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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May 20. 2024

선재를 보듯  

월요일은 바라봄이다.

매주 월요일에 글을 발행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선 2월에 쓴 마지막 글 이후로 멈췄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한 핑계를 찾으려고 하면 수만 가지도 댈 수 있지만 그야말로 비굴한 핑계에 불과하겠지.


브런치에 제대로 된 한 편의 글로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작가의 서랍'을 훑어보니 끄적거렸던 글이 수십 편이다. 무수한 감정의 파편들을 거칠게 흩뜨려놓은 모양새를 보니 봄의 한 시절을 지내오며 나는 참 불안한 시간을 보내왔구나 싶다. 그 어떤 계절보다 봄을 좋아하면서도 봄의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지 못하고 지나온 것 같아 괜히 서럽고 부아가 솟는다.


 '봄'이란 이름이 '보다'에서 왔다 하지. 얼음을 녹이는 불이 온다를 줄인 글자가 '봄'이라고. 이러한 변화를 정성껏 보는 계절이 바로 '봄'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글에 고개를 끄덕끄덕했던 것이 떠오른다.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 천지 만물이 볼거리로 가득한 데도 난 내 복잡한 감정에만 몰두해서 보낸 것은 아닌지 괜히 애잔해지는 것이었다.


이제는 봄인지 여름인지 헷갈리는 때이지만 아직도 '봄'이라고 우기며 요즘 나의 바라봄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의 마음에 제대로 된 봄바람을 불러일으키며 환하디환한 봄꽃을 피우게 하는 이, 바로 선재 이야기다. 얼음을 녹이는 강력한 불이 아닌, 발그스레한 벚꽃잎이 살랑이며 자기를 바라보라고 자꾸 유혹하는 그러한 봄 말이다.


연둣빛 반짝이는 길에 앉아 오도카니 봄을 보듯 요즘 선재를 본다. 보고 또 보며 자꾸 헤벌쭉 웃고 있어 남편이 새색시마냥 질투하는 것을 지켜봄도 재미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월요일에는 선재를 봐야 하는 것을.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중학교 때 HOT 우혁 오빠에 빠져 연예인을 보고 또 봤던 그때 이후로 얼마 만인지. 이 또한 구차한 변명일 수 있지만 난 분명 변우석이란 배우에게 빠진 것이 아니라 '선재'를 보는 것뿐이다. 이 봄날에 찾아온 선물 같은 존재를.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는 웹소설이 원작이다. 이 드라마의 존재도, 인기도 알지 못하던 나에게 함께 동화를 쓰던 글벗이 이 봄이 지나기 전에 이 드라마를 안 보는 것은 작가의 기본이 아니라는 둥 얼토당토않은 협박조로 추천을 해서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선재를 보며 뒤늦은 봄앓이를 시작한 것이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요즘 스토리 창작을 공부하고 머리를 쥐어싸며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고 있는 나에게 이 드라마의 플롯은 완벽했다. 이제는 클리셰라고 말하기도 민망하고 흔하디 흔한 '타임슬립'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나 설득력 있게 설정을 만든 작가님에게 존경을 표하며, 그 스토리 안에서 완벽한 연기를 해주는 선재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드라마 속에도 선재 덕후가 주인공이지만, 누군가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드라마 대사처럼 절로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가 되는 것, 그것이 바라봄이 주는 놀라운 기적이다.


작년 연말부터 현재 진행형으로 내 마음이 어려웠던 것이 어쩌면 마땅히 바라봐야 할 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아서였다는 마음이 들었다. 분명 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가치와 사랑이 존재하는데, 나는 수시로 변하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에 실망하며 뿌리째 흔들리고 힘들었던 것은 아닌지 말이다. 물론 선재는 곧 16회로 막을 내리고 나의 선재앓이도 곧 끝나겠지만, 이 봄이 지나기 전에 바라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 선재가 또 고맙다. 기승전결, 결국 또 선재인 건가.^^


선재 이야기를 한 것은, 지금도 내 주변에 많이 흔들리고 힘들어하는 이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 들며 낙심이 될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바라봄을 잊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드라마에서 서로의 바라봄을 알지 못해 애끓던 어긋남의 시절이 있었기에 선재와 솔의 마주봄이 더 소중한 것처럼, 지금은 나의 바라봄이 일방적인 것 같아도 분명 이 시절이 의미 있었다고 추억하는 시절이 올 것이라 믿는다.


무심히 지나가는 봄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잠시만 더 머물러 달라고 간절히 소원해 본다.

더 오래, 더 깊이, 더 사랑하며 볼 테니 조금만 천천히 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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