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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이 Feb 24. 2020

나의 아지트 이야기 - 이동식 주택 터 닦기

망각을 위한 몸부림

망각을 위한 몸부림을 지난가을에 또다시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카운티 캠핑카로 제주 한 달 살기였다.

비록 25일 만에 돌아왔지만...
다행히 낯선 환경에서 망각하는 듯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건 착각이었다.
망각하려 하면 할수록 찐한 기억을 토해냈다.

과음 후 똥물까지 토해내듯 오장육부가 틀어졌다.
10월 태풍이 매섭다고 하는데 제주에서의 아픔은 새로운 생채기를 만들어냈다.

제주에 다녀온 지 열흘이 됐다.
때가 때인지라 제주에서 억눌렀던 수억만 리 심해에 잠재웠던 기억이 스멀스멀 꿈틀거렸다.

오늘처럼 눈이 올 것 같은 날에는 더 그런다.
아들의 기일이 제 살을 깎아먹듯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으니...

육신을 편하게 하면 헛생각이 나서 미치겠다.
그래서 두 번째 망각을 위한 몸부림으로 텃밭에 소형 이동식 주택을 짓기로 했다.

한 달여간 여기에 몰두하다 보면 망각의 늪에 빠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
밤이면 밤마다 피울음은 목구멍에서 맴돌지라도...



포클레인도 동원됐다.
6평 이동식 주택을 앉힐 자리에 터에서 나온 돌을 무더기로 쑤셔 박았다.




정화조도 묻고 오수관도 수도관도 묻었다.




평탄 작업은 해가 떨어진 후에도 계속됐다.




땅도 돋고 풀도 잡고 텃밭도 만들기 위해 이튿날 자갈 두 차와 마사토 한 차를 받았다.




진입로가 좁아 밭주인의 양해를 구해 1톤 트럭으로 골재를 옮겼다.
이젠 이웃이 될 시골 인심이 고마웠다.




건축물을 앉힐 자리다.
오수관도 수도관도 따로 빼놨다.



텃밭과 꽃밭에 마사토로 둘렀다.
텃밭이 너무 크면 고생이라 아주 조그맣게 자리했다.




텃밭을 제외한 공터에 강 자갈을 모두 깔았다.
비싸지만 파쇄석보다는 자갈이 더 자연스럽고 멋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본 건물을 앉힐 자리도 평탄 작업을 했다.
그때가 언제일지 몰라도.




몇 군데 구덩이도 파놨다.
조경수나 유실수를 심기 위해서다.

설령 꽃밭을 만들더라도 자갈을 조금만 걷어내면 된다.
부지 너머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었다.




이런 집을 짓고 싶다

엊그제 노가다 시다바리하면서 육체노동자 특히 막노동하시는 분을 존경하기로 했다.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어 감사했다.

떵손인 펜이가 직접 이동식 주택을 지는 건 아니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얘기다.

일반 주택을 지으면 건축업자와 계약만 하고 때 되면 돈만 주면 된다.
그런데 이동식은 그게 아니란다.

작년부터 광주와 수도권 업체 몇 군데를 알아본 결과다.
이동식은 건축주가 모든 기반 조성을 해야 한다는 것!

업자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엊그제 포클레인 시다바리하면서
내 평생 해야 할 삽질을 단 이틀 만에 다 하고 두 삽 더 뜬 기분이다.

골재를 실어 나르는 덤프가 길가에 떨어뜨린 자갈과 흙을 빗자루로 쓸어야 했다.
진입로가 좁아 남의 밭을 이용했는데 맨손으로 울타리 철거와 원상복구도 펜이 몫이었다.

밭에 있는 두릅나무를 뽑고 골재 작업 후에는 또다시 심어주고...
정화조와 오수관, 수도관 묻는데 포클레인 기사 말 한마디에 지친 몸은 일사천리로 자동고가 되고...

펜이가 건축주라 시킬 요량으로 시작했는데 인부라고 나 하나뿐이었다.
펜이 블로그명처럼 나 태어나 첫 경험이다.

일을 마치고 나니 허리가 끊어지려 하고 두 손과 두 다리는 이미 남의 것이 되는 유체이탈 같은 느낌이랄까...
육체노동의 소중함을 느낀 날이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까마득한데 저녁에 쇠주 한 잔에 피로가 아니 눈이 절로 감겼다.
하지만 내 아지트다, 가족 별장이라 생각하니 힘든 줄 모르겠다.

마눌님은 몸이 좋지 않아 몸져누웠었다.
그래서 혼자 일하며 찍다 보니 펜이 노가다 사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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