상한 거니?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이렇게 묻는 엄마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오늘이 목요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10초가 지나고 또 같은 질문을 하셨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너희는 왜 여기에 있는 거니?"


진짜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신이 10초 전에 한 질문과 대답을 잊어버리고 또 같은 질문을 하셨다. 엄마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봤을 때 최근 3년간의 기억이 사라지거나 뒤죽박죽 된 상태였다. 2월에 남동생이 결혼한 것도 잊으셨고, 비슷한 시기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른 기억도 사라진 상태였다. 우리 아이들이 몇 살이냐고 물었을 때 올해 중학교 1학년인 큰아이가 4학년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이 현재 일하고 있는 일터가 어디인지 바로 대답하지 못했고, 현재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문재인 아니냐고 반문하셨다. 대체 엄마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우리는 놀랍고 두려운 마음을 애써 감추고 의연한 척 엄마와 응급실에서 대기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는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엄마 상태를 진단했을 때 신경과 전문의가 있어야 했는데 병원 파업으로 당장 의사를 소환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다음날 외래 진료를 받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 상태는 더 심각해졌다.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했고,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전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오십 번도 넘게 똑같은 대답을 하자니 그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동생들과 깔깔깔 웃는데 이런 게 슬픈 웃음이구나 싶었다. 자정이 넘어도 주무실 생각도 안 하시고 계속 같은 질문만 해서 억지로 주무시라고 눕혀야 했다.


그렇게 긴긴밤이 지나갔다.


밤새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엄마가 계속 이런 상태라면 어찌해야 할까 하는 무서움이 깊은 어둠 속에서 강렬하게 덮쳐왔다. 남동생까지 결혼하고 지방에 살면서 혼자 서울에 계시는 엄마가 늘 걱정됐지만 이제는 진짜 혼자 계시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과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엄마를 돌봐야 할 것인지하는 자구책을 생각하기 급급했다. 그렇게 몰아세우는 여러 압박에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자각이 들자 일단 심호흡을 하고 다시금 그날 있었던 일을 복기해 봤다. 그러자 먼저 엄마가 기억을 잃고 헤매던 날에 남동생이 집에 와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지 떠올랐다. 엄마 일정과 동선을 일일이 체크하지는 못하기에 그 밤에 전화를 드리지 않고 우리가 모두 잠들었다면 엄마는 아직도 신촌역 어딘가에서 혼자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아찔함이 들었다. 엄마 동선을 추적했을 때 엄마가 볼일을 끝내고 신촌역에서 약 2시간을 헤맸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엄마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했다. 그 시간이 더 길어졌으면 정말 어쩔 뻔했을까.


엄마는 다음날 9시가 넘도록 일어나지 못하고 주무셨다. 원래 6시 전에 일어나는 분인데 전날 엄마에게 분명 고된 하루였던 것이다. 병원에 가야 해서 엄마를 깨웠다. 눈을 뜬 엄마는 나를 보더니 "네가 왜 집에 있어? 엄마 일 가야 하는데..."라고 하셨다. 또다시 시작인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10초가 지나서 또 같은 질문은 하지 않으셨다.


"엄마 어제 신촌에서 길 잃어서 우리랑 응급실 갔다 왔잖아. 기억나?"


"내가? 길을 잃어? 응급실에 갔다고? 하나도 기억이 안 나네...."


엄마의 6일 정오부터 자정까지 기억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행히 그전 기억은 돌아오셨다. 딱 하루의 기억만 온전히 상실됐을 뿐.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셨지만 또다시 반복될 수 있는 일일까 봐 정밀 검사를 받아야 했다.


신경과에서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상황을 설명했을 때 의사가 내린 병명은 '일과성 완전 기억 상실증'이었다. 이름도 길고 낯선 이 병명은 갑작스러운 쇼크나 스트레스로 단기간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정확히 뇌에서 어떤 현상이 발생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밝히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의사의 소견일 뿐, 정확한 것은 뇌 MRI를 찍어봐야 한다고 했다. MRI는 영상의학과에서만 촬영할 수 있어서 주말이 지나서 예약을 했고, 이후에야 최종 결과를 들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안했던 엄마의 상태가 많이 안정됐고, 하루의 기억만 잃었을 뿐, 다른 기억을 되찾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엄마가 우리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잊고, 기억하지 못했을 때 느꼈던 막막함은 실로 엄청났다. 엄마가 병약한 노인이 된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엄마와 함께 나눴던 그 행복한 순간들을 함께 기억하고 소환하지 못한다는 상실감이 나를  압도했던 것 같다. 만일 나에게도 기억을 잃는 일이 생긴다면 <눈물의 여왕>의 해인의 대사처럼 그것은 진짜 내가 아니겠구나 싶었다. 기억을 연료 삼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일 텐데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다면 그 삶의 의미가 텅 비어버릴 것이다.


무엇보다 내일 당장, 나에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예기치 못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인생의 거대한 경고를 강하게 받은 것 같다. '언젠가는' '그것이 이루어지면' '내가 여유가 되면'이란 조건절을 붙이며 오늘 해야 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일을 뒤로 미루는 것은 핑계를 너머 삶을 향한 나의 오만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떠오르고 하고 싶은 것, 이미 주신 것을 누리고 감사하는 것,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전하는 것, 내 것을 포기하고 조금 더 나누는 일들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그렇게 오늘의 기억을 더 많이 만들고 인생의 연료를 충분히 축적해 두는 삶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아이가 할머니께 드린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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